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채명신 (문단 편집) === [[베트남 전쟁]] === 월남 파병이 결정되면서 게릴라 부대 지휘관으로 이런 종류의 전쟁에 경험이 많은 적임자로 판단되어 파월 한국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이후의 증언에 따르면 역시나 적절한 인사였다고. 사상 최초의 한국군의 해외 파병이었는데[* 비단 한국군만 아니라 한반도 전체로 늘려봐 조선시대 [[나선정벌]]이후 몇백년만의 해외출정이다.], 제 코가 석자인 데다 한국군 전투력에 의문이 많던 [[미군]] 지휘부와의 담판에서 많은 양보를 얻어내어 한국군 복지 지원 확보, 전투장비 신형으로 교체, 지휘권 확보 등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이후 채명신은 과거 6.25전쟁에서 게릴라전을 맞붙은 경험을 살려 [[중대전술기지]]를 통해 엄청난 전과를 올렸고 미군도 [[중대전술기지]] 전술을 연구하며 역으로 도입하였다. 또한 베트남의 독립 전쟁사를 꼼꼼히 검토해,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의 명분이 매우 약하며, 오히려 월맹군측이 민족 지도자 [[호치민]]의 지도 하에 '''"독립전쟁"'''을 벌이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걸 포착, 박정희 대통령에게 '''"미국의 공식 요청 하에 파병을 결정"'''할 것을 건의했다고 한다.[* 이렇게 신중을 기울였어도, 역시 '''명분약한 전쟁'''에 끼어드는 걸 반대했던 야당의 공세에 밀려, 결국 [[날치기]]로 파병안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이 야당 의원들 역시 일단 파병이 결정 된 후에는 [[박순천]] 의원을 필두로 한 주요 인사들이 위문을 와 장병들을 격려하였다. DJ([[김대중]])의 경우는 대권 잠룡이었던 [[에드워드 케네디]]가 '''"한국군은 용병"'''이라 비난한 데 대해 → '''"우리 장병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참전한다고 믿고, 현지에서 고투를 치르고 있다"'''고 반박해 에드워드 케네디의 사과를 받아냈다는 후문.] 이 베트남 전쟁 전후를 다룬 책 '베트남 전쟁과 나'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