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천도교 (문단 편집) === 현재 === 원래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한 취지는 난세에 흔들려서는 안되는 조선인들의 근본 신앙관과 마음가짐이었다. 이후 변질되어 정치집단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다 교령들의 월북 사건으로 결정타를 입어 흔들리고 교세도 쇠퇴하였던 천도교는 이후 종교 본연의 성격을 되찾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윤석산 [[한양대]] 명예교수 등 학자들의 교학 연구에 대한 노력을 했으나 신도수의 감소폭만 줄였을 뿐이다. 위의 서울교구 중앙대교당만 보면 지금도 교단활동이 활발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국내의 [[민족종교]]단체들과 마찬가지로 본부를 제외하면 상황이 상당히 열악하다. [[http://www.chondogyo.or.kr/niabbs4/bbs.php?bbstable=free&call=read&page=1&no=141|*]] 그나마 어느 정도 희망적인 사실은, 비록 신자가 적은 소수 종교이지만 1995년 이후 신자 수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는 것이다.[* 1995년 2만 8천명, 2005년 4만 5천명, 2015년 6만 6천명으로 미미하게나마 신자 수가 계속해서 늘고 있다.] 2014년 12월에는 서울 [[서소문]] 성지화 사업과 관련해 [[천주교 서울대교구]]와 마찰을 빚었다([[http://www.chondogyo.or.kr/niabbs4/bbs.php?bbstable=free&call=read&page=1&no=1475|관련]] [[http://www.chondogyo.or.kr/niabbs4/bbs.php?bbstable=free&call=read&page=1&no=1469|링크]] 참고). 천도교 측에서는 서소문에서 동학 신자들도 순교했고 효수당했는데[* 순교: 최시형, 이필제, 전봉준, 최재호, 안교선/효수: 김개남] 천주교만 서소문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에 세워진 대구 [[http://www.daegusaint.org/?c=30/67|관덕정 순교기념관]]도 [[천주교 대구대교구]]에서 성지화 사업을 추진했는데, 천주교의 순교지이자 최제우의 순교지여서 천도교에서 반발했다([[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667351.html|관련 링크]]). 이외에 [[식목일]] 폐지[* 정확히는 공휴일에서만 제외하는 것이지만 뜻도 불명확한데 쉬는 날 하나가 없어지는 것이기에 그냥 폐지로 보아도 무방하다.]를 반대한 곳이 천도교인데 [[최제우]]가 [[동학]]의 깨달음을 얻었음을 기념하는 천도교 최대의 축제일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1908년까지는 음력 4월 5일에 기념하였는데, 1908년에 천도교에서는 음력 날짜를 그대로 양력으로 옮겨 기리기로 결정하고 1909년부터 최제우가 계시받음을 양력 4월 5일에 기념하였다. 식목일과 천도교 그 자체는 연관이 없지만 4월 5일을 천도교의 날로 동시에 기념하고자 하는 의미도 있으며 실제로 신도들은 4월 5일을 누가 물어보면 식목일과 천도교 창시일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2개를 동시에 대답한다. 이외에도 학계에서 천도교 연구에 대해서는 단국대학교가 학교의 설립자가 독립운동가 장형으로 민족주의 관련 연구가 활발하므로 천도교 관련 자료와 연구 실적이 국내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