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천도논쟁 (문단 편집) ==== 장제스의 양보 ==== 우한 측의 태도의 강경함만을 확인하고 난창에 돌아온 장제스는 1월 21일과 1월 22일, 난창에서 중앙정치회의를 소집하여 우한의 각 기관이 공산당과 그 추종자들의 조종을 받고 있으며 법적 근거 없이 중앙집행위원회와 국민정부위원연석회의가 공산당에게 장악되어 있다면서 비난하고 우한연석회의의 개회 정지를 결의하고 연석회의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한편 이전의 결정처럼 우한정치분회 설치를 요구했다. 또한 1월 25일, 덩옌다에게 총정치부 선전과장 주대걸이 공산당원이니 임명을 취소하라고 덩옌다에게 요구하며 총정치부가 발행하는 혁명군일보가 허위선전을 하고 있으니 개조할 것을 지시했다. 또한 장제스는 덩옌다에게 총사령부 참모장을 제안했으나 덩옌다는 장제스를 비난하며 이를 거절했다. 우한 연석회의도 장제스의 요구를 거부하고 편지, 전보, 사람을 파견해 난창에 있는 중앙집행위원들과 국민정부위원들에게 우한으로 오도록 촉구하며 [[영왕운동]]을 다시 활성화했다. 반면 장제스는 [[장즈중]]을 우한에 파견해 덩옌다 등을 자신의 편으로 회유하고자 했다. 1927년 2월, 장제스는 우한의 연석회의 취소 반대 전문에 대해 회답을 보내 자신이 우한 연석회의의 성립 시에 이를 찬성했고, 우한 연석회의 성립 후 한커우, 구강의 영국 조계지 회수와 같은 외교적 성취, 재정통일 실시, 호남금융 정리, 교통행정 개선 등의 혁명의 기초적 성과가 이루어졌으며 연석회의가 당과 국가의 지위를 증진시켰다고 인정하면서도 난창에 이미 당중앙이 있으니 중앙당부와 국민정부의 이전 전에 최고직권을 행사하겠다고 결의한 우한 연석회의는 취소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로써 사실상 논쟁은 수도가 어디냐의 문제보다는 연석회의의 합법성 여부와 우한에서 재기하는 군사독재 타도로 변해버렸다. 따라서 연석회의의 입장도 강화되었고 쉬첸은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임시연석회의는 본래 당규약에 의해서 조직된 것이 아니고, 혁명의 이익상에서, 혁명의 요구에 의해서 조직된 것이다. (...) 한커우 영조계의 회수 문제는, 만약 임시연석회의가 없었다면, 외교부가 어떻게 교섭했겠는가? 장제스 동지가 전문을 보내서 외교부의 교섭승리를 치하했을 때, 그것이 임시연석회의가 한 일임을 몰랐는가? 그것이 당의 지도를 받아서 한 일이라고 생각 못했는가? (...) 연석회의는 합법적 기관이다." 보로딘의 경우, 아예 영국과의 조계회수서명을 연기시키려 하면서 연석회의의 정치적 무기인 조계지 문제를 최대한 활용하려고 했다.[* 한커우와 구강 조계지의 정식 반환은 결국 2월 19일과 2월 20일에 각각 행해졌다.] 조계지 문제 문제와 자신이 우한 천도에 초기에 찬성했다는 점에서 명분상 밀린 장제스는 2월 8일 난창에서 3중전회를 개최한다는 결정을 취소하고 절강성에서의 북벌이 정리된 다음에 기일을 잡아 소집할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장제스는 절강에 이어 상하이로 전선을 확대하면서 자신의 세력 확대를 꾀했고 [[2월 8일]] 난창의 정치회의는 연석회의 주석 쉬첸을 주미 대표로 임명해 미국으로 보내고 [[다이지타오]]를 주소 대표로 임명해 소련으로 보내기로 결정하여 쉬첸과 다이지타오를 교환하자는 제스처를 보냈다. 또한 2월 8일 정치회의는 중앙당부와 국민정부의 우한 이전을 결정, 2월 10일 중앙당부는 한커우에, 국민정부는 우창에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리쭝런]]도 2월 9일, 장제스를 만나 당무문제는 군사문제가 일단락 된 후 다시 엄밀하게 정리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일단 천도문제를 긍정하라고 요구했다.] 장제스가 우한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논쟁은 일단락된듯 보였다. 하지만 우한은 2월 9일 국민당 고급간부회의를 개최하여 민주실행, 독재반대 등을 주장하며 3중전회를 한커우에서 개최할 것을 결정하고 오옥장, 덩옌다, 쉬첸, 쑨커 등 5인으로 행동위원회를 결정하여 영도기관으로 삼아 장제스가 군사독재를 시행한다고 비판했다. 2월 16일 25차 연석회의는 중앙집행위원회 감찰위원과 후보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확대연석회의를 개최하여 우한 연석회의를 종결하기로 결의했다. 이쯤되면 국민당 좌파와 공산당의 의도는 기존의 장제스를 적당히 견제하는 선을 넘어 아예 장제스를 지도부에서 배제시키려는 수준에 이르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