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천동설 (문단 편집) === 대두와 발전 === 근대적인 천문학이 연구되기 전까지는 천동설이 더 설득력 있는 이론으로 받아들여졌다. '자신이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있는' 지구가 움직인다는 것이나, 누구나 하늘만 보면 뜨고 지는 것을 알 수 있는 태양이 '사실은 고정되어 있다'[* 물론 사실은 태양도 은하의 중심부를 축으로 공전하고 있으나, 적어도 태양계 모델에서는 고정되어 있는 셈이다.]는 것을 고대인의 평균적인 상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겉보기 운동의 직관성에 따라 관측자가 운동의 중심을 자신으로 두는 것은 당연한 접근이었다.[* 이러한 겉보기 운동과 과학적 실체의 불일치는 이후 [[상대성 이론]]에서도 반복된다.] 심지어 지동설이 정립된 오늘날에도 '[[일출]]'과 '[[일몰]]',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같은 말이 쓰이고 중, 고등학교 수준의 천문학 수업에서는 별과 관련한 교육 때 태양계를 중심에 놓고 별자리들이 움직이는 모델을 사용한다. 모두 겉보기 운동에 따른 직관성의 예로 들 수 있다.[* 다만 옛날에는 우주의 중심은 당연히 지구라고 여겼다면, 지금은 관측 가능한 우주를 기준으로 지구가 우주 중심에 놓이기 때문에 편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의 차이이다.] [[플라톤]]에 의해 동심원 모델이 등장하였고 에우독소스가 플라톤의 모델을 상당 부분 개량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동심원 모델이 확립되었다. 2세기 경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천동설을 집대성하여 '알마게스트'를 저술하였다. 그는 이심원 모델과 주전원([[周]][[轉]][[圓]], epicycle) 모델, 동시심 모델을 이용하여 동심원 모델이 갖고 있는 오류들을 수정하였다. 즉, 궤도의 중심 자체가 지구 주위를 감싼 가상의 원(deferent)을 따라 공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성]]의 궤도에서 [[행성]]만 쏙 빼놓은 셈. 이러한 방법은 비록 여러 개의 주전원을 사용하는 등 복잡하긴 하지만 겉보기 운동을 매우 수학적으로 정교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수학적으로는 복잡한 궤도를 [[푸리에 해석]]을 통해서 분석한 것과 정확히 동일하다. 각 주전원은 푸리에 급수의 항 하나에 해당된다. 단지 프톨레마이오스 시기에는 아직 무한급수와 [[허수]], [[자연로그의 밑]]의 개념(즉, [math(e^{in\pi x}= \cos\left(n\pi x\right) + i \sin\left(n\pi x\right))])이 없었으므로 사람의 손으로는 정확한 궤도를 계산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뿐이다.] 예를 들면 프톨레마이오스식 주전원 이론을 적용한 아래의 동영상처럼 말이다. [youtube(EpSy0Lkm3zM)] 당시 천동설은 금성과 화성 등의 불규칙한 위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서 복잡한 궤도를 그려냈어야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당시까지 관측된 천체들의 움직임을 설명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민중과 학계 모두에서 널리 받아들여졌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는 천동설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였지만, 우주 구조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은 양극단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우주의 구조에 대한 철학적 의문에 집중했던 반면, 프톨레마이오스는 우주의 구조를 수학적 모델을 통해 설명하려는 것에 집중하였기 때문이다. 중세에 이르러서는 고대인들의 경우처럼 직관성만으로 천동설이 지지받은 것이 아니었다. 이 시기가 되면 정교한 주전원 궤도 모델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천문 관측 자료가 축적되어 있었다. 이미 [[지동설]]에 대한 이론도 [[아리스타르코스]]에 의해 제기된 바 있고,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지동설을 검토할 가치가 있는 가설로 간주했다. 그러나 당시까지의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한 천문학에서는 천동설로도 천체의 움직임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천동설이 여전히 지배적이었던 것이다. 천동설이 받아들여진 배경에는 현대와는 다른 중세의 자연철학 관념도 이유가 되었다. 중세의 과학 이론은 그 자체로 완전무결한 아름다움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원소설]]부터 시작하여 우주가 단순히 빈 공간이 아닌 무언가로 가득 차 있다는 [[에테르]] 가설, 불의 원소가 과학적으로 존재할 것이라는 [[플로지스톤]] 가설, 만물을 변환시킬 수 있다는 [[현자의 돌]] 등 전지전능한 [[신]]이 창조한 우주에 예외와 불완전성이란 받아들이기 힘든 개념이었다. 이 때문에 [[지동설]] 자체는 천동설이 주류였던 당시에도 일리있는 가설 정도로는 대접을 받았으나, 그 궤도가 [[원(도형)|원]]이 아닌 [[타원]]이라는 사실은 16세기 [[요하네스 케플러]]가 증명하기 전까지 천동설도 지동설도 주위를 도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완벽한 원운동을 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과학의 무결성'에 대한 믿음은 중세 이후에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가 만든 지동설 모형도 그러한 영향을 받아 행성 궤도를 원형으로 전제하는 오류가 존재했으며, 심지어 무결성에 대한 믿음은 현대까지 이어져 [[양자역학]]이 학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는 주 요인이 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역작 《[[알마게스트]]》는 9세기에 이븐 후나인 등의 학자들에 의해 수차례 번역되었다. [[이슬람교]] 문화권에서는 점성술을 '신의 뜻을 알 수 있는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해서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한 천문학을 크게 발전시켰다. 프톨레마이오스가 제안한 궤도와 이슬람 학자들이 관찰한 값에 차이가 있자, 대안이 될 수 있는 여러 모델에 대한 가설도 이슬람권에서 이미 제기되었다. 그리고 중세 성기 동안에는 이러한 자료들이 [[라틴어]]로 번역되어 [[유럽]] [[중세]] 사회에 널리 받아들여졌다. 후대의 [[코페르니쿠스]] 역시 지동설 주장에 이슬람권의 자료를 참고한 것으로 여겨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