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년성서모임 (문단 편집) == 연혁 == 1972년, [[http://www.solph.or.kr|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수녀님들이 신부님들의 도움을 받아 모임을 시작하였다. 당시 한국은 사회적으로 어두운 시기였으며 청년들은 신앙에 목말라 있었다. 그럼에도 [[한국 천주교]]에는 [[개신교]]와는 달리 특별히 마련된 성경 교육이 없었다. 그래서 당시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따르고 청년들의 신앙 갈증을 채워주기 위하여 성서생활화운동을 시작한다. 1971년 3월, 수녀들을 중심으로 소모임이 결성되었으며 1972년 7월 [[서울시]]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한 정릉 교육관에서 대학생을 중심으로 본 모임을 창설하였다. 1973년부터는 본당에서 모임이 결성되었으며 [[서울대교구]]의 가톨릭 프로그램으로 채택되어 '가톨릭 대학생 성서모임' 이 된다. 그리고 첫 연수를 시작하였다. [[천주교 대구대교구|대구대교구]]에서는 1976년에 처음 시작되었다. [* 2016년에 40주년 [[미사]]를 [[범어 대성당]]에서 봉헌하였다.] 사실 가톨릭성서모임이 70~80년대에 팽창하게 된 계기는, 슬프게도 민주화 및 노동 운동의 영향으로 일체의 학생모임이 금지된 시절, 성경 공부라는 명목으로 학생들이 모임을 가질 수 있었기에 확장된 영향도 있다.[* 출처: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2008), "노동사목위원회의 과거․현재․미래:주교 간담회", 서울대교구 노동사목 50년사, p44 [[http://www.nodongsamok.co.kr/_data/board_list_file/10/2015/150123113212.pdf|#]] ] 그 이후 꾸준히 발전과 확장을 계속하였고 1988년 5월 4일자로 [[천주교 서울대교구]] 청년사목국 소속 '가톨릭 청년성서모임'으로 승격되었다. 1997년 [[대구대교구]](연수 시작)와 [[인천교구]], 1999년 [[전주교구]]에도 도입되어 창세기 연수가 이루어졌고 현재는 [[한국 가톨릭]] 대부분의 교구에 청년성서모임이 생기며 매년 5천 명이 모임에 참가하고 이 중 3천 명이 연수를 받는,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 청년 교육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다른 나라로도 수출되었는데[* 지역만 외국일 뿐, 그룹공부나 연수는 [[한국인]] 봉사자와 [[사제(성직자)|사제]]가 진행한다], 1995년 [[미국]] 일리노이를 시작으로 로스앤젤레스, 뉴욕, 샌프란시스코, 버지니아, 보스턴, [[중국]] 북경, [[프랑스]] 파리, [[독일]], [[뉴질랜드]], [[호주]] 시드니, [[캐나다]] 벤쿠버와 토론토에서 그룹 모임이 생겨났고 로스엔젤레스(남가주), 뉴욕, 벤쿠버, 샌프란시스코 가톨릭 청년성서모임에서는 자체 연수도 하고 있다.[* 서울:<가톨릭 청년성서모임> 2006, 320p.] 2016년 8월에는 독일에서도 프랑크푸르트 본당을 중심으로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에서 온 연수생들로 첫 유럽 연수를 개최했다. 해외 성서모임에서는 한국인 2세들과 외국인들을 위하여 영어권/한국어권 으로 나누어 성서모임을 진행한다. 특히 남가주에서는 매년 탈출기 연수 후 2박 3일의 "사막 체험"이라는 프로그램으로 Death Valley, California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탈출기 체험을 직접 해볼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