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성잡기 (문단 편집) === 참수된 장사 장후량 === 야사를 모은 책이다 보니 어디서 들은 [[카더라]]로 인해 잘못된 이야기를 서술한 사례도 있다. >《삼연집(三淵集)》에 ‘장사를 애도함〔哀壯士〕’이란 시가 있는데 장후량을 위해서 지은 것이다. 장후량은 숙종(肅宗) 때에 무예와 용력으로 이름이 났는데, 조정에서 그를 변방에 쓰고자 하여 부령 부사(富寧府使)를 제수하였으나 장후량이 부임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군문(軍門)에 명하여 진법을 연습하게 하고는 그 자리에서 그를 참수하여 군중에 군명(君命)의 지엄함을 보였다. 이 일은 당 태종(唐太宗)이 노조상(盧祖尙)을 참수한 일[* 노조상(盧祖尙)은 당나라 사람으로 자는 계량(季良)이다. 628년 교주 도독(交州都督)에 제수되자 처음에는 받아들였으나 곧 후회하여 숙환을 핑계로 사양하였다. 거듭 설득했는데도 노조상이 계속 사양하자 태종은 크게 노하여 “내가 사람을 부리는데 따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천하를 다스리겠는가.” 하고는 조정에서 즉시 참수하였다. 《舊唐書 卷69 盧祖尙列傳》]과 같으니, 옛날에는 국가 기강의 지엄함이 이와 같았다. 그렇지만 허사첨사 장후량은 부령 부사 자리를 거부하여 참수된 것이 아니고 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ED%99%A9%EB%8B%B9%EC%84%A0(%E8%8D%92%E5%94%90%E8%88%B9)|황당선]]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형되었다.[[https://sillok.history.go.kr/id/ksa_10805009_001|#]] 이 일은 나중에 대사성 이선이 조정의 처분이 앞뒤가 안 맞는다고 살짝 비판한다.[[https://sillok.history.go.kr/id/ksa_10806019_001|#]] 아마 후대에 윤색되면서 주는 벼슬자리 함부로 고르면서 거부하지 말라는 교훈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