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와대 (문단 편집) === 청와대 건물과 입지의 문제점 === 청와대 본관은 1991년 9월 4일 완공 이래 수십 년간 이따금씩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주로 내부 소통이 어려운 구조라서 리모델링하거나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선거철마다 나온다. 논란은 네 가지로 요약된다. '''건물의 이름, 배치, 구조 및 형태, 자리 잡은 터''' 문제다. 물론 경제적인 어려움과 보안상의 어려움이 있다. * 한국은 전통적으로 각종 건축물을 세울 때 그냥 기능과 편의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고 그 안에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理想)이나 철학(哲學)을 담고자 건물의 배치나 각종 상징이나 명칭 등에 그러한 뜻을 관철시켜 놓았다. 예를 들자면, 경복궁의 정전(正殿)인 근정전(勤政殿)의 경우 임금의 공적인 근무처이니만큼 “부지런한 가운데 맑은 정치를 하라”는 뜻을 그 명칭에 부여한 것이고, 편전인 사정전(思政殿)도 “임금이 깊게 생각하여 옳고 그름을 가려 백성을 굽어 살필 수 있도록 취해야 할 마음가짐”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제국]] 시기에 그냥 돌로 만든 궁전(...)이라는 의미의 '[[덕수궁 석조전|석조전(石造殿)]]'도 세워진 것을 보면 이것도 좀 애매하긴 하다.] 그런데 청와대는 단순히 푸른 기와가 얹혀진 집이기에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 그래서 건축물의 소재를 작명에 썼으니 당연히 국가 기관의 이름을 정하는 데 고심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아 청와대 명칭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 본관 건물은 전통 목조 건물 구조에 팔작지붕을 올리는 등 궁궐 건축 양식을 따랐다. 그런데 규모가 너무 커서[* 약 25㏊(253,504㎡)에 이르는 청와대 터는 미국의 [[백악관]](7.3㏊)보다 3.5배가 더 크고 중국의 [[중남해]](3㏊)보다 2.5배가 더 크다.] 나무가 아니라 콘크리트로 지었다. 그래서 청와대를 “'''[[박조건축|전형적인 봉건왕조 건축의 짝퉁]]'''”이라고 평가하는 건축가도 있다. 당시 설계를 맡았던 정림건축의 김정식 대표(현 목천김정식문화재단 이사장)는 2011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청와대는 여러 가지 논란이 많았다”며 “본관을 2층으로 하려니 지붕을 어떤 형태로 하느냐를 놓고 서양식이냐 한국 스타일로 전통적인 양식을 취할 것이냐 하다가 전통으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또한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게 전통 한국 건축의 기본인데 청와대 건물은 주변의 지형이나 앞에 있는 [[경복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 본관 좌우로 배치된 별채의 이름이 실로 엉뚱하다는 지적이 있다. 하나는 세종실이고, 또 하나는 충무실인데, 아무리 대통령 공관일지라도 후손된 도리로서 그들의 이름을 좌청룡 우백호의 건축물에 빗대어 마치 신하를 거느리듯 함부로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동쪽 별채가 충무실이고, 서쪽 별채가 세종실인데, 본채가 남향할 경우 음양오행 이론상 왼편인 동쪽이 문(文)이고, 오른편인 서쪽이 무(武)다. 그런데 문을 상징하는 세종실을 서쪽에, 무를 상징하는 충무실을 동쪽에 두어 위치를 서로 바꿔 놓았다. 경복궁의 융문루(동쪽·좌측)와 융무루(서쪽·우측) 배치 상태와, 삼문 출입 시 가운데 문을 기준으로 동쪽 문을 문관, 서쪽 문을 무관이 각각 이용한 사실만 보더라도 그것은 한국 건축의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건물 내부의 경우 업무 공간이 지나치게 커서 사람을 압도한다는 지적이 많다. 본관 2층 대통령 집무실은 운동장만 한 크기에 책상과 회의용 탁자가 집기의 전부다. 구조 자체가 사람을 주눅들게 한다.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간 고위 관료가 뒷걸음질쳐 나오다 넘어졌다거나 너무 긴장해 뒤로 넘어져 쓰러진 일화가 있을 정도다. * 대통령이 수시로 조언을 구하고 지시를 해야할 비서실 직원들과 동떨어진 공간에서 근무하는 불통과 비효율 문제도 계속 지적되어 왔다. 청와대 비서실 건물인 여민관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본관의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를 하러 가려면 아직도 두 개의 초소를 통과해야 한다. 물리적·심리적 거리감이 배가 될 수밖에 없다. * 청와대 경내에는 대통령이 마음을 가다듬거나 닦을 수 있는 상징물이 없다. 미국 [[워싱턴 D.C.]]에는 [[워싱턴 기념탑]]을 중심으로 백악관과 제퍼슨 기념관, 국회의사당과 링컨 기념관이 각각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런 건축물은 대통령이 수심(修心)하고 자성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조선왕조 때에도 경복궁을 중심으로 배치된 동서축의 [[종묘]]와 [[사직단]], 남북축의 북악신사와 목멱신사가 있었다. 종묘는 왕실의 조상에게 한 점 부끄럼 없는 올바른 정치를, 사직단은 토지신에게 풍년을 빌어 백성의 살림살이를 궁핍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애민(愛民)정신을 왕에게 심어주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현 청와대 경내에는 기껏해야 역대 대통령들이 기념 식수해 놓은 나무와 푯돌, 그리고 세종실 입구에 걸어 놓은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화가 전부다. 대통령의 수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상징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 [[윤석열]]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 취임 이후 이전된 [[대한민국 대통령실]] 남쪽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 대통령실 서쪽에 [[전쟁기념관]]이 자리하여 [[역사]](중박), [[전쟁]]과 [[평화]](전쟁기념관)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 청와대가 땅을 너무 많이 차지해 주변 개발에 장애가 되고 있다. 경비를 위한 군부대,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는 지역까지 합하면 엄청난 땅이 사실상 청와대 때문에 묶여있으나, 청와대를 옮기면 그 터와 주변 지역이 [[서울특별시/강북|강북]] 발전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 [[경복궁]]의 후원이었다는 역사성을 감안하면 주거용지로의 개발은 불가능할 것이지만, 역사·문화의 중심지로 서울을 새롭게 디자인할 수 있다. 청와대를 본래대로 경복궁의 후원으로 복원한다면 서울의 4대문 안 전역을 관광 자원화할 수 있다. * 청와대가 서울 시내에서 너무 외진 곳에 있어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서울특별시]]의 중심인 [[종로구]]에 있지만, 바로 뒤로는 [[북악산]]이 자리잡고 있으며 정면으로는 [[경복궁]]이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어서[* 경복궁 자체는 많은 관람객이 찾는 시설이지만, 경복궁은 꽤 넓고 일반 관람객은 남쪽 정문으로 진입하기 때문에 청와대와 맞닿은 경복궁 북쪽 담장은 경복궁에서 가장 외진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중심이라면 중심인데 중심이 아닌 느낌. 그래서 서울의 배꼽이라고 할 수 있는 '''[[용산구]]로 청와대 이전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있었으며, 특히 [[용산기지]] 이전으로 청와대의 용산 이전론이 제시되었다. 서울 시내에서 청와대가 옮겨갈 만큼 넉넉한 부지가 용산 이외에는 없을뿐만 아니라 기존 지하 시설을 활용할 수 있다. 원주민에 대한 보상이 불필요한 점도 장점으로 꼽혔다. 이후 [[윤석열 정부]]에서 용산기지에 자리한 국방부 청사로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였다. * 청와대가 [[풍수지리]]상 터가 좋지 않아[* 조선시대에는 귀신과 혼들이 노니는 음기가 강한 곳이었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역대 대통령들의 말년이 대부분 나쁜 것이라며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도 로비스트 데보라 심의 입을 빌어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굳이 풍수지리가 아니더라도 본래 청와대 터가 조선시대 [[칠궁]]과 같은 사당이나 호위무사 연습 터로 쓰던 자리였기 때문에 자연으로 돌려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자세한 내용을 담은 조선일보 [[http://m.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A&nNewsNumb=201808100024&fbclid=IwAR24dg1wrWxcfdXM-nDILJpTRncSB1Euhq0Qj0UQP-P3oqKJhuHVpIF92HE|기사]]. 이와 함께 조선일보는 청와대 터가 문제 없다는 상반된 내용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 해당 내용을 담은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2/01/2019020101556.html|기사]] 이후 내부가 공개되면서 터가 문제라기보단 구중궁궐에 필적할 정도로 호화스러운 곳에서 5년간 생활하면서 자연스레 그 환경에 적응되어 국민들과 소통이 어려워졌다는 의견이 많다. 사람이 사는 환경은 사람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 앞 내용들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문제가 '''청와대가 너무 크고 넓다'''는 것에 있는데, 이것 때문에 경호상에도 문제가 있고,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난 사항들을 보좌진들도 몰랐을 정도로 __대통령이 작정하고 숨거나 뭔가를 숨기려면 숨길 수 있는 구중궁궐 같은 공간__으로 악용하기 딱 좋은 관저이므로 대통령의 업무에만 쓸 수 있는 적절한 새로운 공간을 대통령 관저로 쓰고 청와대는 다른 방식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이후 제기되었다. * 이것 때문에 [[대만]] [[총통부(대만)|총통부]]처럼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를 분리하는 게 좋다는 말이 많다. 집무실은 [[용산역]] 뒤 국제업무지구 또는 미군기지 부지에 새로 짓고 관저는 [[이촌동]]이나 외교부장관, 대법원장 관저가 있는 [[한남동]]으로 옮기는 안이 제시된 적도 있다. 이는 [[윤석열 정부]]에서 외교부장관 공관을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대통령 관저]]로 사용하게 되면서 실현되었다. 참고로 '''대한민국 청와대는 [[미국]] [[백악관]]보다 부지가 크고 외진 곳에 들어가 있다.''' [[미국]] [[백악관]]은 대한민국 청와대보다 부지가 작으며 '''[[지하철]] 역 바로 앞에 있어서''' 접근성도 매우 뛰어나다. [[중국]] [[중난하이]]는 대한민국 청와대보다 부지가 크지만 그래도 접근성이 매우 뛰어난 편이다. [[러시아]] 대통령 관저인 [[크렘린]] 역시 대한민국 청와대보다 부지가 크지만 역시 지하철역 앞에 있어서 접근성이 매우 좋다. [[독일]] 총리의 집무실인 [[연방수상부]]도 대한민국 청와대 규모의 ¼에 불과하며 [[독일]] [[국회의사당역(베를린)|국회의사당역]] 앞에 있다. [[일본]] [[수상관저]](칸테이)도 [[국회의사당역(도쿄)|국회의사당역]] 바로 옆에 있으며 청와대 부지의 20% 수준밖에 안 된다. [[대만]] [[총통부(대만)|총통부]] 관저도 청와대보다 훨씬 작고 [[샤오난먼역]]에서 고작 걸어서 6분 거리이며, [[베트남]] 주석궁(Phủ Chủ tịch)도 청와대의 절반 정도 크기에 도심 한가운데 국회의사당 바로 옆에 있어 접근하기 매우 편하다. 게다가 영국 총리관저인 [[다우닝 가 10번지]] 건물은 '''3층짜리 단독주택 하나'''다. 물론 대한민국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일 뿐만 아니라 영국 여왕, 일본 천황과 같은 국가원수로서 역할도 있기 때문에 단독주택에서 살라는 건 무리지만 그래도 위에 말한 백악관, 중남해, 크렘린 등은 모두 시가지 가운데의 평지에 있어서 바로 뒤에 산을 낀 청와대보다 훨씬 개방적인 위치다. 전 세계를 둘러봐도 청와대마냥 크고 외진 곳에 위치한 집무실은 [[북한]]의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 이전에 사용하던 [[주석궁]]은 지하철 [[광명역(혁신선)|광명역]]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다.], [[미얀마]][* 천도 전 사용하던 총리 집무실은 [[양곤순환선]] 양곤 중앙역에서 '''1㎞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정도밖에 없기도 하다. 그마저도 이 둘은 집무실을 옮기면서 비슷하게 된 경우로, 이전에는 도심 한복판 접근하기 쉬운 공간에 집무실이 위치해 있었다. 사실 [[대한민국]]도 도심 한복판에 대통령부를 둘 뻔한 적이 있는데,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이 황실 재산을 국유화하며 [[운현궁]]을 압류해 대통령부로 사용하려 했으나 운현궁의 주인인 흥선대원군 종손들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결국 경무대는 비어있던 옛 조선 총독 관저 자리로 들어왔고 그 부지가 청와대로 이어졌다. 원인이 어찌되었든 청와대의 비효율적일 정도로 넓은 부지와[* 고급 가구와 미술품이 즐비한 백악관이나 진짜로 왕가의 궁전이었던 크렘린과 엘리제 궁전 등 청와대보다 넓거나 호화로운 정부 수반 관저는 널렸으나, 청와대는 현대 건축인데도 효율 문제가 있었다. 1997년 2월 4일에 지어진 [[독일]] [[베를린]] [[연방총리청]] 같은 경우는 집무실과 비서실이 15걸음 거리에 있을 정도로 부서 간의 접근성이 뛰어나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10370582#home|#]]] 경복궁 후원이었던 장소에 세워진 특성상 일국의 정치 중심지치고는 너무도 외진 곳에 세워졌다는 사실이 문제로 꼽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