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체커스 (문단 편집) === 해산 이유 === [[1986년]] 하반기부터 작곡가의 곡이 아닌 멤버들의 자작곡으로 그룹의 노선에 변화가 생겼다. 이때부터 저작권료로 인해 멤버 간의 수입에 격차가 벌어졌고, 멤버 중 유일하게 재능이 없던 타카모쿠 요시히코의 입지가 난처해진다.[* 그가 다룰 줄 아는 악기라곤 탬버린이 전부다.] 다른 멤버들은 [[작사]]나 [[작곡]]에 참여했지만, 타카모쿠는 [[시기]]와 [[질투]]만 할 뿐이었다. 그는 평상시 그룹 안에서 대장 노릇을 했고, 자신이 체커즈 인기의 핵심 멤버라는 착각까지 한 것 같다. [[1989년]] 무렵부터 서서히 타카모쿠와 후미야 사이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후지이 후미야는 예전처럼 돌아가자는 의미를 담은[* 두 사람은 유치원 때부터 소꿉친구다.] 'Friends and Dream'이라는 곡으로 [[화해]]의 손길을 건냈지만, 타카모쿠의 과한 질투심으로 화해의 성과는 없었다. 1991년 연말부터 시작된 레코딩 중에 후미야는 체커즈를 그만두고 싶다고 멤버들에게 의사를 밝혔고, 프로덕션 사장의 결정에 의해 1992년 12월 31일, [[홍백가합전]]을 끝으로 [[해산]]하게 된다. '''타카모쿠의 돈에 대한 질투와 밴드의 방향성의 차이'''로 해산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해산 이후 [[2003년]] 타카모쿠 요시히코가 쓴 동명의 폭로책이 발간되었는데 후지이 후미야를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데뷔 후 멤버들이 자작곡을 쓰기 전까지 곡을 제공해온 세리자와 히로아키도 '후미야가 돈을 위해 오리지널 곡을 썼다'며 후미야를 비난했다. 다행히 세리자와 히로아키와는 2020년, 34년 만에 오해를 풀고 화해를 했다. 이런 상황 속 2004년 8월 17일 토쿠나가 요시야가 [[설암]]으로 사망하는데 임종을 지킨 후지이 형제와 타케우치, 오오토이, WILD-G의 쿠마 토미타로가 주축이 되어 '토쿠나가 요시야를 보내는 모임'을 열었다. 타카모쿠와 츠루쿠는 토쿠나가와 교류가 끊겨 참석만 허락됐다. 이 둘은 전 멤버가 발기인이 되지 못한데 대해 항의했다. 특히 타카모쿠는 후미야가 "엉터리뿐인 내용이니 읽지 않는 게 좋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읽지도 않았으면서 엉터리라고 말하다니 뭐냐?"고 반발해 소송도 검토하겠다고 격노했다. 결국 이 사건으로 두 사람은 완전히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