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초저항 (문단 편집) == 도입 당시 부정부패 == 1호선 개통 당시 일본 회사에서 차량을 도입하기로 계약을 맺었는데, 이 때 한국 측에서 일본제 전동차를 정가의 2배 이상이라는 바가지 가격[* 1972년 당초 도입가액 84억엔이지만, 1973년 제1차 [[석유파동]]으로 인해 118억엔으로 상승함.]에 사겠다는 계약을 맺었다. 대신 일본 기업들은 이 수익금 중 일부를 바가지 계약에 대한 댓가로 비밀리에 한국측 관계자에게 환급(리베이트)을 해줬고 환급된 만큼을 [[민주공화당]], 대통령 [[박정희]]와 당 재정위원장 [[김성곤]]이 [[먹튀|그대로 꿀꺽해버렸다]]. 이 때 리베이트로 넘어온 자금이 250만 달러로 현재 한화 가치로 172억원정도 한다. 그리고 한국에선 앞으로 잘 봐달라는 의미에서 정치자금성 뇌물 130만 달러를 일본측에 돌려줬다. [youtube(7DoJ1VgOF7Q)] 한국에서는 [[언론통제]]와 입막음으로 이 서울지하철 스캔들이 은폐되었고, 정작 이 사건이 가장 크게 정국을 뒤흔든건 일본이었다. 사건 4년 뒤 박정희와 갈등을 빚고 망명을 간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이 부정부패 스캔들을 일본 측에 내부고발해 사건의 진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당시 일본에서 큰 부정부패 사건이어서 정국이 뒤집어졌는데, [[일본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실시해 불법적인 계약과 서울지하철 차관 리베이트, 서울지하철 전동차 구매 리베이트 등이 밝혀졌다. 당시 일본의 거물 정치인으로서 총리도 지냈던 [[기시 노부스케]]가 한국측이 보낸 뇌물 130만 달러에 연루되어 있었는데, 이 스캔들로 큰 정치적 타격을 입은 기시의 당 내 입지는 좁아들었고 결국 자민당 내 기시의 파벌이 쇠퇴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만다. 기시는 2년도 못 가 자기 라인의 거두 [[후쿠다 다케오]]가 힘을 못피고 당에서 버려지는 모습을 보고 결국 정치계를 은퇴하게 된다. 한편 동일한 시기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미 의원 로비 폭로 등으로 [[코리아게이트]] 사태가 촉발되자 미국 정부는 한국 군사정권의 부정부패에 대해 뒷조사를 하는데 이 때 서울지하철 리베이트 사건 역시 수사대상에 제대로 걸려든다. 미국 정부는 일본과 한국이 체이스 맨해튼, 마린 미드랜드 등 미국 은행들을 돈 세탁용으로 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서울 지하철 1호선, version=685, paragraph=6.3)]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