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총력전 (문단 편집) == 대비 == [[일본군]]은 [[태평양 전쟁]]에서 총력전을 부르짖으면서도 총력전의 개념을 제대로 못 이해하고 "전 국민을 전쟁터로 보내는 것" 수준으로만 생각해서 오히려 스스로 전쟁 수행 능력을 막장으로 떨어뜨렸는데, 숙련공을 죄다 병사로 차출해 전선으로 내보내어 무기 생산에 치명적인 지장을 부르는 삽질을 했다.[* 1차 세계대전 후 일본에서 미래의 전쟁에 대해 여러 논의가 '''20년대부터''' 나온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 저런 삽질의 결과물은 대전 중후반기 [[Ki-84]]와 [[치하]]의 부품이 공장별로 호환이 안 되어 정비에 차질이 생기는 것과, 품질 자체의 저하였다.] 이런 숙련공들이 대본영의 한심한 삽질로 전선에 끌려나가자 오각형 너트 같은 해괴한 물건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부품으로 만든 물건들 성능이 어땠느냐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또한 물자를 아낀답시고 [[국민복]]이나 [[몸뻬]]를 입기를 강요하거나, 위문 [[편지]]를 보내지 말거나, 생산 중인 옷도 아닌 이미 만든 옷에서 소매를 짧게 자르라고 하는 등[* 정작 일본군의 군수품 생산에 있어서 병목 자원은 [[니켈]], [[석유]]와 [[아카시 공작함|정밀 공작 기계]]였지, 종이나 옷에서 자른 천 쪼가리 따위가 아니었다.] 뜻 모를 명령으로 자국민만 신나게 괴롭히다가 비참하게 패망했다.[* 일본군은 전쟁 말기 옥쇄 분위기까지 나오던 시기를 빼면 일반적으로 알던 것과는 달리 인구 대비 병력은 적은 편이었다. 식량 생산을 위해 농촌에 사람이 많이 필요하니, 청년들을 무작정 전장에 차출하면 당장 식량이 모자라서였다. 그러나 전쟁 말기에는 일단 징집하고 봤으며, 이때부터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이 전장의 총알받이로 내몰렸다.] 그리고 공업지대와 주거지대를 뒤섞은 주먹구구식 도시계획을 하다가 공업 능력을 마비시킬 전략 폭격의 일환으로 [[도쿄 대공습]]을 얻어맞았다. 자원이고 뭐고 다 바닥나기 시작하면서 놋그릇까지 공출해가기 시작한 1944년 일본의 국가 총생산에서 군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80%에 근접할 정도였지만, 그 정도로도 미국 군비지출의 20%에 불과했다. --일본 GDP의 '''400%''' = 미국 군비지출-- 이미 일본은 진주만 공습을 실시하기 직전, 총력전을 벌이면 그 결과가 어떤지를 알기 위해 젊은 인재들을 모아서 '[[총력전 연구소]]'를 설립해 연구를 시킨 적이 있다. 당연히 이 연구원들이 얻은 결과는 '미국과 총력전 상태에 들어가면 일본은 반드시 패배'였다. ~~[[역시 일본 해군은 강해|부활 시키면 되니까 문제없다.]]~~ 그러나 일본은 전쟁 시도를 중단하거나 하다못해 이 연구에서 지적된 문제점들을 극복할 생각을 하는 대신 [[진주만 공습|힘껏 싸대기를 날려 미국을 협상장으로 끌어내려는 생각]]으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 그리고 망했다.--[[답정너|그러면 연구소는 왜 만든 거야]]-- 반면 유럽의 군대는 전쟁 중에 자동화 시설을 더욱 늘리고 숙련공을 철저하게 보호했으며, 심지어 숙련공이 모자라자 전선의 병력에서 숙련공으로 키울 만한 인력을 일부 뽑아다 공장에 보내기까지 했다. 예를 들면 참호전에 필요한 [[단검]]의 수요가 급증하자 전선에 복무 중인 '''모든''' 칼 제조공을 제대 시켜 단검 제작 공장으로 보내기도 했다. 다만 이건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을 때 이야기지, 이미 막장 상태였던 대전 최후기의 추축국은 숙련공이고 뭐고 다 전선으로 집어 던졌다.[* 독일 또한 1942년에는 약 국가 총생산의 50%, 대전기 내내 최대의 생산량을 기록했던 1944년에는 70% 이상을 군비로 쥐어 짜냈다. 반면 이탈리아는 전면전 수행 중임에도 국가 공업 및 산업체계가 총력전 체계로 완전히 이행되지 못했기에 실질적인 군비 지출은 항복 직전 1943년 기준으로도 GDP의 20%대 정도에 불과했다. 사실 이부분에선 빨치산 활동을 포함한 반무솔리니 주의자들의 북부 공장지대 사보타지와 태업, 그리고 무솔리니 본인의 삽질로 인해 근대화에 접어들 시기에 하라는 발전은 안하고 이득도 없는 전쟁개입만 주구장창 해댄탓에 GDP로 짜내고 짜내도 생산할 공장시설 자체가 부족하니까 생긴 예외적 상황에 가깝다.] 현대 대한민국도 총력전에 대비하여 국가가 지정한 기술자나 과학자 등 인재들은 징집하지 않고 대신 지정한 공장[* 군수공장만이 아니라 경공업도 들어간다. 전쟁 중에는 상당수 물자의 자급자족도 필요한 일. 또 다른 이유는 국민들에게 필요한 생필품과 물건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총력전을 한 어느 국가에서도 모든 생산시설을 군수로 돌리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국민들이 최소한 필요로 하는 생필품마저 안 만들면 국민들의 불만이 올라가면서 전쟁 수행에 어마어마한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불만이 너무 높으면 전쟁 반대나 시위에, 심지어는 반란까지 날 수 있다. 게다가 비누, 의약품 같은 물품들은 없으면 추가로 전염병에 취약한 환경을 만들어 생화학 무기 따위로 인한 피해를 더 키울 수 있다.]에서 일하게 하며, 이공계생들은 산업기능요원 특례 등을 통해 군 복무를 대체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들은 전쟁 중 및 전후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산업 현장에 곧바로 투입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