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총여학생회 (문단 편집) == 역사 == [[여자대학교]]나 일부 단과대를[* [[생활과학대학]], [[예술대학]], [[간호대학]] 정도. 근래에는 여초인 경우가 많은 [[사범대학]], [[인문대학]] 역시 90년대까지는 그나마 여학생이 좀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남초였다.]제외하면, 과거에 대학은 대부분 [[남초]] 집단이었다. 과거에는 없는 살림에 기왕이면 남성에게 교육을 더 시키려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리고 여자가 공부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여, 생활에 여유가 있으면서도 딸을 의무교육 이상까지 공부시키지 않는 집도 많았다.[* [[육영수]]의 친정은 어마어마한 부자였지만, 아버지 육종관은 대학까지 진학하고 싶다는 딸의 바람을 무시하고 [[고등여학교]]까지만 공부시켰다.] 실질적으로 여성의 대학 입학은 집안 사정과는 상관없이 눈에 띄게 성취도가 높아 공부를 잘하던가, 집안이 일정 이상의 재산과 신식 사고방식을 가져서 교육 기회를 충분히 보장받았거나, 아니면 정말 독하게 마음먹어서 집안 지원 없이 혹은 집안의 반대까지 적극적으로 거스르며 직접 돈 벌면서 힘들게 공부하는 일부 여성들에게만 열려 있었다. 한국에서 총여학생회의 등장은 기본적으로 대학 내 운동권의 등장과 함께 이루어졌다. 기본적으로 남초 사회였던 대학은 민주화 운동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사회운동 집단으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동시에 가부장적 문화와 운동권 문화가 혼합된 특유의 대학 문화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대학 내 여학생들이 겪는 차별과 각종 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총여학생회가 등장하게 된다. 대학 내 여학생들이 겪는 문제들은 상상 이상이었는데, 실제로 민주화 운동을 위해 노력하는 남성 학우들의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여학생들이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농담 따먹기처럼 이루어졌었고, 혁명을 위해 남학우들이 노력하니 설거지 같은 잡무는 여학우들이 다 하라는 식의 차별은 상당히 일상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졌다. 이외에도 여학생 대상의 강간 문제도 심각했는데, 이러한 사건들은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 + 민주화 운동을 하는 단체의 대의를 더럽혀선 안된다는 이유로 덮여버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알려져 있다. 총여학생회의 등장은 이러한 운동권 내의 혁명 이론과 가부장적 문화의 충돌을 겪는 과정에서 운동권 여성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총여학생회가 대학 전반에 퍼지게 된 계기를 만든 것이 현재의 [[심상정]] 의원이다.[* [[심상정]] 의원은 [[서울대학교]]에서 80년대 직접 총여학생회를 창설하여 당시 여학생들을 대변하던 것으로 유명했다. 실제로 운동권 남학생들이 같이 운동을 하던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돕고 싶으면 설거지나 하라"는 식의 성차별적인 발언을 던질 때마다 강하게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 총여학생회는 운동권 남학생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총학생회에 대응하여 여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였고, 당시 기준으로는 한국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던 해외의 페미니즘 운동을 공부하는 집단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이 끝나고 90년대, 2000년대를 지나 운동권의 힘이 상실되고, 더 이상 대학이 남초 집단이 아니게 되자 총여학생회의 역할은 혼란을 맞이하게 된다. 총여학생회는 심각한 가부장적 문화를 가진 남초 집단인 당시의 대학 사회에서 여학생들이 소수자로서 자신들을 보호하고 목소리를 내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여학생들이 더이상 소수자가 아니게 됨에 따라 그 근본 의미를 재수정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사실 이하의 총여학생회에 대한 비판의 상당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 대학 사회의 특수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애초에 총여학생회는 가부장적 경향이 매우 심각했던 당시 대학 사회에서 여학생들이 정공법으로는 도저히 대학 내 학생기구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서 생겨난 특수 조직이기 때문이다. 총여학생회가 가진 대부분의 문제점들은 사실 이러한 과거를 현재까지 변화없이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의 총여학생회가 바로 이 이유를 근거로 들며 스스로 해산 후 총학생회에 평화적으로 흡수되었는데, 한국외대의 입학자 성비는 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확고한 여초로 오히려 남학생 쪽이 소수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총여학생회는 2000년대 이후부터는 총학생회의 주요 업무인 학생복지 업무 중 여학생과 관련된 일부 업무만을 전담하는 식으로 방향을 틀게 되며, 동시에 이는 총학생회의 산하 집단이 아닌 별개의 집단으로 존치할 필요성이 있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졌다. 이미 총학생회가 있으니 여학생 관련 업무는 총학생회 산하 기구에서 처리하면 될 일인데 굳이 총여학생회를 따로 떼서 처리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총여학생회가 폐지를 거듭하면서 페미니즘 진영은 학생회 체제에서 벗어난 다른 방식의 총여학생회 체계 중 어느 것이 효과적인지 연구를 거듭하며 원치 않은 여학생 자치계의 휴지기를 거치는 중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