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총통기 (문단 편집) == 설명 == 당시 유행한 [[오르간 건]]이 변형된 무기이기도 하며, 최근에는 원시적인 [[기관총]]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을 정도로 발사시에 무려 50개의 발사관이 지연사격 되면서 수십초에 걸쳐서 200발에 달하는 관통력을 갖춘 탄환[* 총통기에 장착된 50개의 총통 하나당 대략 4개의 작은 화살을 쏘아내서 무려 200발을 20~30초 동안 발사하는데, 작은 화살들도 중세시대의 철환이 아니라 작은 화살촉이라서 현대의 관통력을 추구하는 자탄과 더욱 유사했다.]을 근접한 거리에서 끊임없이 쏘아냈으며, 심지어는 1인 운용 화포로서 발사 도중에도 사수가 직접적으로 조준점을 바꿔가면서 화살비를 뿌려댈 수 있었다. 비록 원시적인 아이디어이지만, 현대의 경기관총과 유사한 효과 및 운용법이 실제로 사용되었던 중세시대의 화포였다. 실질적인 개발연도는 문종 1년인 '''1451년'''으로서, 시대를 생각해도 상당히 선진적이고 독특한 무기임을 알 수 있다. 조선에는 이 총통기 이외에도 [[덕 풋 피스톨]]이나 [[오르간 건]]에 해당하는 십연자포, 오연자포와 같은 연발식 총포류가 있었다. 하지만 사용법이나 탄창의 개수에서 총통기는 굉장히 세련되고 완성도가 높은 형식이다. 가까운 중국이나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그 시대에 관통력이 충분한 탄환 200발을 연사하면서 직접적으로 방향까지 조준할 수 있는 원시적인 [[기관총]] 형태의 화약무기를 개발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실전에 배치하고 오랫동안 써먹었던 나라는 전무하다. 또한, 의외로 경제적으로도 성능이 뛰어났다고 한다. 일종의 경기관총처럼 적의 진입로에 있는 경무장 보병들을 제압할 수 있는 이 화차를 산간 지역에 배치한다고 생각을 해보면, 최전선의 벽지에서 근무하는 상비군의 숫자를 줄이고, 위급시에도 병사들의 머릿수를 각 지역에 효과적으로 순환시킬 수 있었다. 때문에, 많은 인력 숫자의 진입과 생활이 어려운 북방과 산악지역에서는 불필요한 군인들을 계속 추가하느라 그들이 먹는 식량과 보급품을 줄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병사 수십명의 일제사격과 비슷한 수준의 대인 살상력을 지닌 경기관총 같은 화포를 상비하면 아군에게나 적들에게나 그곳으로 진입하기가 어려운 지형의 특성상 적은 병사들의 숫자로도 방어할 수가 있으니, 생활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한정되어 있는 추운 지형 속으로 더 많은 군인들을 단순무식하게 계속해서 꼴아박아서 식량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경제적인 효과가 상당했다고 한다.[* 현대에도 사람이 살기 좋은 평지에는 수백만명이라도 효율적으로 살 수 있지만, 춥고 험난한 오지에는 소수의 군대를 5000명 정도만 배치하더라도 국가 예산급의 엄청난 경제력이 지속적으로 소모된다. 게다가 중세시절에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실력의 병사를 육성하려면 수십년이 걸렸고, 그런 병사들을 배치해놓더라도 적의 병사를 한명씩이라도 확실히 죽이려면 한참 시간이 걸리고 식량과 봉급을 매일매일 무지막지하게 퍼줘야 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이런 경기관총 같은 화포 하나를 산 위에 올려놓기만 하더라도 엄청난 경제력이 절약된다. 현대 국군이 최소 비용으로 수만명의 전투력을 커버할 수 있는 [[포방부]], [[화력덕후]]를 지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한마디로, 중세시대에 [[맥심 기관총]], [[개틀링 기관총|개틀링]]과 같은 기관총의 개념과 운용법을 현실적으로 구현해냈을 뿐만 아니라, 군사 전략적으로도 아군 병사들의 인명 손실을 방지하고 국가의 경제력에도 기여했던 선구자적인 무기 체계였다고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