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범술 (문단 편집) == 사후 == 독립운동도 친일행각도 분명하여 친일파냐 독립운동가냐 하는 문제로 평이 엇갈리고, 불교계에선 [[대처승]]이라는 이유로 까이기도 한다. 다만, 불교계 인사로서 친일행적을 보이면서도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돼 복역하기도 한 것을 보면 비밀리에 독립운동에 종사하기 위해 겉으로는 친일에 동조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당초 2005년 3월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 중 한 사람이었던 임명삼(林明三)[* 법명 혜봉(慧峰).]은 《친일승려 108인》이라는 책을 발간해 최범술을 '친일 승려' 중 한 사람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2005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잘못을 인정해 제1차 친일인사 명단에서 최범술을 제외했고, 2007년 4월 발표한 제2차 명단에서도 또한 최범술을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1002100046|제외했다]]. 추가적으로 만해 한용운의 '''《조선독립의 서》''' 원본을 소장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현재 원본의 행방은 알 수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