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세창 (문단 편집) == 생애 == 1934년 4월 17일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 명치정2정목(현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 계산동2가)[[https://bestagora.tistory.com/2541#SS2|#]]에서 [[독립운동가]] 출신[* [[의열단]], [[신간회]]에서 활동했다.]인 아버지 [[최윤동]]과 어머니 김창성 사이의 5남 2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http://news.kmib.co.kr/article/viewDetail.asp?newsClusterNo=01100201.19921003000000901|#]] 1945년 [[광복]] 후 [[경북고등학교|경북중학교]]에 입학했다가[* 경북고 34회 졸업생으로 대우하고 있다. 경북고-육사 2년 직계 선배가 노태우다.] 1948년 아버지 최윤동이 [[제헌 국회의원]]에 당선되자 상경하여 [[경동고등학교|경동중학교]](9회)에 전학해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13기)에 입학하여 군에 임관하였다. 생도 시절에는 중간 정도의 성적으로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으나 임관 후에는 철저한 명령 복종과 임무 수행 자세로 높이 평가받아 진압 작전 등 특수 작전에 동원되고는 했다. 1950년대 말 [[전두환]], [[장기오]], [[차지철]] 등과 함께 [[미국]]에서 특수전 훈련을 받기도 했다. 1977년 [[육군특수전사령부]] [[제3공수특전여단]]장([[준장]])에 임명되었고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 때도 진압군의 지휘관으로 투입되었다.[* 훗날 5.18 민주화운동 때에도 진압군의 지휘관 중 1명이었다.] 1979년 12.12 군사반란 당시 [[제1공수특전여단]]장 [[박희도]]와 더불어 휘하 병력인 제3공수특전여단을 동원하여 반란에 직접적으로 가담하면서 신군부의 일원이 된다. 최세창은 전두환으로부터 직속 상관인 정병주 육군특수전사령관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전두환한테 정병주 체포에 관해서는 다시 생각해달라고 간청하는 모습도 나오기는 했다.] 정병주 [[장군]]에게 [[쿠데타]] 가담을 설득하였으나 정병주의 거부로 실패하자 휘하 장교 [[박종규(1944)|박종규]] [[중령]]에게 체포를 지시한다.[* 여담으로 [[코리아게이트(드라마)]], [[제4공화국(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에서 정병주 육군특수전사령관이 만류하는데도 반란에 가담하겠다고 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대한민국 육군본부]]와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를 점령한 박희도, 최전방 9사단 병력을 중앙청 앞으로 출동시킨 [[노태우]]와 더불어 [[불법]]적인 병력 동원을한 반란 가담자로 특히 자기 직속 상관에게 총부리를 들이댄 가장 악질적 범죄자.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제3공수특전여단에 실탄 배부와 실탄 사용을 지시하는 등 신군부 정권 탄생을 위한 유혈 진압에도 일조했다.[* 시위대에 대한 발포 지시의 책임자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12.12 군사반란에서 공을 세운 것과 더불어 전두환의 직계 하나회 멤버[* 최세창의 하나회 가입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만년에 가입한 멤버로 초기 하나회 멤버는 아닌 것으로 알려진다.]로서 제5공화국에서 육군사관학교 13기 선두주자로 승승장구했다. 20사단장[* [[수도권(대한민국)|수도권]] 인근의 충정 부대이기 때문에 군사 정권에서 20사단장은 요직 중 하나였다.], [[수도방위사령부|수도방위사령관]], 1군단장, [[대한민국 육군참모차장|육군참모차장]] 등 요직을 역임했으며 대장 1차 보직 중 최고 요직인 [[제3야전군사령관]]으로 진급해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육군참모총장]] 영전을 눈 앞에 두었다. 그런데 전두환이 퇴임을 앞두고 충복인 하나회 12기 박희도 육군참모총장의 임기를 1년 연장함으로써 최세창은 어쩔 수 없이 합동참모의장[* 당시만 해도 합동참모의장은 작전권을 보유하지 않아서 참모총장에 비해 권한이 약했다. 선두주자였던 최세창이 합동참모의장에 그치면서 13기는 육군참모총장을 배출하지 못했다.]으로 가게 되었다. 이후 [[노태우 정부]]에서 전두환의 직계 군맥이었기 때문에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대장(계급)|대장]]으로 예편하였으며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을 역임하다가 예편 후 2년 반이 지나 노태우에게 다시 등용되어 국방부 장관 등을 역임하였다.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열린 [[12.12 군사반란]] 및 [[5.18 민주화운동]] 관련 [[재판(법률)|재판]]에서 반란 가담, 상관 살해 미수 등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98년 8월 15일 [[사면]]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