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연성 (문단 편집) == 커리어/선수 시절 활약상 == 유명한 아마추어 고수로 데뷔 당시부터 엄청난 기대를 받으며 등장하였다. 하지만 2003년 2월 치른 데뷔전에서는 [[박상익]]에게 완패했고[* 전성기가 짧긴 했지만 당시의 박상익은 못해도 중, 상위권 수준 저그는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최연성의 당시 경기력은 기대를 받았던 것치고는 대단히 엉망이었는데, [[임성춘]]은 이 경기를 보고는 기대가 컸는데 실망스러웠다고 평하기도 했다. 실제 경기를 보면 뭔가 계획은 있는데 계획대로 되지 않아 운영이 완전히 꼬여버린 모습이었다.], 이후 약 4개월 동안 공식전에는 출전하지 않다가, 같은 해 6월 공식전에 재등장한 후에는 완전한 괴물로 성장해 있는 상태였다.[* 이 기간 동안 빌드 연구를 위한 데이터 수집과 연습에 집중했으리라 추측해볼 수 있다.] 이 시점부터 연전연승을 달렸으며 결국 데뷔한 지 불과 8개월 만에 [[TG삼보 MSL]]에서 이병민, 이윤열, 홍진호를 차례로 다전제에서 꺾고 우승하고 그 뒤로 [[하나포스 센게임 MSL]]에서 강민, 이병민, [[김정민(게임 해설가)|김정민]]을 격파하고 결승전에서 이윤열을 이겼다. [[Spris MSL]]에서는 [[박성준(1986)|박성준]]을 압살한 뒤 박용욱, 강민 등 프로토스들을 때려잡고 우승하여 MSL 역사상 두 번째 '''3연패'''를 달성하게 된다. 또한 최연성은 최초로 단일 리그 결승에서 '''[[홍진호|저그]], [[이윤열|테란]], [[박용욱|프로토스]] 3종족의 선수들을 전부''' 상대해 이겼다.[* 이후 [[이제동]]이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송병구, [[정명훈(프로게이머)|정명훈]], --[[박명수(1987)|박명수]]--를 잡으며 최연성과 같은 기록을 세웠다. 양대 개인 리그로 치면 --마재윤--도 있긴 하지만, 흑역사가 되었으니 제외.] [[MSL]]뿐만 아니라 팀 단위 리그인 프로리그에서도 한때 무적 포스였다. [[KTF EVER Cup 온게임넷 프로리그]]에서도 '''8승 1패'''로 다승왕을 수상하며 동시에 팀도 우승. [[팀리그#s-2.1.3|LG IBM MBC GAME 팀리그]] 03-04에서도 토스전 6전 전승 포함 '''13승 2패'''로 다승왕을 먹었다. 특히 패자 결승전에서 [[서지훈(프로게이머)|서지훈]], 강민, [[이재훈(1981)|이재훈]], [[김환중]]을 압살하며 [[CJ 엔투스/스타크래프트|슈마 GO]]를 올킬해버리고 결승전에서는 KTF에게 선봉으로 지명당하고도 [[변길섭]], 박정석, [[조용호(프로게이머)|조용호]] 포함 선봉 3킬을 했다.[* 이 당시 변길섭은 최연성에게 상대전적이 앞서있었던 소수의 선수 중 하나였다. 저격당했음에도 불구하고 3명을 꺾은 것.] 종족 상성도 무시해버리고 상위권 선수들과도 상당한 격의 차이를 보여주는 당시의 포스는 역대 어느 본좌라 불리는 선수보다도 압도적이라고 할 만했는데, [[김철민(게임 캐스터)|김철민]] 전 MBC게임 캐스터는 합동방송에서 역대 최고의 포스를 보여준 선수를 최연성으로 꼽았으며 당시의 최연성은 맡겨놓은 트로피 찾아간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개인 리그인 MSL과 팀 단위 리그인 프로리그를 우승한 최연성은 처음으로 진출한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도 우승은 당연해 보였다. [[질레트 스타리그]] 2004 16강에서 [[강민]], [[박정석]], [[이병민]]을 이긴 뒤 8강에서 [[전태규]]를 꺾었고 양대 개인리그 우승과 [[로얄로더]] 등극은 당연해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무적 포스를 끝내버린 사람은 바로 [[박성준(1986)|박성준]]. 최연성이 저그전 '''25연승'''을 달리고 있을 때 온게임넷 스타리그 4강에서 만났다. 박성준은 이미 최연성에게 상대 전적 0:6 열세로 크게 뒤져 있었지만 4강에서 재회한 박성준은 전혀 다른 인물이 되어 있었다. 임요환, [[전상욱(프로게이머)|전상욱]], 서지훈 등 저그전 강자를 모조리 이기며 2004년 테란전 승률이 무려 '''76.7%'''였다. 결국 여기서 최연성은 2:3로 충격의 패배를 당하며 연승이 끊기고 말았으며 이후 [[iTV 랭킹전]]에서 박성준과 재회했는데, 여기서 최연성은 박성준과 6번을 붙어 5번을 패하는 더더욱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들게 된다. 최연성은 박성준과의 3전 2선승제로 치러지는 1차 결승전에서 0:2로 완패한 뒤[* 이 1차 결승전은 녹화 방송이었으며 방송일은 온게임넷 스타리그 4강 이후였지만 녹화 날짜는 이쪽이 먼저였다.], 1개월 후 치러지는 2차 결승전에서도 1:3으로 패배하면서 준우승에 그친다. 이로써 무적을 자랑하던 저그전 포스가 깨진 것은 물론, 절대 본좌의 이미지를 잃게 된다.[* 비슷한 예로 [[이영호]]가 대한항공 스타리그 시즌 1 결승전 이전에 김정우를 이긴 적이 있어 기본기로만 준비했다가 결국 리버스 스윕을 당했는데 다른 점은 최연성은 그 후 공식리그 결승에서 박성준과 전적상 5:1(온게임넷 스타리그, wcg)로 앞서 복수에 성공한 반면 이영호는 그러지 못했다. 다만 이건 골마까지 딴 박성준과 달리 김정우가 우승 이후 전성기가 너무 짧았던 이유도 있다.] 하지만 3, 4위전에서 [[나도현]]을 이김으로써 차기 시즌 시드 확보에는 성공했고 그 다음날 바로 이어진 프로리그 결승전에서 [[박영민(1986)|박영민]][* [[노안]]으로 유명한 [[CJ 엔투스/스타크래프트|CJ]]의 그 [[박영민(1984)|박영민]]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당시 막강한 [[팀플레이#s-2|팀플]]로 유명했으나, 2005년으로 넘어가자마자 갑자기 은퇴해버렸다.]에게 승리, [[EVER 스타리그 2004]]에서는 [[박태민]]만 3번 때려잡고 올라간 뒤 [[이윤열]], [[박정석]]을 접전 끝에 이기고[* 박정석과의 4강전은 엄청난 명경기로 손에 꼽히는데, 특히 1세트는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어마어마한 물량전의 연속이었다. 최연성 본인조차 그렇게 작정하고 물량전한 싸움에서 진 건 처음이었다고 언급했을 정도.] 스승인 [[임요환]]마저 꺾으며 첫 스타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약 8개월간 승률 5할대 초반에 그치는 등 부진의 늪에 빠지게 되는데 KT Megapass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2승 7패를 당하며 동네북 신세가 되었고[* 이 시기에는 자신이 상대전적으로 압살하던 [[박태민]]에게까지 졌다. 이때의 패배가 선수 생활 동안 박태민에게 당한 '''유일한''' 패배.] [[EVER 스타리그 2005]]에서도 이윤열, 박정석을 이겼지만 8강에서 천적 [[서지훈(프로게이머)|서지훈]]에게 완패당했고 2005년 상반기에는 이중 계약 사건까지 겹쳐 프로리그에는 출전도 못하는 등 악재가 계속되었고 양박과 이윤열이 전성기를 맞은 삼신의 시대에 최연성은 그저 강자 중 하나로만 남아야 했다. 이후 2005년 후기 프로리그 출전이 가능해지면서 두 차례의 프로리그 결승전에서 '''2승''' 포함 8승 2패를 거두며 다시금 활약상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하락했던 경기력도 차츰 되찾아가면서 기존의 본좌 포스는 아니더라도 독보적인 테란 원탑 수준의 기량을 되찾는 데는 성공한다. [[So1 스타리그 2005]] 16강에서 홍진호와 '''장판파''' 명경기 끝에 승리를 거두면서 포스가 올라오게 됨과 동시에 특히 자신에게 굴욕을 주었던 박성준을 온게임넷 스타리그 8강에서 2:0으로 이기면서 상대 전적 상에서 우위를 되찾았지만 4강에서 [[오영종]]에게 막히면서 3위. 차기 리그인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에서는 테란전, 저그전만 계속 치뤘고 [[임요환]], [[한동욱]]을 상대로 풀세트 접전 끝에 꺾으며 결승에 진출하여 박성준에게 [[셧아웃]] 우승을 거두면서 이전의 굴욕을 말끔히 되갚아주며 응징했다. 그러나 무려 3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등 자신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던 MSL에서는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당신은 골프왕 MSL 8강에서는 그간 상대전적 3:0으로 앞서고 있던 서지훈에게 8강, 4강에서 두번 만나 모두 패배하고 탈락, 역으로 천적 관계가 됨과 동시에 4회 연속 결승 진출에 실패했고, [[우주닷컴 MSL]]에서는 그간 밥이었던 박정석에게 0:3이라는 충격적인 셧아웃을 당하며 4위에 그쳤다. 다음 대회였던 [[CYON MSL]]에서는 자신의 최대천적이자 자신의 무적과도 같았던 저그전이 붕괴하는 단초였던 ~~마재윤~~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미 이전에 첫 만남이었던 WEF 2005에서 최연성은 2경기 모두 앞마당도 못 올린 상태에서 ~~마재윤~~에게 4개 이상의 멀티를 내주는 굴욕을 보이며 완패했다. 당시의 패배가 교훈이 되었는지 이번에는 전통적인 더블 커맨드를 버리고 여러 전략을 시도해 보았지만 한계가 명확했는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2번의 다전제에서 전패하며 박성준 전과는 달리 진짜로 0:5 패배를 당하며 '''3위'''로 마무리. 이후에도 [[프링글스 MSL 시즌1]]에서 [[송병구]], [[박지호(프로게이머)|박지호]]를 이기며 8강에 진출했으나, 팀 동료들인 임요환과 박용욱에게 패하며 8강에 그치고 만다. 그리고 이제는 스타리그에서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의 우승 이후 부진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 24강전에서 [[차재욱]]에게는 가뿐히 승리했으나, 그간 밥이었던 [[조용호(프로게이머)|조용호]]에게 패배한 뒤 만난 신인 ~~[[박명수(1987)|박명수]]~~의 1해처리 뮤탈 컨트롤에 앞마당도 세우지 못하고 처절하게 농락당하며 조기 탈락하고 만다.[* 박명수와 1승 2패로 동률이기는 했으나 그 박명수에게 패배했기에 승자승 원칙에 따라 최연성이 탈락하게 되었다.] 이후 듀얼 토너먼트에서 절치부심해서 올라온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에서 이윤열, [[박영민(1984)|박영민]]을 이기고 16강 진출하여 박치킨을 다시 만났으나 역시 0:2로 완패하며 탈락하게 되었다. ~~마재윤~~에 이어 ~~박명수~~라는 또 하나의 천적을 만나면서 최연성의 저그전은 발컨으로 뮤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약점이 확실하게 드러났으며, 이후 최연성은 저그전에서 이전과 같은 포스를 더이상 유지하지 못하였고, 나아가 선수 생활에도 큰 슬럼프를 맞게 된다. 이후에는 강자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전형적인 과정을 밟았으며, 그래도 2006년 말까지는 테란 강자의 위치는 유지할 수 있었으나, 2007년부터는 신인 선수들에 밀려 이전의 본좌 최연성보다는 노장투혼으로서의 이미지가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2007년에는 연패하는 모습과 2007년 MSL 16강에 2번이나 진출하는 등 불태우겠다는 말이 겹쳐 재연성으로도 불리기도 했으며, 그와 함께 팀을 지탱하던 주축 선수들도 대부분 같은 테크를 탄 탓에 T1에 짙은 암흑기를 가져오게 되었다. 다만 이 시절도 토스전 감각만큼은 죽지 않아 여러 기적적인 승리를 보여주었고, 승률 역시 10승 4패. 심지어 이 시기는 [[송병구]]가 테란전의 강세로 주가를 올리기 시작했을 시기라 더 돋보인다. 컨트롤빨이 상대적으로 적고 빌드가 중요했기 때문. 07 시즌에도 3-3업 버티고 테란을 들고 나와 토스 맵에서[* 참고로 이 빌드는 후에 [[박카스 스타리그 2008|박카스]] - 곰티비 리그 당시 이영호가 개량하며 [[카트리나(스타크래프트)|카트리나]]에서 프로토스를 압살해냈다.] 강민, [[이승훈(프로게이머)|이승훈]] 등을 안드로메다로 보낸 바가 있다. 결국 2007년부터는 경기력이 급속도로 하락하였고 이때 당시 빠르게 변화하는 메타를 따라잡지 못해 끝내 몰락했다. 감각이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어서 자신의 옛 독무대였던 MSL에서는 2007년 내내 본선에서 자리를 지켰고, 프로리그에서도 승률 5할은 찍으며 나름 선방은 했지만, 왕년의 본좌가 가까스로 승률 5할을 찍는 평범한 테란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올드 게이머]] 세대의 몰락과 함께 많은 사람들에게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2008년 곰TV MSL 시즌4 32강에서 [[권수현(프로게이머)|권수현]]에게 1차전에서는 승리했으나 최종전에선 초반부터 뮤탈 반부대 정도에 앞마당이 개털리자 병력이 충분한데도 커맨드를 띄우는 것으로 대응하는 이상한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코앞에 있는 몰래멀티도 확인하지 못하면서 해설진들에게 대놓고 연습 부족이라는 소릴 들었고, 나중에 가디언 대부대 관광까지 당하면서 완패를 당했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상 선수로서의 마지막 경기가 되고 말았다. 2009년에 프로리그에서 갑자기 선수로 복귀하긴 했지만, [[코치(스포츠)|코치]]로 전환하기 전 순수 선수로서의 경기는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2007년 말, [[샤워]] 도중 넘어지는 바람에 팔목 부상 악화 및 슬럼프 등으로 인해 은퇴해서 코치로 전향했다. 하지만 은퇴한 뒤 10개월 만에 [[박용운]] 감독에 의해 현역으로 복귀함으로써 플레잉 코치라는 이중 직업을 가지게 됐다. 이때 T1이 프로리그에서 극악의 부진에 빠져있던 때라... 2008년 5월 24일 미모의 신부와 결혼하였다. [[브루드 워]] 데뷔 이전부터 5년 간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프로게이머로는 두 번째 [[유부남]].[* 유부남 프로게이머 1호는 [[위메이드 폭스|팬택 EX]] 소속이었던 [[이재항]]이지만,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은퇴했다.] 축가는 [[박태민|세팅의 마술사]]가 불렀다. ~~과연 팀구.~~ 2008년 11월 4일까지는 기량이 확실히 예전만 못한 모양인지, 친한 사이인 박지호로부터 "오늘 연습을 SK텔레콤의 최연성 코치랑 했다. 내가 다 혼냈지만 게임 실력은 대단하더라. 연성이 형이 내 연습해주면서도 타이밍이나 빌드 연구를 하더라. 그래서 깜짝 놀랐다. 옛날에는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선수였는데 요즘은 그 정도는 아니었고 솔직히 웃음이 좀 나왔다(웃음). 연습을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와 같은 농담 섞인 평가를 받고 있는 중이다. 플레잉 코치였던 2009년까지만 해도 "이윤열과의 대결은 언제나 환영이며 기대하고 있다"라는 말을 했었지만 완전히 코치로 돌아선 2010년에는 "더이상 재대결에 관심이 없다"라고 말했다. 도움글: [[http://www.fomos.kr/gnuboard4/bbs/board.php?bo_table=best&wr_id=5093&sca=&sfl=wr_name%2C1&stx=pain&sop=and|1]] [[http://sininus.egloos.com/4329894|2]]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