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영의 (문단 편집) == 격투 관련 == 상기한 일대기에도 적혀있듯 그의 무용담은 팩트와 과장이 섞여있는 편인데 핵심만 말하자면, 현대 무술에서 중요하게 평가할 건 육체 단련의 중요성과 당시 가라테계에서 파격적이었던 풀 컨택트 방식의 대련체계 도입, 이를 기반으로 한 무도계 일파 성립과 인재 배출 등이지, 지금으로선 확실히 검증할 수도 없는 갑론을박성 무용담이 아니다. 일단 최영의의 명망은 확실히 낮다고 보긴 어려운데, 전 세계를 돌며 여러 사람들을 가르쳤고 그 제자 중에는 일회성 이벤트로 가르쳤긴 하지만 [[숀 코너리]]나 [[요르단]] 국왕 일가도 있고, 장관도 몇 명 있었던 듯하다. 이게 이후 그가 더 유명해지는데 도움이 된 측면도 있고. 사실 일본에는 최영의처럼 신격화, 영웅화된 무술인, 격투가들이 꽤 많다. [[미야모토 무사시]]([[니텐이치류]] 창시), 가노 지고로([[유도]] 창시), [[마에다 미츠요]](유도 전파, [[브라질리안 주짓수]]), [[다케다 소가쿠]]([[대동류 합기유술|대동류합기유술]]), [[우에시바 모리헤이]]([[아이키도]] 창시), 후나코시 기친(쇼토칸 가라테 창시)부터 시작해서 미후네 규조(유도 10단), [[시오다 고조]](아이키도 유파 양신관 창시), [[사쿠라바 카즈시]]([[종합격투기]], [[그레이시 가문]] 격파), [[기무라 마사히코]](유도), [[역도산]]([[스모]], [[프로레슬링]]), 사와무라 다다시([[킥복싱]]), [[고바야시 마사토]]([[킥복싱]], K-1 챔피언), [[이노우에 나오야]]([[권투]]), [[이치하라 미노키]]([[쿠도(격투기)|쿠도]], UFC 최초 입성 동양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무술인, 격투가들이 영웅화된 바 있다. 다만 그중에서도 오늘날까지 거대한 일파를 이루고 있는 무도가는 드물 뿐더러, [[종합격투기]] [[Pride]]와 더불어 일본 격투기의 양대 산맥이자 세계 [[입식격투기]]의 최고봉이었던 [[K-1]]의 출발이 극진공수도[* 정확하게는 극진회 아시하라 도장 출신의 이시이 카즈요시(石井和義)가 1980년 독립해서 설립한 정도회관.]인걸 생각해 보면 창시자인 최영의의 영향력 또한 결코 무시할 순 없다. [[킥복싱]] 또한 실전공수 vs 무에타이 기획에서 시작하기도 했고 지금도 실전무술하면 극진공수도가 떠오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태극권]]의 진노인과 붙었다는 얘기가 꽤 유명하나 이는 [[루머]]가 현실이 돼버린 케이스다. 최영의가 태극권 고수가 있다는 소리에 대결을 하러 갔지만, 70세가 넘으신 분이라 대결은 못하고 일주일간 머물면서 서로의 무술을 보여주고 헤어진 케이스인데 그 이야기가 와전되어 흔히 무협소설의 은거 고수 VS 철부지 최영의의 대결이었다고 전해졌다. 하지만 이 부분이야 딱히 그의 실력과 연관된 부분이 아니므로 지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최영의 무적 전설에서 한가지 고려해야 할 부분은 최영의가 세계를 돌며 강자들과 대결했던 당시에는 거의 '무명인물'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그가 대결을 할 수 있었던 상대도 당대의 진정한 최강자들인 복싱 헤비급이나 프로레슬링 챔피언이 아니라 어느 정도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아마추어 수준인 상대들이 대부분이었음을 고려해야 한다. 지금 기준으로 생각해봐도 UFC 챔피언이 일개 무술가가 도전한다고 곧이곧대로 싸워줄 리가 없다. 게다가 최영의 본인이 밝힌 바로도 정말 강한 상대는 눈 찌르기나 [[쟈니 케이지|불알깨기]] 등의 치사한 수법으로 겨우겨우 이긴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최영의가 했던 싸움이 UFC보다 더 실전스럽긴 하다.] 그 예로 미국에서는 프로레슬러와 대결하다 도저히 뭐가 안 통해서 치사하게 반칙 써서 이겼다거나 10대 청소년에게 싸우다가 몇번 나가떨어지자 방심한 틈을 타 기습으로 이겼던 적도 있다고 한다. 물론 이긴 건 이긴 거라지만 덕분에 열 받은 관객들의 [[린치]]를 피해 도망다니기도 했다고. 일설에는 4~5번 패배했다는 말도 있다. 카포에라를 쓰는 브라질 출신의 노동자와 봉술을 쓰는 요르단 국왕의 보디가드와 10대 브라질 유술 견습생 등이 있다고 전해진다. 물론 UFC 챔피언도 패배 기록이 있는 마당에 컨디션이나 운 등도 중요하게 좌우하는 실전 무대에서 무패 신화가 더 거짓말 같긴 하지만. 자서전을 통해 프로 복서나 레슬러들을 상대로 싸웠다고 하는데 대부분은 기록에 없는 선수들이라고 한다. 프로레슬링은 그렇다 쳐도[* 프로레슬링 또한 NWA 산하의 어지간한 지방단체의 경기들은 대부분 기록되며, 최영의의 최대의 라이벌이라던 톰 라이스는 물론 당시 최영의와 함께 미국에서 활동한 엔도 고키치의 경력 또한 상세히 남아있다. 톰 라이스의 경우 역도산과 경기한 기록은 전부 남았으나 최영의와 경기를 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복싱의 경우 프로는 물론 아마추어라도 [[19세기]] 선수들까지 연감으로 정리되었는데, 최영의와 싸웠다는 선수들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참고로 이소룡도 아마추어 복싱 경력을 찾아볼 수 있다.[* 홍콩의 고등학교 대회에 출전하여 우승한 적이 있다.] 때문에 비판론자들은 특유의 마케팅으로 인기를 끌긴 했지만 과도한 신격화는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영의의 일생 최대 라이벌로 알려진 '톰 라이스'[* 1914년 몬타나 출신, 1996년에 사망했으며, 루 테즈, 보보 브라질을 비롯한 당대의 레슬러들과 겨룬 선수이기는 하나 일방적으로 열세여서 무조건 3류 레슬러라 폄하받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결코 1류 프로레슬러는 아니였다. 물론 기록이 전부는 아니고 실전과 레슬링도 엄연한 차이는 있겠지만.]의 경우 바람의 파이터의 작가 방학기가 무작정 월드클래스급의 복서 출신으로 살인 주먹으로 유명했다고 설명했지만 실제론 하와이, 뉴욕 등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프로 레슬러였으며[* 주병진 쇼에 출연한 최영의의 말에 의하면 복서였다가 레슬러로 전향했다고 한다.], 그와 경기를 치른 바도 있는 [[루 테즈]][* '철인'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아마추어 레슬링 출신의 실력파 프로레슬러로, [[STF]], [[파워 밤]], 루 테즈 프레스 등 여러 기술의 창시자이기도 하다.]는 톰 라이스가 [[풋볼]] 선수 출신 선수였긴 했지만 아마추어 레슬링이나 유도, 가라테 등을 수련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으며 최영의와 톰 라이스가 겨루었다는 이야기 또한 금시초문이라 밝혔다. 물론 이 부분은 그가 몰랐을 뿐일 가능성도 있다. 방학기의 만화에서는 [[역도산]]과 최영의 사이의 감정의 골이 생긴 계기도 역도산 본인이 패배했던 톰 라이스를 최영의가 이겼기에 자존심이 상해서라는 식으로 설명하지만 역도산과 톰 라이스는 총 16번이나 경기했으며 5승 5패 5무의 전적을 사이좋게 나눠 가지고 있다. ~~남은 하나는?~~ 이때의 프로레슬링은 지금처럼 [[WWE]]와 같은 메이저 단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각 지방 단체들이 순회하며 흥행을 하는 방식이었는데, 역도산, 최영의, 엔도 고기치 등이 이 즈음 미국에서 활동했으며,[* 이 당시 일본에서 시장 초기 개척을 위해 프로레슬러로 전향한 운동선수들이 다수 있었으며, 최영의 또한 이 붐에 합류했을 가능성이 크다.] 시대특성상 워크를 깨고 [[시멘트 매치]][* 프로레슬링의 정해진 각본을 깨고 선수들이 실전으로 싸우는 상황. 현대 WWE 등을 통해 체계화되기 이전의 프로레슬링에선 꽤 잦은 일이었으며 덕분에 당시에는 그런 상황에서도 상대를 제압해야 하는 실전 강자들이 탑 프로레슬러의 위치를 지킬 수 있었다.]로 돌입하는 상황은 잦았으나 만화 등에서 묘사되듯이 지하에서 목숨 걸고 살인 경기를 펼치는(…) 상황은 없었으며, 규모만 작았다 뿐이지 오늘날과 같이 워크가 존재했다. 다만, 초기 프로레슬링은 [[서커스]]단과 함께 순회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과 함께 경기 중간중간 [[격파]] 시범 등의 기예를 선보였을 가능성은 있으며 비슷한 이야기를 자서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최영의 본인의 말에 의하면 톰 라이스와 붙었다가 한대 맞았는데 나중에 보니 치아가 나갔다고. 참고로 의외라면 의외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실전 레슬링 무도와 같은 개념은 동시대에 남아시아에서 만연하게 퍼져있었다. 관련 얘기는 [[안토니오 이노키]] 문서에 가면 있을 것이다. 이곳도 동북아쪽과 비슷하게 서구열강에게 찢기면서 반서구적인 감정과 더불어서 민족심의 고취를 목적으로 이런 식의 맨몸격투에 대한 관심이 많았었다. 다만 동아시아와 다른 점은 동아시아는 오랫동안 폐쇄적으로 이어진 무술들에 대해 초점을 맞췄다면 남아시아는 기존의 전통무술보다는 지금의 무규칙 격투기와 프로레슬링 비슷한 포멧으로 경기장에서 말 그대로 '''무규칙으로 누구 하나 쓰러질 때까지 싸우는 것'''에 초첨이 맞춰진 곳이였다. 다만 최영의가 그렇다고 평범한 범인이었냐 하면 그건 또 결코 아닌 것이, 일단 그는 육중한 몸집에도 불구하고 100m를 11초대에 주파할 수 있었고, 150~160kg의 고중량 [[벤치프레스]]를 수십회씩 수행했다고 한다. 또 [[단청]]의 서까래를 세 개의 손가락으로 잡고 배꼽이 닿을 정도로 끌어올릴 수 있었으며, 한 손 [[새끼손가락]] 하나만으로 [[턱걸이]]를 15개 해보였다고. 나중에는 자극이 되지 않아 여자나 11살짜리 사내아이를 2명씩을 올라앉게 한 상태에서 수십회를 했다고 한다. 다 떠나 생전 사진만 봐도 심지어 나이가 들었음에도 피지컬과 안광에서 뿜어져나오는 기운이 범인의 수준은 아니다. 실제 2011년 2월 13일 방영된 SBS스페셜 '무림고수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편에 최영의가 자식들에게 말했다는 '소를 때려잡는 조건'이 나왔다. >1) 100 m를 11초에 뛸 수 있을 것. >2) [[벤치 프레스]] 150~160 kg을 쉽게 들어 올릴 수 있을 것. >3) 단청을 손가락 세 개로 잡아끌어 배에 붙일 수 있을 것. >4) 한 손 새끼손가락으로 [[턱걸이]] 15개를 할 수 있을 것. >5) 엄지와 검지만으로 동전을 구부릴 수 있을 것. 이걸 다 할 수 있을 때 주먹으로 소를 때리면 소가 즉사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기가 막힌 아들들이 "그러면 아버지는 저 조건이 가능하십니까?"라고 묻자 '''"가능하니까 소를 때려잡았겠지"'''라고 대답했다.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859319|동영상 5분 12초부터]].[* 일부에선 나열된 단련들을 [[차력]]과 연관짓기도 하는데, 차력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5번 정도나 차력과 연관 지을 수 있을 뿐, 나머지는 그냥 트레이닝이다. 달리기, 벤치프레스와 같은 웨이트, 턱걸이와 같은 기계체조식 일반적인 트레이닝은 다른 무술에서도 중요시하는 부분. 다만 저 5번도 단지 차력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4번과 연관지으면 주먹으로 때리는 무도가에게 필요한 악력과 근력이 그만큼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여담으로 무도가 아닌 보디빌딩으로서 몸의 근육을 키우는 것이라면 사실 세상에는 최영의를 능가하는 근육을 가진 사람들이 많고 실제로 짐승을 맨손으로 때려잡은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존재하니 인간이 소를 때려서 잡는 것이 불가능 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능성을 따져보자면 개별적으론 몇개씩 가능한 사람이 제법 있을 것이다. 가령 2~4번을 같이 하는 크로스핏터[* 다만 손가락 부위는 헬스로 단련하는 주요 분야는 아닌지라 약간 별개긴 하다.], 5번을 하는 동호인 스트롱맨[* 다만 5번의 경우는 좀 논린이 있긴 한 모양. 일단 21세기 세계 최강의 스트롱 맨들도 5번을 할 수 있는자는 없다는 의견이 있다. 동전을 구부리는 스트롱맨들은 전부 이빨로 구부리는거지 손가락으로 그정도 힘을 내지는 못한다. 최영의도 공개적으로 동전을 구부러뜨린 적은 없고, 누가 시키면 알러지난다고 피하거나 구부러진 동전만 보여줬을 뿐이라는 의견이 있다. 다만 주화 [[동전]]을 손가락 두개로 반으로 접는 등의 묘기를 지인들 앞에서 자주 벌였다는 말도 있는거 보면([[역도산]]도 한번 보고 기겁했다고 한다.) 검증이 필요한 부분. 남들이 부탁하면 생각보다 쉽게 보여준 모습과는 달리 실제 몸에 무리가 가는 묘기였는지, 정말 친밀한 주위 사람에게는 '''"동전접기를 하고 나면 몸에 무리가 가서 다음날 몸에 두드러기(담마진)가 생긴다."'''라고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는 말도 있다.][* 혹은 최영의가 구부리던 품질과 균일성이 떨어지고 가운데 구멍이 있으며 더 얇은 옛날 일본동전으로는 가능해도 스트롱만이 구부리는 현대 동전으로는 힘들 수 있다] , 1번을 하는 고등부 도대회급 육상선수 등처럼 말이다. 그러나 2~5번을 전부 할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를 뒤져봐도 꽤나 적은 숫자일 것이며 1~5번을 다 하는 인간은 극소수일 정도이다. 게다가 저건 최영의 시절의 조건이라는거고, 수련 환경이 개선된 오늘날로 보면 상대 조건은 더 올라갈 수도 있다. 물론 진지하게 따져보면 소를 때려잡는 거랑 저런 조건들이 무조건 일치해야 되는건 아니고, 설령 저게 된다고 해도 무술 수련 등을 또 해야 되는지라 맹신할 필요는 없지만, 그냥 소를 때려잡으려면 대단한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고 최영의가 판단했다는 정도로만 참고하면 되겠다. 실제 최영의가 높게 평가받을만한 부분은 체계적인 [[웨이트 트레이닝]] 훈련이나 방법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시대에 근력운동을 통해 근력과 파워를 강하게 만드는 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도 있다. 산 속에서 굶주리며 혼자 수련을 한 에피소드는 만화에서 과장한 것이고, 실제로는 [[닭꼬치]]를 몇십 개씩 먹어가면서 영양 보충과 근력 단련에 힘썼다고 한다. 최영의의 저서들을 살펴보면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가 '무도의 원류를 따져보면 결국은 투쟁의 기술이다. 실전에서 써먹을 수 없는 무도는 [[춤]]과 다른 게 없다'이다. 또한 [[내공]]이나 [[기]]의 존재같이 애매한 추상적인 개념은 죄다 집어 치우고 격투기 기술을 역학적, 합리적으로 체계화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 [[공수도]] [[서적]]들을 다수 발간했다. 그리고 이런 점이 서양에서도 합리적으로 인정을 받아 많은 제자들을 얻게 된다. 물론 타고난 점도 좀 있었던걸로 보이는데, [[공수도]]를 배우기 전에도 맨손으로 싸워서 한 번에 7명까지 쓰러트릴 자신이 있었다고 한다.[* 최영의의 아들들도 보면 누가 최배달 아들 아니랄까봐 죄다 등빨과 피지컬이 장난이 아니다. --심지어 둘째 아들은 현역 주짓수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무술과 격투기를 하기 좋은 피지컬을 타고난 것에 더해 스스로도 가라테 밖에 모르는 바보, 가라테에 미쳐있다고 할 만큼 [[연습]]매니아였으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라테 유파를 창시하고 가라테의 대가가 되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