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용덕 (문단 편집) == 기타 == [[공군교육사령부]]와 [[공군사관학교]]에 최용덕 장군 동상이 세워졌으며, 2019년 11월 19일 공군사관학교에서 제막식이 개최되었다. [youtube(uGXFIUWjbjE)]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장군은 현역에 있을 때 국가에서 나오는 월급의 대부분을 후배나 남을 위해 써버리고 정작 본인은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했다. 부인 호용국 여사가 장사로 간신히 생계를 이어갈 정도로 부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퇴역 이후 갈현동의 셋방에서 기거하였으며 딸 [* 최보욱 여사. 중화민국(대만) 장교와 혼인하였다. ] 의 병으로 부인 호용국 여사는 한동안 대만으로 건너가 장군은 식모와 부관의 도움으로 지냈다. 1968년 공군 보라매회 후배들의 도움으로 서울 공군회관 근처에 작은 집을 선물받아 기거했다.[* 1969년 최용덕 장군이 사망하고 1991년 부인 호용국 여사가 사망한 후 2004년 공군에서 홀로 남은 외손녀를 상대로 공군 소유의 땅에 세워진 이 집에서 퇴거할 것을 요구해서 이슈화 된 적이 있었다.[[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040716/8084311/1|#]] 그 뒤에 대한 결과는 알려진바가 없다.] 임종을 지킨 이는 급히 대만에서 달려온 부인 호용국 여사와 외할머니 등에 업힌 8개월의 외손녀[* 반춘래 여사. 위 동영상에 나온다 ] 그리고 시인 이은상 선생이었다. 장군이 영면한 후 외손녀의 분유값을 찾기 위해 장군의 고의적삼을 뒤져보니 나온 전 재산은 단돈 240원[* 2021년 현재 가치로 3만원 정도.] 뿐이었다고 한다.[* 조선일보 1969년 8월 16일 기사 참조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