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용덕 (문단 편집) === 퇴역 이후 === 1955년 공군 중장으로 퇴임하고 건국공로[[훈장(상훈)|훈장]],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등을 수훈받았으며 1960년에 체신부 장관, 1961년에 중화민국 대사를 지냈다. 1969년 [[8월 15일]] 광복절 당일, 대방동 자택에서 고혈압으로 인해 사망했다. 당시 향년 72세. 중국에서 활약했을 당시 우정을 나누었던 시인 이은상이 그의 부음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최용덕 장군에 대한 시를 남겼다. >{{{+4 애사(哀詞) - 시인 [[이은상(시인)|이은상]]}}} > >오늘 아침, 낯익은 벗들 공군 장병들 다 모였는데 장군은 혼자 어디로 가십니까 >당신은 이 나라 공군의 아버지아들들 무럭무럭 자라는데 장군은 돌아서 어디로 가십니까 > > >(중략) > > >한인전선에서 조각조각 부숴진 다리뼈 피눈물 괸 독립운동의 표본으로 >절뚝거리며 다니던 불구장군 이 땅에 우글거리는 사상의 불구자 > > >지조의 불구자들을 꾸짖던 걸음걸이 병과, 가난과, 온갖 유혹도 비웃으며 >다만 광복된 조국땅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을 기뻐하더니 장군은 문득 어디로 가십니까. > > >(중략) > > >그 높고 맑은 인간성 그 나라 사랑하던 정신과 지조 남은 우리들 가슴 속에 새겨졌기에 >오늘 아침 당신 관 위에 태극기 덮고 원하던 조국땅, 포근한 흙 속으로 꽃이랑 먼저 보내옵니다. > >보내며 마지막 드리는 말씀 몸은 비록 흙 속에 묻힐지라도 >넋은 저 해와 달과 별들과 함께 조국 하늘 지켜주소서. > > >(1969.8.19, 영결식에서) 오늘날 대한민국 공군이 세계 10위권의 강군으로 성장하기까지 1세대 최용덕 장군의 의지와 결의가 매우 지대한 역할을 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