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추자도 (문단 편집) == 역사 == [[중생대]] [[백악기]]에 전남 남해안의 여타 섬들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형성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악기 응회암층은 투수가 좋고 절리가 발달해 있기 때문에 추자도는 제주도 본섬과는 다르게 지하수 함양이 잘되지 않는다.] 이는 [[신생대]] [[제4기]]에 형성된 제주도보다 훨씬 지질학적 역사가 오래된 것이다.[[http://www.jejumaeil.net/news/articleView.html?idxno=145949|#]] 추자도에 사람이 최초로 거주한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백제]]와 [[신라]] 시대에 [[탐라]]의 조공이 있었던 점에서 미루어 그 당시 제주도와 육지를 왕래하는 선박들이 추자도를 자주 경유했을 것으로 추정한다.[[https://www.jejusi.go.kr/town/chuja/intro/info.do|#]] [[고려시대]]에는 후풍도(候風島)로 불렸으며, [[제주도]]와 [[전라도]]를 잇는 뱃길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였다. [[1271년]] [[삼별초의 난]]이 일어났을 때 삼별초를 토벌하려 제주로 가던 여몽연합군 병력이 폭풍우를 피해 추자도로 대피했다는 [[고려사]] 기록이 있다. 고려 말 [[목호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제주도로 향했던 [[최영]]도 풍랑을 피하기 위해 추자도에 잠시 기착하였고, 이 때 추자도 주민들에게 선진 어업기술을 전수해주었다. 주민들은 사당을 세워 최영 장군의 은덕을 기렸으며 그 사당은 현재까지도 남아있다 (제주도 기념물 제11호). 고려말에는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여 [[1350년]] 충정왕 때 추자도 주민들을 이주시켰으며 [[조선시대]]에도 공도정책으로 주민들이 섬을 비워야 했고, 성종 시기인 [[1490년]]에 왜구들이 들어와 고기잡이와 해산물 채취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다시 추자도에 주민들이 들어온 시기는 [[임진왜란]] 직후이다. [[구한말]]에는 [[전라남도]] [[영암군]], [[완도군]] 등에 귀속되어 있다가 [[1914년]] [[조선총독부]]가 [[제주도(일제강점기)|제주도]](島)에 편입시켰다. [[1932년]]에는 추자도 주민들이 [[일본인]] 어민들의 횡포에 저항한 [[사와다 그물망 사건]]이 일어났다. [[1944년]]에서 [[1945년]] 시기에는 [[결7호 작전]]으로 인해 추자도에 갱도진지가 10개 정도 구축되었다. [[8.15 광복]] 이후 [[제주도]](道)가 신설될 때 추자도는 [[북제주군]] 소속이 된 이래 현재까지 쭉 [[제주특별자치도]] 소속이다. 그러나 거리상 제주도 본도보다는 [[전라남도]]에 더 가까운 편. [[완도군]] 보길도와의 거리는 25 km 남짓. 다만 완도나 진도 본섬과의 거리는 약 50 km로 제주도와의 거리와 거의 비슷하다. 따라서 호남 문화권으로 분류되며 방언 역시 [[서남 방언]]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지형도 유일하게 제주 지역 중에서는 [[현무암]] 지형이 아니기도하다. 위의 사유로 추자도 출신 사람들은 행정구역 상으로는 [[제주특별자치도]] 출신이지만 타지역 사람들 앞에서 '''"제주 사람"'''이라고 밝히긴 애매한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제주사람이라고 하면 보통 섬 이름 제주도(島)를 떠올려서, 추자도 출신인데 제주도와 관련하여 이것 저것 이야기할 게 뻔하기 때문. 그래서 '추자도'라고 하거나 '제주도 위쪽에 있는 추자도'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즉, 어느 지방에 있는 건지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 [[인천광역시]]의 [[서해 5도]]([[황해도]] 문화권)나 [[대만]] [[진마지구]]([[푸젠성]] 문화권)와 비슷하다. 추자도 주민들은 자녀 교육 등의 이유로 [[제주시|제주시 본토]] 또는 [[목포시|목포]]에 집을 한 채 더 갖고 있으면서 필요에 따라서 옮겨다니면서 사는 사람들이 흔하다. 과거에는 경제적으로 목포의 영향력이 더 강했지만 요즘에는 [[제주도]] 인구가 늘어나고 경제력이 커지면서 [[제주시]]로부터 물건을 들여온다든지 하는 경우도 많다. 조선시대에는 경제적으로 '''전주의 영향력이 더 강했었다.'''[* [[전라도]] 관찰사가 있는 곳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