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축치인 (문단 편집) === 호전성 === || [[파일:Choris,_Tschuktschen.jpg|width=90%]] || || [[1816년]]에 그려진 베링 해협 근처 전통가옥 야란가 앞에 위치한 축치인 [[가족]] 그림. ||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이들은 극북 지역에 거주하는 러시아인과 이웃한 극동 민족들 사이에서 상당히 호전적인 [[전투민족]]으로 유명했다. 축치인들은 [[순록]]과 목초지 점유 문제로 인해 예전부터 자주 충돌하던 [[코랴크인]], [[유카기르]], 시베리아 유픽과 달리 키가 크고 다부진 체격을 지닌 편이었으며,[* 춥고 혹독한 기후을 자랑하는 추코트카에 거주함에도 불구하고 [[장신|키가 6피트에 달했다고 한다]]. 반대로 축치인들에 의해 끊임없는 [[침략]]과 [[학살]]에 시달리던 [[케레크]]는 키가 눈에 띄게 작았다고 한다.] [[겁쟁이]]로 멸시당하며 사는 것을 죽음보다 훨씬 두려워하는 고대 [[스파르타]]를 연상케 하는 사회에서 살았던 점과 뛰어난 싸움 실력이 합쳐져 당시 축치인들과 전투를 벌인 이들은 축치인들과의 전투에서 승패 상관없이 큰 피해를 면치 못했다고 한다.[* 드넓은 [[시베리아]]를 손쉽게 정복했던 그 [[러시아 제국]]조차도 축치인들을 상대로 1748~1755년 동안 총 7번의 군사 작전을 실행했으나 큰 피해만 입고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이러한 점 때문에 [[선민사상|주변 민족들을 열등하다고 여기는 성향]]이 강했다고 하며, 전투에서 승리할 시 남자는 죽여버리고 오직 여자만 [[포로]]로 잡아가 [[납치혼]]을 치르거나 [[성노예]]로 삼은 탓에 17-18세기 사이 [[베링 해협]]을 건너온 축치인들의 침공을 당했던 [[유픽]] 부족들의 전설에서 축치인들은 피에 굶주린 [[악마]]처럼 여겨졌다. 오래전 추코트카에서 벌어진 150년 간의 전쟁 당시 [[러시아인]]들에게 잡힐 경우 [[자살|자결]]을 시도하는 등 상당히 호전적으로 대항한지라 이러한 [[https://www.khan.co.kr/article/200308081747461|얘기]]가 있다고 한다. >어느날 축치족이 [[중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중국은 어이없어하면서도 사절단을 보내어 “중국 인구가 10억명[* 1980~1990년대 사이에 생겨난 이야기로 보인다.]이라는 걸 아느냐. 그래도 싸우기 원하느냐”고 묻자 축치족은 대답했다. >'''[[상남자|“그게 정말이냐. 그럼 너희들 모두를 어디에 묻어주랴?”]]'''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