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충청남도/정치 (문단 편집) == 설명 == ||<-8> '''충청남도지사''' || || 1기(95~98) || [include(틀:자유민주연합)] [[심대평|{{{#FFFFFF 심대평}}}]] {{{#FFFFFF (초선)}}} || || 2기(98~02) || [include(틀:자유민주연합)] [[심대평|{{{#FFFFFF 심대평}}}]] {{{#FFFFFF (재선)}}} || || 3기(02~06) || [include(틀:자유민주연합)] [[심대평|{{{#FFFFFF 심대평}}}]] {{{#FFFFFF (3선)}}}[* 06.03.24. 도지사직 사퇴. 잔여 임기 1년 미만으로 재보궐선거 미실시] || || 4기(06~10) || [include(틀:한나라당)] [[이완구|{{{#FFFFFF 이완구}}}]] {{{#FFFFFF (초선)}}}[* 09.12.04. 도지사직 사퇴. 잔여 임기 1면 미만으로 재보궐선거 미실시] || || 5기(10~14) || [include(틀:민주당(2008년))] [[안희정|{{{#FFFFFF 안희정}}}]] {{{#FFFFFF (초선)}}} || || 6기(14~18) || [include(틀:새정치민주연합)] [[안희정|{{{#FFFFFF 안희정}}}]] {{{#FFFFFF (재선)}}}[* 18.03.06. 도지사직 사퇴(성폭력 사건에 대한 수사 중). 잔여 임기 1년 미만으로 재보궐선거 미실시] || || 7기(18~22) || [include(틀:더불어민주당)] [[양승조|{{{#FFFFFF 양승조}}}]] {{{#FFFFFF (초선)}}} || || 8기(22~26) || [include(틀:국민의힘)] [[김태흠|{{{#FFFFFF 김태흠}}}]] {{{#FFFFFF (초선)}}} || 현재는 [[충청도]] 자체가 대표적인 '''스윙보터'''로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과거 충남은 같은 충남권인 [[대전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까지 포함해[* 대전과 세종이 충청남도에서 분리되긴 했는데, [[충청북도]]와도 접해 있을 정도로 충청도 중앙부에 위치한 만큼 충청북도의 정치 성향에도 일부 영향을 미친다.] [[신민주공화당]] - [[자유민주연합]] - [[국민중심당]] - [[자유선진당]]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충청계 정당의 텃밭이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충청북도]]는 충청계 정당이 영 힘을 못 썼다. 원주민보단 이주민들이 많은 영향인 듯. 사실 충남도 [[양김]]만큼 [[김종필]]이 힘을 발휘하진 못했다. 이는 이회창으로 내려온 자유선진당 때도 비슷했다.] 이들이 은퇴하기 전인 2012년까지는 이 지역이 은근히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의 향방을 가르는 고장이었던 셈. 이는 20세기 중후반 국내 정치계를 쥐락펴락했던 거물 정치인 3김(金) 중 한 명이었던 김종필의[* 3김 중 유일하게 [[대한민국 대통령]]이 못 된 인물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해 양김에 비해 레벨이 딸리긴 했다. 대신 [[꿩 대신 닭]]이라고 [[국무총리]], [[중앙정보부장]], 민주자유당 총재 등을 지내며 상당한 권력을 행사했다. --쉽게 말해 [[콩라인|2인자]].--] [[고향]]이 충남 [[부여군]]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지 [[국립대학]]인 [[한국전통문화대학교]]가 부여에 세워진 데에도 김종필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썰이 있다.] 지역 대표 정치인을 밀어주는 심리도 어느 정도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80 ~ 90년대까진 김종필(대전 - 충남)[* [[박정희]] - [[전두환]] - [[노태우]] 라인에 우호적이었던 [[대경권]]이 YS정권 시절이던 90년대 중반 민자당에서 사실상 쫓겨난 JP가 자민련을 창당하자 일시적으로 이 쪽에 붙기도 했다. [[DJP연합]]이 완성되자 떠나버렸다는 말도 들리지만(...)...]/[[김대중]]([[전라도]])/[[김영삼]]([[부울경]])으로 대표되는 [[삼김시대]] 지역 정치의 주무대 중 하나로 삼각관계를 형성하기도 했고,[* 이들 3김의 정치적 영향력이 짙었기 때문에 지역상에서도 충남/[[전라도]]/[[PK(동음이의어)#s-4|PK]]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게 된 원인이 되었다.] 실제 1987년 대선 때는 당시 신민주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왔던 김종필이 유일하게 압도적 지지를 받은 지역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종필과 자민련계 지역정당이 슬슬 몰락하기 시작한 2천년대 들어서면서부턴 점점 스윙보터 지역으로 거듭나--면서 지역 이권을 취하--게 되는데, 특히 대선을 보면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는 지역 [[야당]]이,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는 거대 [[여당]]이,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는 지역 정당과 연대한 [[야당]]이,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는 거대 [[여당]][* 할아버지의 연고가 있는 이회창(41.2%) 후보보다 [[부산광역시]]에 연고가 있는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52.1%)이 훨씬 더 높았다. 노 후보의 충청권 행정 수도 공약이 결정적이었던 듯. 노무현은 후에 "세종시 공약으로 재미를 봤다"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회창의 고향이 충청남도 [[예산군]]이라고 많이 알려져 있는데, 사실 예산은 [[본적]]이고, 본인은 [[황해북도]] [[서흥군]]에서 출생했다.]이, 2007년은 근소하게 [[야당]]과 지역정당[* 지역의 심대평 후보가 사퇴 후 연대했음에도 부친의 본적이 예산이었다는 이회창 후보(33.2%)보다 [[이명박]] 후보의 득표(34.3%)가 조금 더 높았다. 고작 9천 표(1.1%) 차이. 게다가 두 후보의 대결 속에도 [[정동영]] 후보의 득표도 상당했다(21.1%).]을 번갈아가며 지지했다. '''1987년을 제외하고 지난 5회의 대선 중 충남(충청)에서 1위한 후보가 대선에서도 [[당선]]'''되었을 정도로 민심의 풍향계로서의 위력을 발휘한 셈. [[http://218.145.28.244/blog.log.view.screen?blogId=52001&menuId=196663&listType=2&from=&to=&curPage=6&logId=2400882|#]] 직선제 개헌 이후 대선 결과를 살펴보면 충남은 다른 의미에서 특이한 성향을 보이는데, 1-2위 후보가 모두 자신의 평균 득표율보다 낮은 성적을 올린 경우가 3차례(1987, 1992, 2007)나 된다.[* [[19대 대선]] 역시 [[홍준표]] 후보의 득표율이 조금만 더 낮았다면 해당 사례에 낄 뻔 했다. 당시 출구조사에서 충남 2위는 [[안철수]] 후보였다.] 이는 바꿔 말하면 제3후보의 득표율이 높았다는 소리도 되는데, 실제로 제3지대 정당으로 출마한 후보[* 1987년 김종필, 1992년 정주영, 1997년 이인제, 2007년 이회창(무소속이었으나 지역정당이던 [[국민중심당]]의 지지를 받았다), 17년 안철수.]들은 모두 충남에서 자신의 평균 득표율을 뛰어넘는 성적을 올렸다. 물론 충청권 정당의 득세로 유력 제3후보가 이 지역을 연고로 한 경우가 많아서인 것도 있지만[* 김종필(1987년), 이인제(1997년)나 이회창(2007년)이 이에 해당한다.] 별다른 연고가 없던 정주영이나 안철수 역시 충남에서 선전한 것을 보면 양당체제에 대한 반감으로 제3세력을 선호하는 것 역시 어느 정도 영향이 있어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