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치로 (문단 편집) == 시제 1호 전차/87식 중(中)전차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IJA_Experimental_tank_No1_01.jpg|width=100%]]}}} || || '''시제 1호 전차(試製1号戦車)/87식 중전차''' || 일본군의 전차 국산화 계획은 1925년 일본군 육군기술본부(陸軍技術本部)가 추진한 국산 전차 프로젝트에서 출범한다. 원래 군은 예산을 절약하기 위해 수입으로 충당하려는 계획이었으나 육기본이 세계 수준의 전차를 개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임에 따라 국산화로 전환한다. 그리하여 등장한 시제 1호 전차는 첫 개발 치고는 외제 수입 전차와 비해도 손색없는 성능이었으나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일본의 열악한 도로, 철도 인프라에 비해 18톤이라는 중량은 지나치게 무거웠던 것이다. 이는 최초 군부의 요구에서 6톤이나 초과한 것이었고 그로 인한 느린 속도와 늘어난 연료 소비량 또한 예산 책임자의 고개를 젓게 만들었다. 결국 군부는 10톤으로 중량 제한을 두고 경전차의 개발을 요구했다.[* 이 시제 1호 전차의 뒷이야기는 [[95식 중전차]] 항목 참조.] 이에 1927년부터 영국 [[비커스(기업)|빅커스 사]]의 [[빅커스 미디엄]] 마크 III를 모델로 설계 작업이 개시, 1929년 4월에 89식 전차라는 이름으로 설계가 완료된다. 이후 1930년대에 들어서 이 전차는 [[중형전차]]로 체급이 변경되는데, 개발과정에서 당초 예정했던 것보다 중량이 다소 증가되어 10톤이 넘어갔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당시 일본군의 전차분류는 10톤 미만을 [[경전차|경(輕)전차]], 20톤 미만을 중(中)전차, 20톤 초과를 [[중전차|중(重)전차]]로 분류하고 있었다. 원래 이 전차의 생산은 시제 개발을 담당한 [[오사카]] 포병공창에서 이루어질 예정이었지만 생산능력부족 문제가 지적, [[미쓰비시 중공업]]이 이에 참여하여 양산에 들어간다. 1931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89식 중(中)전차는 곧 [[일본제국 육군]] 및 [[일본 제국 해군]](해병대)의 기갑 전력의 주력이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