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친노 (문단 편집) ==== 기타 - 유시민, 이해찬 등 ==== [[이해찬]]의 경우 원조 친노도 아니고 친노 직계도 아니지만 친노 출신 중 가장 대표적인 정치 거물 중 한사람이기 때문에 친노의 대표자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노무현계는 전혀 아니며 정치적 이해타산에 의해 노무현과 결탁한 것이며, 노무현 정권 몰락 후에는 노무현을 부정하기까지 했던 인물이다. 다만 노무현 정부의 지지율이 10% 아래로 떨어진 정권 말기에는 심지어 노무현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안희정이나 유시민조차도 친노는 폐족이라면서 노무현을 부정했기에 이때 이해찬의 행적은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이해찬은 원래는 [[동교동계|DJ계]]였다. DJ계 중에서도 운동권의 원조라 할 만큼 젊은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의 구심적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김대중 정권에서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며 자연스레 노무현 정부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때 노무현 정부에 참여한 운동권 출신 젊은 정치인들의 지지와 버프를 받아 노무현 정부의 국무총리 등 요직에 오른 케이스다. 따라서 원래 친노는 아니었으나 그의 정치적 위상으로 인해 친노의 구심점 중의 하나가 된 인물이다. 이렇게 이해찬은 [[세종특별자치시]] 건설을 주도하면서 현역 의원으로 재임 중이기까지 한 충청권의 거물인사인 데다 한때는 [[http://www.mediawatch.kr/news/article.html?no=154604|자기를 친노로 몰지 말아달라던 시절이 있었지만]], 후일 팟캐스트 활동을 통해 대중들은 친노 직계로 여기기는 상황이다. 친노 금강파로 분류하기보다는 굳이 따지자면 범친노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이해찬도 한때는 엄연한 대권주자급이었고[* 물론, 이해찬은 대권에 대한 큰 욕심은 없었던 편이고, 실제로 대권 경선에서 탈락한 이후부터는 대권에 나서지 않았다.] 국민의 정부 시절 동안은 정치적 위상도 [[노무현]] 前 대통령에게 밀리지 않았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유시민은 썰전에서 이해찬에 대해 [[https://tv.naver.com/v/794022|"이해찬 의원은 친노 좌장이 아니고, 1970~80년대 민주화운동 시대의 흐름을 타고 정치에 진출한 비호남 개혁세력을 대표한다"]]는 평을 내렸다. 노무현의 정계 데뷔시기와 출신지를 생각하면 그 범위에 교차점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해찬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민당 시절부터 정계 입문을 했기 때문에 문재인보다도 까마득한 대선배이고 정치 경력부터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훨씬 크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치 초년생 시절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도 이해찬의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정계 입문을 했다.[* 이 때는 공식 보좌관이 아니라, 보좌관 급여를 나눠서 썼다고 한다. 유시민의 말에 의하면 이해찬 의원이 초선의원일 땐데 자기 보좌관 하면 수배도 풀어주고 그런다고 해서, 보좌관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고...] 현재는 [[문재인]]이 떠오르면서 스스로 친노계의 수장으로서 노무현 정신을 이어갈 후계자 역할을 도맡아하고 있지만, 오히려 [[문재인]]이나 [[안희정]]을 넘어서 친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실질적인 정신적 지주는 [[이해찬]]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문재인은 국회의원 1선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장관급)출신이고 [[안희정]]은 재선에 성공한 충남도지사이지만 이해찬은 실세 [[국무총리]] + 무려 7선 의원이다. 이해찬은 친노 세력에서 굳이 스스로 계파를 만들지 않더라도 누구나 인정하는 친노계의 리더이자 수장으로서의 영향력이 매우 강하다. 또한 문재인을 정계로 데려온 사람이 이해찬이며, 문재인 또한 이해찬을 선배로 존경하면서 깍듯하게 리더로 인정해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