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타르시스 (문단 편집) == 감정 == '''{{{+1 κάθαρσις / Catharsis}}}'''[* ([[이단]]인) [[카타리파]]의 유래인 '청정한 것'을 뜻하는 그리스어 단어 '카타로스καθαρὀς = katharos'와도 관계가 있다.] '카타르시스'란 독자 내면에 방치된 채로 썩어가던 상처를 픽션의 비극을 통해 직면하고 비로소 하지 못했던 슬퍼함을 통하여 치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인공이 당하는 '비극'에 공감하게 되면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거나, 주인공을 옹호하며 화를 내면서 자신의 감정을 폭발적으로 드러내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감정이 정화됨을 느끼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화를 내고나면 답답한 감정이 가시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눈물을 흘리고 나면(또는 비극의 슬픔에 잔뜩 공감을 하고 나면) 자신 내면의 슬프고 우울한 감정이 제법 치유되는 걸 느낄 수 있는데, 이를 카타르시스라고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카타르시스를 쾌감이나 희열, 전율 정도로 생각하는데, 엄밀히 따지면 카타르시스는 '''쾌감, 희열, 전율과는 '비슷하지만 다른' ''' 표현이다. 즉, 전율이라 말해야 할 상황에 카타르시스라는 단어를 집어넣으면, 그 표현은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이야기의 관찰자(독자나 청자)는 보통 선한 인물에게 자신을 투영하려는 보상적 심리의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선善이나 정의正義, 나아가 그것을 대변할 수 있는 성향을 가진 초인超人 캐릭터에 몰입한다. 이 때문에 '비극으로 정화되는 해소감'인 카타르시스 또한 이런 캐릭터의 '''몰락'''에서 극대화된다.] 따라서 '억압받던 주인공이 명백한 악에게 대항하여 통렬한 복수에 ''''성공'하는 [[사이다(유행어)|사이다]] 상황은 카타르시스와 관계가 없다'''.[* 김효,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ㅡ비판적 고찰과 한국에서의 수용 문제ㅡ》, 한국연극예술치료학회 학술대회지, 3.0, 한국연극예술치료학회, 2012 참고. 사실 이 밖에도 카타르시스의 정확한 용례를 찾아볼 수 있는 학술지나 연구논문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수십년 어치로, 굉장히 많다. 다름 아닌 서양철학의 거두 아리스토텔레스가 거론한 개념이라서... 카타르시스라는 단어를 오용하는 일반 독자들과 기자들, 연예인들이 이와 같은 문학/심리학 학술 정보에 관심이 없어서 모를뿐이지, 단어의 정확한 정의 자체는 인문대학 학부 신입생 교양수업에서도 접할 수 있다.] 원래부터 사이다-고구마를 구분짓는 단어가 아니며, 역설적이게도 많은 이들이 사용하는 '사이다'보다는 '고구마' 상황에서 사용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통쾌한 복수를 통해 잿빛 과거를 청산하고 장밋빛 미래를 약속받은 주인공이 아니라, 복수에 실패하여 망가지고 상처입고 주저앉은 주인공을 보며 동정심과 연민의 감정이 북받쳐올라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내면의 응어리를 덜어내는 상황이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망가짐'''이 아니라 '''덜어낸다'''는 부분이다. '''즉, 통쾌하다는 감정이 아니라, 마음속에 쌓여 있던 답답함을 내보내서 정화된다는 뜻으로 쓰여야 한다.''' 울분이든 뭐든 분노는 굳이 쾌락이 아니라 슬픔을 통해서도 풀 수 있는 것인데, 어째서인지 쾌락으로 푼다는 측면이 강조된 상태로 여기저기서 사용되다 보니 변질된 것이다.[* 비슷한 예로 '그러니 내일의 걱정은 내일에 맡기고(마태복음 6장 34절) 평안을 추구하라'와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로 해석이 갈리는 [[카르페 디엠]]이 있다. 사실 앞서 인용한 마태복음 6장 34절도 '내일 걱정은 내일에 하자'와 '내일 걱정은 우리가 아니라 내일이 결정하는 것이니 담대해져라'로 해석이 갈리는 등 애초에 고전은 그 특성상 한 가지 의미로 단정짓는 건 위험하다.] 당장 [[나무위키]]만 찾아봐도 카타르시스가 아닌데 카타르시스로 적은 문서가 수두룩하다. 비단 위키뿐 아니라 TV 프로그램 등에서도 관련 전문가 패널이 아니고서는 마구잡이로 사용한다. 포탈사이트에 검색만 해봐도 대부분, 아니 '''사실 거의 모두가''' 오용하고 있다는 걸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미학/심리학 관련 학문의 교수직 내지 석박사학위 소지자이거나 논객 또는 논설위원 수준이 아니면 '카타르시스'란 단어의 뜻을 오남용하는 경우는 몹시 흔하다. 그러나 사용실태에 따라 바뀌는 맞춤법이나 표준어와 달리, 카타르시스는 엄연히 '''전문 학술용어'''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뜻으로 사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용인될 수 있는 경우는 아니다'''. 굳이 오남용에 태클 걸 필요까지는 없으니 제대로 뜻을 아는 사람도 그냥 넘어가는 것일 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