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타르시스 (문단 편집) === 유래 === >비극은 진지하고 일정한 길이를 가지고 있는 완결된 행동을 모방하는 것이며, 쾌적한 장식이 된 언어를 사용하고 각종의 장식은 각각 작품의 상이한 여러 부분에 삽입된다. 그리고 비극은 희곡의 형식을 취하고 서술적 형식을 취하지 않으며 '''연민과 공포를 통하여 이러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행한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중... 그리스인들은 감정을 어루만져서 위로해주는 것을 '카타르시스'로 칭했는데, 이를 현대적 표현으로 나타내면 영혼을 정화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인들이 예술과 관련해서 매우 일찍부터 적용한 용어로 알려져 있다. 문서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일 먼저 이를 언급하였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정의에서 “카타르시스”를 매우 간결하고도 애매하게 언급한 후 두번 다시 그것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니체는 "(비극의 목적은) 공포와 동정에서 벗어나기 위하거나 감정의 격렬한 방출을 통해 위험한 감정에서 자기를 정화시키기 위하기가 아니다.ㅡ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이해했지만ㅡ" 이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비극의 카타르시스'를 부정하였다. 다만, 최근에는 카타르시스에 대한 다른 해석 또한 존재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희극에 대해 말한 부분은 비극에 대해 말한 부분보다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많은 손실을 입었기 때문에, 카타르시스가 "연민과 공포"의 감정에만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은 우연히 살아남은 텍스트가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희극에 대해서도 카타르시스를 사용했는데, 그 부분이 실전되었다는 것. 이렇게 보면 굳이 카타르시스를 정화의 의미로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 같은 경우, '어떤 긴장에서 풀려났을 때 느끼는 감정'을 카타르시스라고 부르는 것이라 본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가정에 근거한 주장일뿐,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해석은 아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