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캐세이퍼시픽항공 (문단 편집) == 역사 == 1946년 1월 [[중화민국]] [[상하이]]에서 로이 앤 페럴 수출입공사로 창립했다.[* 여기서 공사는 '公司'로 [[중국어]]로 일반회사를 뜻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공기업]]은 公社로 사실 일본식 한자어다.] 창립 당시 [[중화민국]] 행정원장이었던 [[쑹쯔원]]이 이 회사의 지분을 요구하였으나 창업자 두 사람은 이를 거절하였고, [[중화민국]] 정부는 몇 차례 이 회사의 비행기를 압류하였다. 이후 [[중화민국]] 행정원과의 협상의 결과 이 해 5월 창립자 2인은 자사 소유의 비행기 2대를 가지고 [[영국령 홍콩]]으로 이전하였다. 이후 두 사람은 [[홍콩]]에서 [[1946년]] 9월 24일 정식으로 캐세이퍼시픽항공(Cathay Pacific Airways Limited)사를 창립한다. [[1948년]] 존 스와이어 앤 선즈(John Swire & Sons), 즉 현재의 스와이어사(Swire/太古)가 대주주가 되면서 스와이어 그룹이 지금까지 이 회사의 경영권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역사를 보면 알겠지만 이 회사는 원래 [[중국 대륙]]에서 창설되었고 [[중화민국]]이 집권하던 민국 시기에 국유화를 피해 내려왔다. 일각에서 [[중국 대륙]]의 공산화로 이 회사가 홍콩으로 내려온 줄 알기도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공산당과 무관하게 민국도 쇄국성향이 강해서 외국인을 안 받고 자산은 모두 국유화시키곤 했는데 열강이 중국을 수탈하던 [[청나라]] 말기의 기억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콩은 [[아편전쟁]] 이후 청 말기부터 '''중국으로 가는 관문'''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 항공사의 창립자인 [[미국인]] 로이 페럴과 [[호주인]] 시드니 드 칸초는 [[2차대전]] 당시 [[민항공운공사#s-2|중국항공]] 파일럿 출신으로 [[중화민국]]을 도운 파일럿들이었다. [[쑹쯔원]] 항목의 전후수습책 단락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 그는 국가기간산업시설은 중앙정부가 적극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아무리 참전 용사들이 세운 회사라고 해도 기간산업을 순수한 사기업으로 두기를 꺼렸다. [[영국]] 정부도 다르지 않아 홍콩의 항공사는 [[영국인]]의 소유가 되기를 바랬다. [[호주인]]인 시드니 드 칸초의 경우 [[호주]]가 법적으로는 [[영국]]의 [[자치령]]이라 문제될 것은 없었으나 [[미국인]] 패럴의 경우 국적이 문제가 되어 결국 지분을 강제로 매각하게 된다. 두 사람의 지분은 10%대로 줄어들고 패럴은 신설 법인 캐세이퍼시픽홀딩스(Cathay Pacific Holdings) 설립 이후 자신의 [[주식]]을 영국 부동산회사로 홍콩에서 토지개발 사업을 벌이는 스와이어(Swire/ 太古)그룹에 전부 매각한다. 이 그룹은 한국교민이 많이 사는 [[홍콩 섬]] 동부 타이쿠싱 아파트단지와 [[애드미럴티역(홍콩)|애드미럴티역]]의 쇼핑몰 겸 사무단지 퍼시픽 플레이스 등이 죄다 이 스와이어 그룹 소유다. 또한 홍콩, 대만, 중국 동남부 12개 성(직할시), 미국 서부 13개 주의 [[코카콜라]] 생산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어서 의외로 이 지역 코카콜라 운송 차량에서도 스와이어 로고를 볼 수 있다. 매각 이후 패럴은 미국으로 돌아가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회사를 매각한 만큼 큰 돈을 벌었을 것이다. 그리고 호주인인 시드니 드 칸초도 [[1951년]]에 자신의 지분 전부를 매각한다. 이렇게 캐세이퍼시픽항공은 완전한 영국계 회사로 변모했다. 이후 [[1959년]] 제2 민항이던 홍콩에어웨이스(Hongkong Airways)를 인수하여 '''홍콩 국적의 유일한 항공사'''가 되었다. 이후 순탄하게 고속성장을 하였다. 이 항공사의 모회사인 스와이어의 로비로 홍콩에는 국적기가 1개만 취항가능하게 제한한 덕에 큰 것이었다. 문자 그대로 독점이다. [[1990년]] 캐세이퍼시픽과 스와이어 그룹은 [[캐세이드래곤|드래곤항공]] 지분의 상당수와 화물 회사인 [[에어홍콩]] 지분의 75%를 획득하게 된다. 그리고 [[A330]]을 도입할 무렵인 [[1994년]]에는 그동안 쓰던 [[성 조지]]의 십자가를 본뜬 로고와 녹색, 흰색 줄무늬로 구성된 도색을 현재의 날개 비슷한 로고와 화이트 도색으로 변경했다. 이후 [[1984년]] [[중영공동선언]]으로 홍콩의 중국 주권반환이 결정되자 [[홍콩 반환]]을 앞둔 [[1996년]] [[중국국제항공]]이 지분을 획득하면서 대주주 명단에 등재되고 중국의 중신(中信,CITIC)그룹도 지분을 늘려 영-중 합작 회사로 변신한다. 나중에 [[중국국제항공]]이 중신그룹의 지분을 사들이면서 현재는 스와이어 그룹이 지분의 45%, 에어차이나가 지분의 30%를 보유하고 있다. 이어 홍콩 반환과 [[홍콩 국제공항]]의 첵랍콕 섬 이전 등의 굵직한 변화를 겪는다. 그리고 홍콩 주권반환 및 신공항 이전 후에는 그간 지분을 갖고 [[중국 대륙]]과 [[동남아시아]] 근거리 노선으로 재미를 보던 [[2006년]] 9월부로 [[캐세이드래곤항공|드래곤항공]]을 정식적으로 자회사로 편입하고 [[2016년]] 1월에는 아예 캐세이드래곤으로 사명을 변경한다. [[1997년]] 홍콩 주권반환 후 홍콩이 이미 중국에 특별행정구로 흡수되고 더 이상 홍콩에 이렇다 할 정치적인 변수가 없어지자 이 회사도 안정적 성장세를 보였다. 기존부터 가지고 있던 재정적인 불안정 그리고 [[홍콩 민주화 운동]]에 자사 직원들이 대거 동참으로 인한 중국 정부의 압박에 [[코로나 19]]로 인한 불황까지 겹쳐 2020년 10월 자회사 [[캐세이드래곤항공]]을 포기하게 된다. 캐세이드래곤의 46개 노선에 대한 운수권은 전부 홍콩정부에서 회수하였다. 이후 홍콩정부로부터 2020년 말 4개 노선과 2021년 초 15개 중국 노선을 재분배 받아 캐세이드래곤의 노선 일부를 회복하였다. [[2021년]]으로 넘어가 코로나 백신이 나오면서 캐세이퍼시픽은 회사 정상화 및 홍콩의 출입국 정상화를 돕기 위해 '''백신 미접종자 전원 해고'''라는 초강수를 두었다. [[https://www.mbn.co.kr/news/world/4593159|홍콩 캐세이퍼시픽항공, 백신 미접종 직원 전부 해고]] 그리고 [[2022년]] 홍콩이 2년만에 모든 격리를 없애고 무격리 입국을 재개하자 이제는 항공편 증편에 애를 먹고 있다. 수요는 폭발하는데 비해 2년 간 긴 판데믹 때문에 시국을 못 버티고 퇴사한 사람이 많아 비행일정 짜기가 힘든 듯 하다. 타 항공사들처럼 결국 휴직자와 퇴직자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있다. 이는 판데믹이 지나간 후 여행업계 공통의 현상이다. 한국만 해도 여행사들과 항공사들에 그간 퇴사했거나 휴직한 사람들 중 희망자들을 전원복직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