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커뮤니케이션학 (문단 편집) === 커뮤니케이션학의 네 비조 === [include(틀:커뮤니케이션학의 네 비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회학]]이나 [[심리학]] 등의 학문 분야에서 [[심리전]] 캠페인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고 이러한 연구가 점점 커뮤니케이션 연구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결국 2차대전을 계기로 커뮤니케이션학이 태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기의 주요 연구자로는 [[해럴드 라스웰]], [[폴 라자스펠드]], 커트 레윈, 칼 호블랜드 등이 있다. 이 네 명은 당대에는 스스로 커뮤니케이션학자라는 인식이 없었으며 이들의 [[전공]]도 [[사회학]], [[심리학]], [[정치학]]이었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학의 앞길을 연 선구적 업적이 있다 하여 후술할 윌버 슈람이 이들을 커뮤니케이션학의 4비조로 칭한다. 1940년대에 들어 비로소 커뮤니케이션학이라는 명칭이 등장하게 된다. 영문학 박사였던 윌버 슈람이 계량적 [[사회과학]]으로서 커뮤니케이션학의 가능성을 보고 1943년에 [[아이오와 대학교]] 저널리즘대학에 커뮤니케이션학 과정을 신설하였으며, 이어서 1947년에 [[일리노이 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커뮤니케이션연구소를 설립하고 박사 학위 수여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윌버 슈람은 최초로 커뮤니케이션학을 제도화한 사람이며 최초의 커뮤니케이션학 [[박사]]이자 [[교수]]이기도 하여 그를 커뮤니케이션학의 아버지라 부른다. 한편, 최초의 커뮤니케이션학과는 1957년에 설립된 [[미시간 주립대학교]]의 커뮤니케이션학과로, 윌버 슈람이 [[일리노이 대학교]]에 있을 시절의 제자였던 데이비드 베를로에 의해 설립되었다.[* Rogers, E. M. (2001). The Department of Communication at Michigan State University as a seed institution for communication study. Communication Studies, 52(3), 234-248.] 데이비드 베를로는 처음으로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학위를 수여 받은 사람들 중 한 명으로, 1957년 부터 1971년까지 14년 간 학과장으로서 [[미시간 주립대학교]]의 커뮤니케이션학과를 이끌면서 윌버 슈람이 꿈꿨던 계량적 [[사회과학]]으로의 커뮤니케이션학을 구현시키는데 일조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