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쿠데타/사례 (문단 편집) ==== 적도 기니 ==== [[1979년]] 6월 중순에 적도 기니의 초대 대통령이자 독재자였던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가 밀린 임금을 지불해달라는 장교들을 처형했는데, 이로 인해 막내동생을 잃은 마시아스 응게마의 조카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는 삼촌을 배신하고[* 참고로 오비앙은 이전까지는 '아프리카의 [[폴 포트]]'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로 악랄했던 삼촌의 독재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마시아스와 오비앙의 관계는 히틀러와 힘러의 관계와도 같았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였다.] 쿠데타를 일으켜 삼촌을 몰아내고는 삼촌의 다른 부하 6명과 함께 특별군사재판에 회부하여 '''사형 확정 6시간 만에''' 모조리 처형시켰다. [[2004년]] 3월 7일에는 [[마거릿 대처]] 영국 전 총리의 아들인 [[마크 대처]]가 지휘하는 영국인 용병들이 망명한 유명 야당 정치인인 세베로 모토 은사를 대통령에 앉히려는 쿠데타를 시도했으나, [[짐바브웨]]의 [[하라레]]에서 쿠데타에 참여할 용병들을 태운 비행기가 억류되면서 실패로 끝났다.[* 여담으로 마크 대처는 어머니가 준 보석금 덕분에 [[집행유예]]만 받았다.] [[2017년]] 11월 12일에 온갖 [[부정선거]] 의혹 속에 치러진 적도 기니의 총선이 여당이 의석 170개 중 169개를 싹쓸이하는 압승을 가두자, 의석을 차지한 유일한 야당인 '혁신을 위한 시민(CI)' 이 사건에 항의하는 일이 발생했는데, 그로부터 약 1개월 정도 지난 12월 27일에 적도 기니 정부는 'CI와 반정부 정당들이 외국인 용병을 고용하여 [[카메룬]] 인근 변경에서 쿠데타를 시도하려고 한 것이 적발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쿠데타 혐의로 구속된 사람들에게 황당할 정도로 무자비한 형량이 선고되는 등[* 형량을 선고받은 130명(용병으로 판단되어 해외에서 납치된 외국인 24명 포함) 중 25명이 징역 70년형 이상을 선고받았으며, 심지어 쿠데타를 주모한 것으로 알려진 3명은 징역 '''96년형'''을 선고받았다.(이들 중 2명은 스페인에서 오랫동안 거주했다가 2019년 11월 12일에 남수단으로 떠난 후 3일 뒤에 적도 기니 당국에 납치되어 수감되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은 없었는데, 이는 응게마가 이 무렵에 사형제를 선고할 것이라고 발표했기 때문이었으며, 실제로 적도 기니의 사형제는 [[2022년]] 9월 19일에 완전히 폐지되었다.]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기 일각에서는 이 쿠데타가 응게마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친위 쿠데타]]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