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쿠르드족 (문단 편집) === [[튀르키예]]의 쿠르드족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북쿠르디스탄)] 별칭은 '''북(北)쿠르디스탄'''. 추정 인구는 1200만~2250만 명. [[미국 중앙 정보국|CIA]]에서는 1420만 명 정도로 추산했다. 쿠르드인이 가장 많이 살고 있다. 주로 튀르키예의 동부에 많이 거주한다. 유목을 생업으로 하지만 최근에는 농사도 짓는다. [[튀르키예]] 내에서 쿠르드족의 처우는 점차 개선되는 추세이다. 국영방송 TRT에서 TRT 6채널을 만들어 TV와 라디오로 쿠르드어로 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했으며, 과거에는 판매가 금지되었던 쿠르드어 교재들도 서점에 등장했다. TRT에서는 TRT AVAZ라는 채널에서 중앙아시아 튀르크 민족들의 언어로 된 방송을 내보내는데 [[아제르바이잔어]], [[카자흐어]], [[우즈베크어]], [[투르크멘어]], [[위구르어]] 방송을 번갈아가면서 내보낸다. 마찬가지로 TRT 6에서도 시간대에 따라 쿠르만즈어, 자자어, 소라니어로 분류해서 방송한다. 쿠르드어 노래도 시중에서 흔히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쿠르드 계열 사회주의 정당인 [[인민민주당(튀르키예)|인민민주당]]은 튀르키예 대국민의회에서 꾸준히 제3당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인식은 그저 그렇다. 동남부 지역에 거주하는 튀르키예인들은 상당수가 가까운 일가가 쿠르디스탄노동자당과 정부군 사이의 교전에서 희생된 일이 있기 때문에 쿠르드인 전체를 가족의 원수로 여기는 경향도 여전하며, PPK 리더 외잘란이 잡힐 당시 PPK에 의해 [[순직]]한 여러 군경 및 공무원의 유족들이 모여들어서 '외잘란을 처형시켜라!' 라며 울부짖었을 정도다. [[1927년]] 쿠르드인들이 [[아라라트 공화국]]이란 작은 나라를 3년이나마 세운 적이 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여파와 튀르키예 공화국 건국 이후로 반발하던 세력 정리 및 당시 [[소련]]을 신경 쓰느라 튀르키예가 미처 관심을 두지 못한 틈을 타서 3년 동안 유지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아라라트산]] 주변에서 건국이 이뤄졌기에 이곳을 성지로 여긴 아르메니아인들과 전투를 벌였다. 결국 이 와중에 5천이 넘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죽기도 했기에 아르메니아와 갈등을 빚었었다. 이 때문에 쿠르드인들이 독립한다면 아르메니아와 또 죽어라 전쟁을 벌일 게 뻔하기에, 쿠르드인 독립 문제를 두고 아르메니아도 반대하고 있다. 게다가 [[아라라트 공화국]]을 뭉개던 튀르키예군에 쿠르드인들도 대거 있었기에 여기서도 서로 죽고 죽이는 비극이 재현되었다. 튀르키예는 쿠르드족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산악 튀르키예인이라 부르면서 이라크-시리아 쿠르디스탄 전체를 [[오스만 제국]] 이래로 내려온 튀르키예 고유의 영토라 여기면서 튀르키예 영토로의 귀속을 주장하고 있다. [[파일:external/i0.wp.com/Misaki%20Milli.jpg]] 1차대전 패전으로 이라크-시리아 쿠르디스탄이 튀르키예에게서 분리되어 독립 시리아에 귀속되었으나, 튀르키예는 [[모술]] 등 쿠르디스탄을 튀르키예령으로 귀속할 것을 요구했다. 에르도안이 실제로 자국의 영유권을 주장하는데 인용하는 1920년 오스만 제국의회가 선언한 1차대전 전후 튀르키예의 영역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쿠르드인 자체는 인정하고 쿠르드어와 문화를 가르치고는 있으나,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튀르키예의 동부 [[댐]] 공사로 인하여 쿠르드족이 주로 사는 지역이 수몰되면서 친튀르키예적인 쿠르드족까지도 반발하고 있다. 튀르키예 내 환경보호 단체들도 결사반대하여 쿠르드족과 같이 공사현장을 뒤엎고 몸으로 막으며 반발하고 있는데, 튀르키예가 기획하고 있는 거대한 댐들이 세워지면 디야르바크르, 하산케이프 같은 쿠르드족이 엄청 많이 사는 곳이 수몰되며 아니를 비롯한 옛 아르메니아 왕조들의 수도 등도 물에 잠기게 된다. 때문에 아르메니아에서도 같이 반발하고 있어서 이 문제에서 쿠르드족과 아르메니아가 힘을 합치게 될 지 모른다. 그리고 이 지역에 가득한 문화재들이 수몰된다고 하여 튀르키예 내부나 국제사회에서도 반대가 많다. [[2011년]] 10월에 튀르키예군 초소를 급습하여 24명이 목숨을 잃었고, 튀르키예측은 이 보복으로 [[2011년]] [[12월 28일]] (튀르키예 측 발표에 의하면) 쿠르드 반군을 폭격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쿠르드 측은 사망자가 대부분 민간인이라고 반발했고, 급기야 주지사마저도 현지 성명으로 밀매업을 하던 젊은이들로 반군과 무관하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결국 여당 대표마저도 민간인이라고 [[http://media.daum.net/foreign/africa/cluster_list.html?newsid=20111229225107077&clusterid=485456&clusternewsid=20111230081906355&p=moneytoday|인정하고 말았다.]] [[2014년]] [[이라크 내전]]이 터지면서 이라크 쿠르디스탄의 무장조직인 페쉬메르가의 무장 수준이 서방의 지원으로 상당히 강력해졌고, 이라크 쿠르디스탄이 튀르키예를 경유해 석유를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튀르키예도 무턱대고 이라크 쿠르디스탄을 반대할 수 없게 되었다. 송유관이 튀르키예를 거쳐가면 튀르키예에게도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라크 쿠르디스탄에 한해서만 튀르키예가 협조할 뜻을 비칠 뿐, 튀르키예 내 쿠르디스탄은 역시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에르도안 휘하의 튀르키예는 [[시리아 내전]]을 틈타 시리아-이라크 쿠르디스탄 일부를 강점하고 튀르키예령으로 편입할 꿍꿍이를 품고 있다. 평균적으로 쿠르드인의 경우 튀르키예인보다 아이를 1명 이상 더 낳으며, 튀르키예인의 경우 대체출산율(2.1명) 아래로 출산율이 떨어진 데 반해 쿠르드인은 높은 출산율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으므로, 세대가 지날수록 지금도 적지 않은 쿠르드인의 비중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경향은 튀르키예 동부 쿠르드족 거주지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도시화가 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꾸준하게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튀르키예 정부도 이에 대해 위협을 느끼고 있어서 '여성은 아이를 3명은 낳아야 한다'느니 하는 소리를 하는 중. --실업률이나 낮추지?-- 쿠르드족 일각에서는 "'''어차피 튀르키예 전체가 조만간 쿠르디스탄이 될 텐데 뭐 하러 독립운동 따위를 해서 [[앙카라]]나 [[콘야]], [[이즈미르]], [[이스탄불]] 같은 비옥한 도시를 버리겠냐'''"며 독립운동을 하지 말자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2021년 7월 28일경 튀르키예 밀라스 남서부 지역에서 시작된 대규모 방화사건에 쿠르드족 무장단체가 개입되어 있다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테러용의자들을 끝까지 추적해 응징할것이라 밝혔다.자세한 내용은 [[튀르키예 산불]] 항목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