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크라이슬러 (문단 편집) == 연혁 == [[파일:external/www.allpar.com/chrysler_wing.jpg|width=350]][br]2011년까지 사용한 로고 [[파일:Chrysler Logo.png|width=350]][br]2011년부터 쓰는 로고 [[캐나다계 미국인]] 월터 P. 크라이슬러(1875~1940)가 1925년에 설립했다. 1921년에 월터 크라이슬러가 지분을 인수하여 운영하던 자동차 회사 맥스웰 모터 컴퍼니(Maxwell Motor Company)를 전신으로 하며, 본인 명의로 준비한 첫 신차인 크라이슬러 식스를 1924년에 "크라이슬러 B70"[* 이름의 70은 본 차량의 최고시속인 70mph(약 113km/h)에서 따 왔다. 당대 신차들의 평균 최고시속이 60mph(약 96km/h)임을 의식한 작명으로, 최종 모델명이 된 "식스"는 직렬 6기통 엔진에서 따 왔다. 이외에도 최초의 양산형 유압식 4륜 브레이크, 카뷰레터 에어필터, 오일 필터, 엔진 내의 가압 윤활 시스템(pressure lubrication), 고압축비 엔진도 크라이슬러 식스에 처음 적용되었다.]이라는 이름으로 선공개했다. 회사 설립 첫 해동안은 맥스웰 브랜드의 차종들과 병행판매하다가 맥스웰 브랜드를 폐지하고 기존 맥스웰 차종들도 크라이슬러 브랜드로 통합시켰다. 이후 1928년에 크라이슬러의 4기통 라인업을 크라이슬러로부터 독립시켜 만든 보급형 브랜드 플리머스, 중산층을 겨냥한 드 소토를 설립했으며 같은 해에 닷지 브라더스와 파고를 인수하며 상용차 시장에 진출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사이에 플리머스, 닷지, 드 소토, 임페리얼과 공존하던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 설립 초창기의 크라이슬러 브랜드는 임페리얼보다 한 등급 아래로서 가격 대비 높은 수준의 엔지니어링과 첨단기술을 적용한 프리미엄 브랜드로 포지셔닝했으며, 타 브랜드의 신차에도 경쟁차 대비 앞선 기술력을 무기로 정착시켰다. 설립 10주년 기념으로 출시한 신차 에어플로우가 설립 초창기의 크라이슬러 브랜드, 그리고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이 추구한 개발철학을 보여 준 절정이었다.[[https://youtu.be/FRmzd1AB4kc|#]] 에어플로우는 공기역학 중심의 현대적인 외장 디자인, 당대의 통상 승용차보다 안정적이고 부드러운 승차감과 무게배분, 그리고 프레임이 탑승공간 전체를 감싸는 골격구조로 인한 높은 안전성으로 고객을 모으고자 했으나 이질적인 스타일링, 비싼 가격, 초창기의 품질불량 문제로 상업적으로 실패했고 이후에는 상당히 보수적으로 변해 스타일링과 편의성 중심으로 흘러가던 1940~50년대 자동차 트렌드도 반쯤 무시하고 엔지니어링과 내구품질에만 몰두했다. 그러다가 1950년대 중후반기와 1960년대에는 설립 초창기처럼 혁신적인 이미지를 다시 심으며 잘 나갔다. 회사의 초대 수석디자이너로 부임한 [[버질 엑스너]]가 엔지니어들이 스타일링까지 맡았던 크라이슬러의 회사 분위기를 바꿔가기 시작하면서 1955년형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 차종들의 공통 디자인 테마인 "원 헌드레드 밀리언 달러 룩"과 그 후신으로서 1957년형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 차종부터 적용되는 공통 디자인 테마인 "포워드 룩"[* 낮은 루프라인과 길고 넓은 프로포션을 갖춘 공격적인 실루엣에 말끔한 면처리, 초대형 [[테일 핀]]을 둘러 웅장함을 강조하고 공기역학을 고려(버질 엑스너는 테일핀이 공기역학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한 디자인 테마로, 포워드 룩의 런칭 연도에 스타일링의 절정을 맺으며 엑스너와 디자인 팀이 인더스트리얼 디자인 인스티튜트(Industrial Designers Institute)의 골드 메달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을 만들어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기술적으로도 300C에 들어가는 고성능의 헤미 엔진과 1957년식 임페리얼에 적용되는 미제차 최초의 곡면 옆유리, 1958년식 임페리얼을 통해 데뷔한 케이블식 [[크루즈 컨트롤]], 임페리얼 외의 1960년식 라인업부터 적용된 대량생산 [[모노코크|유니 바디]], 1960년식 밸리언트에 도입된 업계 최초의 알터네이터, 1962년의 [[가스터빈|가스터빈 자동차]]처럼 실험적인 시도를 이어갔다. 1960년대에도 계열사인 닷지, 플리머스를 통해 머슬카 시장에 진출하여 흥행했지만 1960년대 후반 들어 그룹 차원에서의 마케팅 전략 실패로 판매 부진을 겪으며 고전하였다.[* 1973년에 출시된 신형 대형차 라인은 등장하자마자 석유파동의 직격탄을 맞았으며, 반면에 소형차 라인은 영국 지부인 루츠 그룹과 제휴업체인 일본 미쓰비시에서 끌어와 적당히 땜빵하는 수준이었다. 크라이슬러 및 임페리얼같은 경우는 1960년대부터 자사의 고급 브랜드에 엔트리 라인을 추가해온 포드, GM과 달리 대형차만 고집한다고 선언한 게 발목을 잡은 건 물론, 크라이슬러 브랜드의 서비스점을 염가 브랜드인 플리머스와 공유하던 전략이 크라이슬러 고객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항공기 디자인을 참고하여 볼륨감과 공간감을 강조한 1960년대 말~1970년대 초의 디자인 랭귀지인 퓨즈레이지 스타일링이나 1970년대 중순부터 자사 V8 엔진 라인업에 도입한 [[린번 엔진|전자식 린번 시스템]][[https://www.hemmings.com/stories/article/chryslers-lean-burn-system|#]]도 그 후과는 좋지 못했다.][* 그 이전인 1950~60년대에도 각 브랜드별로 가격대, 사양, 사이즈가 겹치기 시작하는 문제를 가만히 내버려둬서 중산층 브랜드인 드 소토가 1961년에 사라지고 닷지가 플리머스의 윗급에서 플리머스와 동격 브랜드로 인지되기 시작하며 독립 딜러점 설립이 예정된 플리머스를 크라이슬러 딜러로 통합하는 등, 마케팅 쪽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었다. 이외에도 GM의 컴팩트카 [[쉐보레 노바]]에 대한 루머를 GM 라인업 전반의 다운사이징으로 오해해 버질 엑스너가 작업중이었던 1962년식 닷지, 플리머스 승용차 라인 전반을 휴가기간 동안 멋데로 다운사이징했다가 실적폭락에 시달렸고, 그 책임을 버질 엑스너에게 씌워 해고한 일도 있었다. 크라이슬러 계열사의 딜러점주 아버지를 둔 전직 보안관이자 AllPar의 에디터 [[https://www.allpar.com/threads/curtis-redgap-former-sheriff%E2%80%99s-officer-current-writer.236823/#post-1085245236|커티스 레드갭]](Curtis Redgap)의 회고록에서 당시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1940년대~1960년대 동향을 엿볼 수 있다.[[https://www.allpar.com/search/102927/?q=Curtis+Redgap+1946&o=relevance|#]]] 1976년, 포드에서 명성을 쌓다가 [[헨리 포드 2세]]와의 갈등으로 해임된 [[리 아이아코카]]가 사장으로 영입되었다. 아이아코카는 먼저 35명에 달하던 부사장급 임원 중 33명을 자르고 그가 일했던 포드 출신을 포함한 새로운 임원진을 구성하였다. 더불어 [[노동조합]]을 설득하여 2번이나 임금 삭감을 이끌어 냈으며, 1980년 한 해만 1만 5천 명의 정규직원을 [[해고]]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하여 5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 절감을 이루었다. 그리고 [[워싱턴 D.C.]]에 가서 상원, 하원 청문회에 불려 다니며 노력한 결과, 연방 정부로부터 15억 달러 규모의 융자금 보증을 얻어 냈다.[* 크라이슬러의 전 부회장 밥 루츠는 자서전 "빈 카운터스"에서 리 아이아코카의 청문회 현장을 일부 서술했는데, 크라이슬러에 국고를 퍼 주는 대신 대중교통에 투자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아이아코카가 "우리 크라이슬러가 우습게 보입니까?"라고 강하게 호소하자 질문의 논조가 좀 더 누그러졌다고 회고했다.] 이런 노력 끝에 [[1982년]] 여름, 부채 15억 달러를 일시에 갚고 7억 달러의 순이익을 남기는 [[신화]]를 일궈 냈다. 5% 삭감했던 [[노동자]] 연봉도 원래 수준으로 올려 놓았고 해고했던 직원들의 상당수도 다시 불러들였다. 신차 라인업에서도 크라이슬러 K-플랫폼으로 대표되는 가로배치 전륜구동 플랫폼 기반의 컴팩트카를 키워 1980년대 초 미국의 경제 불황기를 돌파했는데, 이 시절 나온 대표적인 작품이 미니밴인 [[닷지 캐러밴]]이다.[* 형제차로 [[플리머스 보이저]]가 있었고, 1세대 미니밴이 끝물일 때에 [[크라이슬러 그랜드 보이저|크라이슬러 그랜드 보이저/타운 앤 컨트리]]를 추가했다. 우성유통에서 크라이슬러를 수입했을 적에는 [[닷지 캐러밴]] 3세대가 크라이슬러 브랜드로 팔렸다.][* [[기아자동차|기아산업]]에서 [[기아 봉고]] 코치를 내놓았을 때 [[김선홍]] 당시 회장을 [[대한민국]]의 아이아코카라고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리 아이아코카]]는 광고와 토크쇼, 신차 발표회 등을 통해 대중 앞에 자신을 자주 노출시키고, 회사 사정과 제품의 개발 배경을 스스로 털어놓기까지 해 미국 국민들의 신뢰를 사기도 했다. 반면 이러한 "쇼맨쉽" 전략이 문제가 될 때도 있었고, 1980년대 중후반부터는 회장 자리 및 회사 주가에 집착하거나 보수적인 디자인을 계속 고수하는 등의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람보르기니]]와 [[아메리칸 모터스 코퍼레이션|AMC]]/[[지프]]를 인수할 정도로 정상 궤도를 달릴 수 있었고, 고수익성 브랜드로 자리잡은 지프와 함께 중형 컨버터블,[* 1982년에 출시한 크라이슬러 레 바론 컨버터블이 미국 자동차시장에 순정 메이커 컨버터블 라인업을 부활시켰다. 1970년대를 거쳐 안전규제의 강화, 에어컨의 보급, 비닐 루프의 유행 등으로 쇠퇴하다가 [[캐딜락 엘도라도]]를 끝으로 코치빌더의 개조 패키지로만 연명하던 미국산 오픈카 시장을 부흥시켰으며, 2세대에 걸쳐 레 바론의 컨버터블 버전을 만든 것은 물론 세브링도 컨버터블이 만들어져 2010년대 초까지 라인업에 잔류했다.] 미니밴 등의 시장에서 꾸준한 수요를 유치할 수 있었다. 1992년 아이아코카가 은퇴한 뒤에는 [[로버트 이튼]] 회장[* GM 출신의 인물로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창설에 기여했다. 회사 내부의 비용을 효율적으로 다뤄 꾸준한 이익을 내는 데 기여한 반면, 비용 절감이 지나쳐 품질과 평판을 깎아먹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과 [[밥 루츠]] 등의 경영진들이 회사를 이끌면서 캡 포워드 스타일과 탁월한 성능을 지닌 신차들, 세로배치 전륜구동 구성의 [[크라이슬러 LH 플랫폼]]과 미니밴 패키징으로 대표되는 각종 기술력, 그리고 AMC 인수 이후 AMC로부터 이어받은 유연한 기업문화와 신차개발 과정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 AMC 시절의 유산 중 하나로, 리 아이아코카 후반기에 크라이슬러로 영입된 르노/AMC 출신의 엔지니어인 [[https://moparinsiders.com/former-chrysler-engineering-wizard-francois-castaing-has-passed-away/|프랑수아 카스탱]](Francois Castaing)이 있었다. 프랑수아 카스탱은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플랫폼 팀을 혁신, 각 차량의 부위별, 담당업무별로 쪼개져 있던 제품개발팀을 철폐하고 컨셉트부터 양산에 이르는 프로젝트 팀을 구축해 보다 적은 인원으로도 빠르고 저렴하게 신차를 개발할 수 있는 제품개발환경을 구축했다. 이렇게 AMC의 창의적이고 유연한 인재들과 제품개발과정이 1990년대 크라이슬러 내부에 널리 퍼짐에 따라, 1990년대의 크라이슬러는 오히려 AMC가 크라이슬러를 집어삼킨 거나 다름없었다는 평가도 나올 정도였다.] 당시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은 미국에서 수익성이 가장 좋은 축이면서도 크라이슬러 자체 브랜드만이 아닌 닷지, 플리머스 등으로도 눈에 띄는 제품들을 내놓으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흥행 가도를 달렸다. 크라이슬러 자체 브랜드는 세브링 컨버터블과 미니밴 타운 앤 컨트리/그랜드 보이저가 판매고를 꾸준히 올려 주었다. 또한 1977년 이후 철수했던 유럽 시장에도 1980년대부터 재진출해 [[이글 비전|비전]], [[닷지 네온|네온]] 등을 수출하고 지프 SUV와 미니밴을 유럽에서 현지생산하여 파는 노고를 보이기까지 했다. 1988년에는 [[알파 로메오]]의 모회사인 피아트가 크라이슬러로부터 독점 유통 계약을 체결하고 1995년에는 크라이슬러와 피아트 간에 상호합의에 이르게 된다. 두 회사 간의 접촉은 1990년 아이아코카 회장과 피아트의 지오반니 아넬리 회장의 미국과 유럽 합작 투자 설립과 피아트의 크라이슬러 지분 인수 가능성에 대한 고위급 회담으로 이어졌지만, 얼마 안가 대화가 종료되고 만다.[* 훗날 2009년에 크라이슬러의 구조 조정 이후 피아트가 크라이슬러 지분을 인수하였다.] 그러나 고질적인 품질 문제로 무상수리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1998년 이튼 회장의 주도 하에 품질 문제를 해결하고자 [[메르세데스-벤츠]]로 유명한 [[메르세데스-벤츠 그룹|다임러 벤츠]]와 합병해서 다임러-크라이슬러가 되었다.[* 참고로 이 때의 다임러-크라이슬러는 럭셔리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그 유명한 [[메르세데스-마이바흐|마이바흐]]를 부활시키는 강수를 두었다. [[메르세데스-벤츠 SLR 맥라렌]]도 내놓는 등 새로운 시도를 여럿 했는데, 결과는 모두 실패. 2000년대 초반 벤츠에 달린 서스펜션 기술인 ABC는 중고 벤츠의 가격을 똥값으로 만들었고, SLR은 [[맥라렌]] 욕만 잔뜩 먹고 판매량도 부진했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마이바흐]] 또한 [[벤틀리 플라잉 스퍼]] 때문에 판매량이 망해서 결국 S클래스 상위 브랜드 수준으로 변경. 사실 5억 원이 넘어가는 엄청 비싼 차를 내놓으면서 매일 한 대씩 팔리리라 기대한 [[메르세데스-벤츠 그룹|다임러]]의 잘못도 크다.][* 참고로 다임러와 합병하기 전에는 [[BMW]]와 제휴하여 닷지 네온과 [[미니|신형 미니]]가 1.6L 엔진을 공용하기도 했다. [[오스틴 로버 그룹|로버 그룹]]의 재정상황을 안정시키려는 BMW와 유럽 진출을 확대하려던 크라이슬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애초 동등한 합병을 모토로 시너지 효과를 기대했으나, 어느 새 다임러가 점령군이 되어 [[독일]] 문화를 마구 주입한 결과 융화 실패했다. 다임러 휘하에서 각종 경직된 개발절차가 도입됨에 따라 AMC 인수 이후 1990년대 내내 존재했던 크라이슬러의 유연한 기업 분위기가 없어져 버렀으며, 품질 문제도 원가절감을 강요받는 바람에 제대로 해결되지 못했다. 당시 크라이슬러에서 일한 직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다임러 출신 임원들은 크라이슬러 임원들을 하대하고, 이들의 의견을 흘려듣고 무시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하며 또한 강압적으로 지시하는 사항들이 여럿 있었던데다가 다임러의 의견에 반대하는 입장을 낸 인사들이 얼마 안 가 퇴출당했다는 제보도 나오는 등, 제대로 된 화학적 결합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크라이슬러가 기존에 보유하던 제품 개발 팀까지 반쯤 와해되는 사태[* 가령 미쓰비시와의 제휴 강화에 앞서 2,000명이 감축되었던 사례에서는, 네온 등을 개발한 소형차 개발 팀원 상당수가 정리해고되었다.]가 벌어질 정도로 [[http://www.allpar.com/neon/engineering.html|답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밥 루츠, 프랑수아 카스탱, 톰 스톨캠프, 크리스 시어도어같은 부흥기 시절 인재들이 크라이슬러를 떠난 것도 다임러크라이슬러 초반의 일이었다.[[https://www.allpar.com/ed/old/merger.html|#]][* 반대로 크리스 시어도어같이 벤츠 임원들 사이에서 실력을 검증받은 일부 임원들은 대우를 잘 받았으며, 개발 과정에도 동등하게 같이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당사자들은 "실력을 검증받기 전에 시달리는 거만한 시선과 태도"를 견뎌내야 하는 점이 문제였다고 회고했다([[http://www.allpar.com/history/interviews/chris-theodore/fall-and-rise.html|#]]).] 브랜드로서의 크라이슬러 역시 그룹 내의 보급형 브랜드 플리머스가 폐지되자 보이저, PT 크루저같은 플리머스 계열 차들이 라인업에 편입되는 등, 사실상 플리머스의 자리까지 대체하는 대중차 브랜드로 격하되었다. 결국에는 위와 같은 이유로 심각한 내상을 입은 다임러에서 크라이슬러를 뱉어내기로 결정했으며, 2007년에는 케르베로스 캐피탈 매니지먼트라는 [[사모 펀드]] 업체에 팔렸다가[* [[메르세데스-벤츠]]와 공동 개발한 마지막 작품은 현재 크라이슬러의 주력 V6 [[가솔린 엔진]]으로 밀고 있는 펜타스타 V6 3.2/3.6리터 [[DOHC]] [[가솔린 엔진]]과, 3세대 [[메르세데스-벤츠 M클래스|M-클래스]] 플랫폼이다. 따라서 그랜드 체로키 4세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벤츠의 차대가 사용된다. 단, 커먼레일 [[디젤 엔진]]은 [[피아트]]의 것을 사용한다. 피아트로 넘어온 후에는 펜타스타 V6 가솔린 엔진을 [[페라리]]에서 튜닝하고 터보 2개를 장착하여 F160이라는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을 만들었다.][* 케르베로스 휘하에서는 닛산자동차나 [[체리자동차|치루이기차]]와의 협력관계 구축을 고려하였다. 예컨데 2006년에 공개한 소형차 닷지 호넷 컨셉트카를 [[닛산 베르사]] 기반으로 2009년부터 양산, 일본에서 생산한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제너럴 모터스]]와 함께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고 2009년 4월 30일 [[챕터 11]] 파산보호를 신청해 겨우 살아남다가 [[이탈리아]] 최대 자동차 회사인 [[피아트]]와 제휴를 맺기 시작하여 2011년 상당수의 지분을 매각했고, 2014년 1월에 피아트 계열로 완전히 편입됐다. 2021년 1월, [[스텔란티스]]가 성립되자 크라이슬러 브랜드의 존속이 확정되었다. 닷지, 램과 함께 [[미국]] 브랜드 3종으로 분류되었으며,[* [[지프]]는 글로벌 브랜드로 분류.] 크라이슬러 브랜드는 닷지를 담당하고 있는 팀 쿠니스키즈가 수장 자리를 같이 담당하게 된다. 장기적인 브랜드 전략과 정체성이 불투명한 탓에 크라이슬러 브랜드의 존속 가능성이 미국의 크라이슬러 계열사 딜러점 내에서 [[https://jalopnik.com/stellantis-needs-to-come-up-with-a-purpose-for-chrysler-1846221661|화제]]가 되자, [[카를로스 타바레스]] 회장은 크라이슬러 브랜드를 푸조, 피아트와 함께 스텔란티스의 대들보격 브랜드이자 한때 미국에서 가장 최고의 기술, 미국 기술의 상징이었던 브랜드임을 잊지 않았다며 크라이슬러 브랜드의 존속 및 개편을 공언했다.[[https://www.detroitnews.com/story/business/autos/chrysler/2021/02/10/stellantis-ceo-carlos-tavares-calls-chrysler-pillar-company-says-brand-has-future/6705426002/|#]] 2021년 7월 8일, 스텔란티스가 EV 데이를 통해 각 브랜드 전동화 비전을 공개할 때 크라이슬러는 자세히 언급되지 않았으나 에어플로우 비전 컨셉트카의 양산화 버전의 미리보기격으로 보이는 컨셉트카가 등장했다. 북미 및 남미 지부의 수석디자이너 랄프 길즈가 이 컨셉트카를 타고 등장했다. 이 컨셉트카는 같은 해 12월의 "소프트웨어 데이"를 통해 에어플로우라는 이름으로 정식 공개되었다.[[https://youtu.be/NBZKpdpeZvc|#]] 2021년 9월, 크라이슬러 브랜드의 CEO로 포드, 존슨 컨트롤즈(현 에디언트), 하니웰 인터네셔널 출신의 크리스틴 퓨엘(Christine Feuell)을 임명했다.[[https://www.freep.com/story/money/cars/chrysler/2021/09/07/chrysler-ceo-ford-christine-feuell/5751437001/|#]] 2022월 1월 5일 CES를 통해 에어플로우 컨셉트카의 공식 런칭 및 전시, 그리고 크리스틴 퓨엘의 첫 공개활동이 이루어졌다. 브랜드로서의 크라이슬러를 "주류 시장에 혁신을 가져오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낸" 혁신 브랜드로 정의했으며,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 창립 100주년이 되는 해인 2025년에 첫 전기차 라인을 출시하고 2028년부터는 전기자동차만을 판매할 것이라고 밝혔다.[[https://youtu.be/biNlapYvxkA|#]] 또한 크리스틴 퓨엘 크라이슬러 CEO는 디트로이트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크라이슬러가 지속가능성과 기술력을 토대로 고객 입장에서 보다 접근 가능하고 필요에 맞는 형태로 제품군을 변화시켜나갈 예정이며, 미니밴과 300뿐이었던 2010년대~2020년대 초까지의 "패밀리카" 이미지 이상으로 고객층을 확대하고 고속충전 기술을 비롯한 전동화 기술력으로 차별화를 구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계획이 최종 확정난 것은 아니지만 라인업에 대해서는 300과 퍼시피카를 통해 이미 진출한 대형 세단, 미니밴 등의 세그먼트를 재정의하고, 고객층은 퍼시피카 PHEV의 고객층으로 부상한 도심지 및 외곽지에 거주하는 대졸자 학력의 밀레니얼 세대 여성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https://www.detroitnews.com/story/business/autos/chrysler/2022/01/05/chrysler-go-all-electric-2028-target-millennial-women-starting-airflow-crossover-concept-ces/9054056002/|#]] 이외에도 CNBC와의 인터뷰에서는 2025년부터 2028년까지 연간 1차종씩 전기자동차 전용 신차를 출시하고, 기술에 관심이 많은 고객층들을 크라이슬러로 유치할 것이라고 밝혔다.[[https://www.cnbc.com/2022/01/05/chrysler-kicks-off-plans-to-go-all-electric-by-2028-with-airflow-concept.html|#]][[https://www.autonews.com/sales/chrysler-ceo-ready-all-ev-future|#]] 스텔란티스 휘하의 첫 전기차 에어 플로우의 컨셉트카를 발표했는데 뒷부분이 포르쉐 카이엔과 완벽하게 똑같다.[[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3075928&memberNo=32022697|#]] 크리스틴 퓨엘 현 CEO는 에어플로우가 양산으로 이어지지는 않으며 이름 자체가 계승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차기 라인업으로는 전기 미니밴과 SUV를 약속했고, 크라이슬러 300에 대해서는 단종만 확답한 채 말을 아끼며 SUV에 대한 설명에 집중했다고 모터 트렌드가 전혔다.[[https://www.motortrend.com/news/chrysler-new-ev-models-coming/|#]] 현지시간 2022년 4월 13일, 뉴욕 오토쇼에서 에어플로우 컨셉트카의 업데이트 사양이 공개된다. 날개 모양 로고에 기반한 신규 엠블럼이 적용되었다.[[https://www.motor1.com/news/579287/chrysler-airflow-teases-new-design/|#]] 크리스틴 퓨엘 크라이슬러 CEO는 이를 통해 차기 크라이슬러의 디자인 테마를 보여주었으며, 이때 에어플로우에 대한 반응이 고객이 당장 바라던 차량이었으며 에너지가 차오르는 반응이었다고 밝혔다. 동시에 크라이슬러의 디자인 테마를 보다 현대적이고 하이테크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디지털 개인 어시스턴트를 포함해 차기 라인업에 도입할 신기술 몇몇을 검토중이며, 고객이 가치를 부여하고 사용할 만족스러운 기능을 갖추고 싶다고 밝혔다. 또한 고객만족도 항상을 위한 고객조사과정으로서 "프로젝트 인지뉴이티(Project Ingenuity)"를 출범, 현존하는 고객 및 잠재고객들로부터 신규 디자인 테마, 기술적 인터페이스, 차기제품기획 관련 아이디어 등의 피드백을 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크리스틴 퓨엘 크라이슬러 CEO는 프로젝트 인지뉴이티를 통해 고객들과 밀접한 관계를 만들어가면서 고객이 원하는 바를 차량에서부터 회사와의 관계, 고객을 대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이해하여 2025년까지 고객경험을 혁신, 동급 브랜드 내 최고의 고객경험을 구축하고자 한다고 밝혔다.[[https://www.autonews.com/design/chrysler-looks-customers-design-tech-insight|#]] 2022년 8월 1일, 크리스틴 퓨엘 크라이슬러 CEO가 포브스 지를 통해 브랜드 운영 계획에 대해 다시 입을 열었다.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창업주 월터 P. 크라이슬러의 발표[* 포브스 지의 인용에서는 'we will deliver quality, beauty, speed, comfort, style and power all at a low price.']를 인용하며 합리적인 가격대이되 혁신적인 기술력과 솔루션을 제시하는 "aspirational but accessible"로 크라이슬러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이를 계승하되 현대화하여 시대에 발맞출 예정이라고 밝혔다. 향후 라인업으로는 수년간 최소 3종의 신차를 출시하되 SUV 2종을 포함시킬 것이라고 전했다.[[https://www.forbes.com/sites/dalebuss/2022/07/30/chrysler-ceo-feuell-is-inspired-by-past-excited-by-future-of-the-brand/|#]] 2023년 2월 14일, 크리스틴 퓨엘 크라이슬러 CEO는 300이 단종된 후 2025년에 신차가 추가될 때까지 1년 이상의 기간동안 크라이슬러 브랜드가 퍼시피카만 판매할 것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퍼시피카를 크라이슬러 브랜드의 영웅으로 높게 평가하며 "미니밴 브랜드" 이상의 것을 추구하겠지만 미니밴도 라인업에 잔류할 것이라고 오토블로그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밝혔다. 2025년에 출시되는 신차를 통해 한동안 크라이슬러 브랜드가 진출한 적이 없었던 세그먼트에 진입하며, 독일 자동차 제조사들이 비즈니스 모델로 제시한 소프트웨어 기반의 옵션구독제에 대한 입장을 묻자 잠재고객들의 반응을 인용하며 신기술의 도입은 고객의 입장에서 실익이 되어야 한다고 비판했다.[[https://www.autoblog.com/2023/02/14/10-questions-with-chrysler-ceo-chris-fuell/|#]] 현지시간 2023년 8월 31일부터 9월 4일까지, 크라이슬러 300의 은퇴식을 겸하는 크라이슬러 브랜드의 기념 행사인 라임 락 파크 히스토릭 페스티벌(Lime Rock Park Historic Festival)이 예정되어 있다. 미국 코네티컷 주 레이크빌에 위치한 라임 락 파크에서 크라이슬러 300의 송별회로서 1955년형 300C와 크라이슬러의 역대 콘셉트카들을 전시하고 모터스포츠 대회, 퍼레이드와 함께 스텔란티스의 수석디자이너 랄프 길즈가 행사에 참가할 예정이다.[[https://blog.stellantisnorthamerica.com/2023/08/29/lime-rock-park-historic-festival-honors-chrysler-brand/|#]] 2023년 11월 8일, 크리스틴 퓨엘 크라이슬러 CEO가 2024년 연초에 새로운 컨셉트카를 공개할 것이라고 디트로이트 뉴스에서 밝혔다. 추후 출시되는 신차는 에어플로우 컨셉트카를 참조한 스타일링에 STLA 라지 플랫폼 기반의 2열 크로스오버로 출시되며 스텔란티스가 전동화 비전 발표 당시 제시한 핵심기술인 STLA 브레인, STLA 스마트콕핏, 레벨 3 자율주행기능을 포함한 STLA 오토드라이브를 북미 차종 최초로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차후 자동차 시장에 대해서는 고객이 전기차를 찾는다면 주행거리, 접근하기 쉬운 충전소, 합리적인 가격대를 원한다고 말하는 동시에 일반 승용차 세그먼트가 다시 부상할 것으로 전망했다. 동시에 온라인 구입, 적시에 이루어지는 배송 전후의 정보전송, 가정용 충전기 설치와 유지보수 업데이트 제공, 인공지능을 활용한 고객문의 서비스를 포함해 자동차 구매 및 서비스에 해당되는 고객경험을 개발하면서 대폭적인 가격할인으로 고객을 모으되 리스 및 서비스에서 마진을 충당하던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재검토하고 있으며, 신차리스를 장려하는 사업모델을 제안했다. 신차개발에 필요한 자원은 오펠, DS를 포함한 스텔란티스 그룹의 유럽 신차들과 공용화해 개발비를 줄이고 빠른 시판을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https://www.detroitnews.com/story/business/autos/chrysler/2023/11/08/chrysler-ceo-chris-feuell-forecasts-resurgence-car-segment/71501993007/|#]]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