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크로이소스 (문단 편집) === 정복 === >'''새로운 왕에 의해 순식간에 할리스 강 서쪽에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정복되었다. 실리키아인과 리키아인을 제외하고 크로이소스는 리디아인, 프리기아인, 미시아인, 마리안디니아인, 칼리베인, 파플라고니아인, 티니아인, 비티니아인 트라키아인, 카리아인, 이오니아인, 도리아인, 아이올리인, 팜필리아인을 모두 제압하고 나머지 모든 백성들도 그의 신민으로 삼았다. ''' >---- > [[헤로도토스]] 크로이소스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행정적, 정치적, 군사적 기술을 배웠고, 긴 시간 동안 군사 거점인 아드라미티움에서 총독으로 있으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 그의 천재성은 경제 뿐만 아니라 군사 부문에서도 두드러졌다. 크로이소스는 왕이 된 직후, 동맹의 중요성을 인식해서 메디아 왕국의 아스티아게스 왕의 누이와 결혼하면서 동맹을 맺어 영구적인 평화를 약속한다. 자신이 총독 시절 만들어놓은 화폐 시스템을 메디아 왕국 전역에 적용시켰고, 왕국은 크게 풍요로워진다. [[리디아]]가 충분한 금과 인력을 갖게 되자, 크로이소스는 즉시 이오니아의 도시국가 [[에페소스]]를 상대로 군사 작전을 개시한다. 원래 에페소스 왕조는 크로이소스의 메름나데스 왕조와는 항상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해왔다. 하지만 [[에페소스]]의 군주 핀다르는 과거 크로이소스가 지신의 이복형제인 판텔레온과 왕위 계승 전쟁이 발생했을 때 판텔레온을 지원했었다. 이후 판텔레온이 사망하고 크로이소스가 왕이 되면서 두 왕조는 척을 지게 된다. 크로이소스는 에페소스의 핀다르 왕에게 리디아에게 항복하고 복종하라는 서신을 보낸다. 핀다르가 거절하자 크로이소스는 에페소스를 공격한다. 에페소스의 군대는 리디아의 군대에 완패해 지리멸렬 됐고, 크로이소스는 핀다르가 있는 도시를 완전히 포위한다. 핀다르는 크로이소스에게 항복하고 도시국가 에페소스는 [[리디아]] 왕국에 병합된다. 에페소스를 병합한 후 크로이소스는 [[아르테미스 신전]]을 건설한다. 크로이소스는 다른 [[이오니아]], 아이올리스와 [[도리스]]를 모두 정복할 때까지 계속해서 그리스를 침공했다. [[밀레투스]]를 포함한 많은 그리스 지역의 도시국가들이 무력에 의해 병합당하거나, 항복 권고를 수용해 리디아에 공물을 바쳤다. 크로이소스는 그리스 군도 지역의 도시 국가들은 정복하지 않고 평화 조약을 체결했다. 평화 조약의 대가로 [[리디아]]는 [[그리스]]와 나우크라티스[* 이집트의 나일강 삼각주에 정착한 그리스인들]와의 무역 상품 중 이윤이 많이 남는 상품을 독점해서 거래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갔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책에서는 크로이소스가 [[아나톨리아]] 지방을 정복한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아나톨리아]] 지방은 크로이소스의 아버지인 알뤼아테스 시대에 이미 리디아 왕국에 복속되어있었다. 알뤼아테스 재임 시절 킴메르 약탈자들은 아나톨리아 전역을 휩쓸었는데, 이는 일대의 중앙집권 국가였던 프리기아를 포함해, 내로라 하던 정치 세력을 모두 소멸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약탈이 끝난 후 아나톨리아는 군소 부족들로 쪼개어졌다. 알뤼아테스는 아나톨리이아의 부족들로 하여금 [[리디아]] 왕국과 속국 및 동맹 관계를 맺도록 설득했다. 속국이 된 부족은 리디아 왕국에게 주기적으로 공물을 바치는 대신, 리디아 왕국은 그들이 공격받았을 때 도와주기로 약속하는 것이었다. 이는 [[리디아]] 왕국의 영향력이 [[소아시아]]의 동쪽 끝자락까지 확장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리디아의 요새 유적은 소아시아의 북서부인 미다스 시의 프리기아 고지 뿐만 아니라 소아시아의 서부인 하치투울, 아피온카라히사르, 코냐에서도 발견된다. 이는 리디아가 군소 부족들과 단순 조공 관계가 아니라, 군대를 주둔시키고 아나톨리아 지방의 생산물과 도로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완전히 병합된 관계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크로이소스가 아나톨리아 지방을 정복했다는 헤로도토스의 기록은 리디아와 프리기아 사이의 관계를 서술한 고대 문헌과 고고학적 자료에 의해 틀렸다는 것이 입증됐다. 또한 헤로도토스의 기록 중에 산악 리디아 부족과 킬리키아 인들이 크로이소스로부터 독립했다는 기록 또한 틀린 것으로 입증이 됐다. 리디아 왕국은 산악 리디아 부족을 침략한 적이 없고, 킬리키아 인들은 리디아가 아나톨리아 지역을 정복하기 한참 전에 신바빌로니아 제국에게 이미 정복당해 있었다.[* 헤로도토스는 자신이 집필한 역사서를 통해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페르시아에게 침략을 받은 원인이 크로이소스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원래 페르시아는 그리스와 수천 키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방 왕국이었는데, 크로이소스가 능력에 비해 야심이 넘쳐서 무리하게 동방원정을 시도하다가 오히려 페르시아에게 병합되었고, 이 때문에 부유한 리디아를 흡수하고 강성해진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대대적으로 침공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크로이소스 아버지의 업적인 아나톨리아 정복을 크로이소스의 업적으로 둔갑시킨 것으로 보인다.][* 또한 크로이소스의 리디아 왕국이 이미 헤로도토스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멸망한 나라라는 점도 역사 왜곡에 기여를 했을 것이라고 보인다. 리디아의 역사는 공식적으로 기록된 것이 없었고, 구전동화 같이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형태로만 이어져왔다. 헤로도토스의 기록에는 크로이소스가 헤라클레스의 후손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서사시를 부르는 음유시인들에게서 크로이소스의 역사를 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공격적인 정복 활동으로 크로이소스의 리디아 왕국은 소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왕국이 되었다. 서쪽과 남쪽으로는 그리스 문화권의 대부분의 해안을 차지했고, 북쪽으로는 페르가몬 지방에서 흑해 남쪽 해안선 일대까지 차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