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크루프 (문단 편집) == 역사 == [[18세기]] 말, [[영국]]에서는 최초로 주강(鑄鋼) 기술이 발명되었으나 산업의 우위를 지키기 위해 제조법은 비밀에 부쳐졌다. 1810년, 프리드리히 크루프(Friedrich Krupp; 1787년 ~1826년)는 영국이 [[독점]]하고 있던 주강 기술을 밝히는 것에 뜻을 두었고, [[에센]]에서 강철 주물(鑄物) 공장을 세우면서 크루프 가문의 금속 관련 사업을 시작하였다. 아들인 알프레트 크루프(Alfred Krupp; 1812년 ~ 1887년)는 마침내 독자적으로 주강 제조기술을 개발하였고 강철 롤러, [[철도]]용 강철차륜의 주요 생산자로 떠올랐다.[* 크루프 사의 로고인 [[동그라미]] 3개가 겹쳐져 있는 모습은 바로 이 철도차륜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는 유동상(流動床, fluidized bed) 공법에 투자하였고, 독일과 [[프랑스]]에 있는 많은 광산들을 인수했다. 그 시대의 기업으로서는 드물게도, 크루프 사는 공장 노동자들에게 [[주택]], [[의료]], [[퇴직금]] 등의 사회적 보장을 제공하였다.[* 비슷한 시기 미국과 영국의 노동자들 처우가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소모품]] 취급으로 개막장이었던 걸 생각하면 정말 선구적이다. 산재를 입어도 퇴직금이나 치료비는커녕 위로금이라도 받으면 다행이었던 수준.] 이런 복지시스템을 돌린 이유가 좀 재밌는 편인데, 알프레트 크루프가 딱히 공산주의에 호의적이거나 직원들에게 자상했기에 그랬던 것은 아니고 '내 명령에 복종해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책임지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 그런 것이다. 알프레트 크루프는 직원들에게 충성서약을 요구했고 직원이 볼 일 보러 가는 것도 감독관에게 보고하게했으며 직원들은 정치에 관심가지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을 정도로 직원들을 철저히 통제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에게 복종하는 대가로 수많은 복지를 제공해준 것이다. 자본주의의 파도가 몰려오면서 귀족과 왕이 서서히 과거의 존재가 되어가는 시대에, 누구보다 귀족적인 사고를 지닌 알프레트 크루프가 누구보다 선진적인 사회 복지 시스템을 만들어서 굴렸다는게 참으로 아이러니한 결과물이다. 당대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던 크루프는 1840년대부터 일명 [[크루프 포]]로 불리우게 된 [[강철]]제 [[포신]] [[대포]]를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세계 최초였다. 그리고 이 제품을 [[1851 런던 엑스포|세계 최초의 만국박람회]]에 전시하여 대영제국에게 한 방 먹이기도 했다.[* 대영제국이 만국박람회를 연 것은 자신들의 총체적인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서였기 때문. 특히 당시 영국은 [[후미장전식]] [[암스트롱포]]를 생산하여 국력을 과시하고 있었는데, 암스트롱포는 후장식이라 연사속도가 빠르다는 혁신적인 장점이 있었다. 반면 이 포는 연철로 제조하였기 때문에 강선도 없었고 영점이 잘 맞지 않았다. 반면 크루프는 강철 포신을 절삭하는 방식으로 기존 연철 대포 대비 2배나 강성이 높은 대포를 만들어냈다. 물론 [[강선]]도 팔 수 있었던 건 덤.] [[서멧]]도 이 회사에서 1926년에 개발한 금속이다. 특히 [[러시아]], [[터키]], [[프로이센]], [[대청제국]]의 군대가 주요 고객이었다. 미국의 철강 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주요 생산품이있던 철도 관련 제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게 된 회사 상황, 그리고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이라는 2가지 요소는 크루프가 점점 더 무기 산업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1880년대 후반에 이르면, 병기 제조가 크루프 사의 전체 생산량 중 약 50%의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알프레드가 회사를 시작할 당시 크루프의 [[종업원]]은 5명이었다. 그가 사망할 즈음에서 20,000명이 크루프에서 일하고 있었다. 세계 최대의 공업 기업, [[독일 제국]] 최대의 개인기업이었다. 1903년에는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전시관을 세우고 대포를 전시한다. 또한 같은 해에 정식으로 기업[[법인]]을 설립하여 주식합명회사(Aktiengesellschaft; AG)가 되었다. [[20세기]] 전반에는 [[구스타프 크루프 폰 볼렌|구스타프 크루프 폰 볼렌 운트 할바흐]](Gustav Krupp von Bohlen und Halbach; 1870년 ~ 1950년)가 회사를 이끌었다. 그는 크루프의 상속자인 베르타 크루프(Bertha Krupp; 1886년 ~ 1957년)와 결혼하면서 부인 쪽의 성(姓)인 '크루프'도 썼다. 1933년,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뒤 크루프는 독일 재무장의 중심적 역할을 맡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주요 개발, 생산 무기로는 [[1호 전차]], [[88mm 대공포]], [[4호 전차]], [[티거 2]]의 포탑[* 편의를 위해 포르셰, 헨셸형이라고 부르지만 두 형태 모두 크루프에서 생산했다], [[구스타프 열차포]], [[7호 전차]]로 계획된 뢰베가 있다. 크루프 산하의 조선소에는 [[유보트]]도 131척 제조하였다. 1943년, 히틀러의 특별 지시에 따라 크루프는 개인 회사로 전환되었다. 구스타프와 베르타의 장남인 알프리트 크루프 폰 볼렌 운트 할바흐(Alfried Krupp von Bohlen und Halbach; 1907–67)가 소유주가 되었다. 정부에 발주받은 병기를 납품할 때, 1호 납품품의 값을 받지 않는 전통이 있었다. 이는 [[구스타프 열차포]]와 같은 고가의 병기도 예외가 아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