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킬링필드 (문단 편집) === [[크메르 루주]] 정권의 붕괴와 [[캄보디아]]의 내전 === 상술했듯 크메르 루주의 침략과 학살로 큰 피해를 입은 [[베트남]]은 [[1978년]] 12월 21일부터 [[민주 캄푸치아]]를 침공하기 위해 군대를 파병하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태국]]과 더불어 동남아시아의 최강자였으며 이에 더해 [[베트남 전쟁]]으로 단련된 베트남군은 [[풋사과]]에 불과한 크메르 루주를 손쉽게 박살내 버리고 [[1979년]] 1월 7일에는 수도 [[프놈펜]]에 입성했다. 결국 [[폴 포트]], [[이엥 사리]] 등의 [[크메르 루주]] 수뇌부는 태국 국경 근처까지 쫓겨났고 유폐에 가까운 상태에 있던 시아누크는 다시 베이징으로 피신했다. 1월 10일 베트남은 [[헹 삼린]]을 수장으로 하는 [[캄푸치아 인민공화국]]을 수립했고, [[크메르 루주]]의 킬링필드는 일단 베트남의 침공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헹 삼린]]의 [[캄푸치아 인민공화국]]은 베트남의 괴뢰 정권이라는 이유로 [[소련]] 및 [[폴란드 인민 공화국|폴란드]] 등 [[친소]] 국가들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국가들의 승인을 받지 못했고 [[1979년|79년]] 직후에는 킬링필드가 서방권에서 묻혔기 때문에 마침 미-중 수교 이후 밀월관계에 있던 중국과 미국의 [[어그로]]를 동시에 끌었다. 우선 중국은 버르장머리 없는 [[베트남]]에 대한 징벌행위로서 무력침공을 비밀리에 모의했고 대외적으로는 캄보디아 해방 등을 명분으로 [[1979년]] [[2월 17일]] [[중국 인민해방군]]이 국경을 넘어 [[중국-베트남 전쟁]]을 일으켰다. 그리고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치욕을 잊지 않고 '''베트남에 대항하기 위해 크메르 루주를 지원했다.''' 미국은 외교적으로 베트남을 '''"아시아의 [[프로이센]]"'''이라고 지칭하며 깡패 국가로 간주하고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면서 [[미국 중앙정보국|CIA]]를 동원해 '''[[마약]]을 팔아 가면서''' 크메르 루주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미국]]과 [[중국]]의 지원을 받아 [[크메르 루주]]는 [[타이]] 국경 근처의 그들의 본거지에서 게릴라전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1982년]] 크메르 루주는 (베트남이 만든)[[캄푸치아 인민공화국]]에 반대하는 2개의 비공산계열 크메르 단체들과 같이 연합전선을 형성해서 명목상 [[시아누크]]를 지도자로 옹립했다. 결국 [[베트남]]은 크메르 루주를 격파하고도 외교적으로 고립되는 동시에 미국과 중국의 지원을 받는 잔존 크메르 루주 게릴라 세력과 [[베트남 전쟁]]과도 같은 게릴라전을 벌이면서 휘말리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후술하겠지만 베트남은 외교적 정당성을 위해 크메르 루주의 대량 학살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내전은 장기화되었고 이 기간 동안의 사망자 역시 수십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또 내전 당시 크메르 루주는 공포심과 적을 몰아낼 용도로 각종 대인 [[지뢰]]를 캄보디아 전역에 마구 뿌렸는데 이 지뢰에 아무 죄 없는 민간인들까지 휘말리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문제는 크메르 루주가 지뢰에 대한 정확한 표시 하나 없이 마구잡이로 지뢰를 뿌렸고 지뢰를 찾는 기술이 발전하지 못한 캄보디아의 상황으로 인해 크메르 루주 실각 이후에도 캄보디아 내 지뢰로 인한 피해자나 사망자[* 캄보디아는 지금까지도 지뢰로 인한 피해자 보유국 세계 1위국이며 벌거벗은 세계사의 캄보디아 패널에 의하면 자신은 어릴때부터 지뢰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을 흔하게 볼수 있었다고 한다.]는 늘고 있어 아직까지도 캄보디아의 발전을 막는 골칫거리가 되었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캄보디아 정부는 지뢰 제거를 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