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킷캣 (문단 편집) == 역사 == [[파일:external/www.nestle.com/kitkat-history-big.jpg]] 한눈에 보는 킷캣의 역사. [[17세기]]가 끝나갈 무렵, Christopher Catling 이 소유하고 있는 [[런던]]의 한 파이 숍에서 문학과 정치에 관련된 얘기를 주고 받던 한 클럽이 있었다. 이 클럽(일종의 모임)의 이름은 파이 숍 주인의 이름을 딴 Kit-Cat. 이 클럽이 모일 때 주인이 대접해 주던 파이의 이름 역시 Kit-Cat이었다. 이 이름이 유명세를 타게되자 [[영국]]의 도시인 [[요크]]에서 초콜릿을 생산하던 회사인 라운트리(Rowntree)는 [[1911년]]에 Kit Cat 이라는 이름과 Kit Kat이라는 이름을 상표로 동시에 등록시킨다. 하지만 라운트리는 그 이후로 긴 시간 동안 이 두 상표를 사용하지 않는다. [[1920년대]]에 들어서야 라운트리는 Kit Cat이라는 이름으로 초콜릿을 생산. 하지만 이 당시 Kit Cat은 우리가 아는 현재 킷캣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킷캣이 오늘날의 모습을 띠기 시작했던 건 바로 1930년대부터다. [[1930년대]]에 들어서자 라운트리는 현재 생산하고 있는 초콜릿의 브랜드가 지나치게 많다고 판단했고, 가장 잘 팔리는 브랜드 두 개를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생산 중단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렇게 '''Kit Cat은 생산 중단 된다.''' --반전-- [[1935년]] [[8월 29일]], 라운트리는 “Rowntree’s Chocolate Crisp” 라는 이름으로 오늘날의 킷캣모양인 4핑거 초콜릿을 출시한다.[* 1 핑거 = 1 초콜릿 막대.] 이 제품이 출시된 비화가 매우 신기한데, 킷캣의 이 독특한 모습은 초콜릿 공장에서 일하던 한 직원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 직원은 공장에 있는 직원 제안 박스에 '직장인이 직장에 손쉽게 가져갈 수 있는 간식'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떻겠냐는 의견을 남겼고, 라운트리가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 심지어 라운트리는 직장인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을 맞추기 위해 그 당시 초콜릿보다 가격이 저렴했던 [[웨하스]] 과자를 초콜릿으로 감싸는 방식을 채택한다. 라운트리는 이 저렴한 초콜릿을 [[런던]]과 영국 동남쪽 지역에 판매하기 시작했고, '''말 그대로 대박을 터트린다.''' [[파일:external/www.collectingcandy.com/CC_UK-Rowntrees-Kit-Kat-Chocolate-Crisp-2d-chocolate-candy-wrapper-1937.jpg]] 1937년, 킷캣이라는 이름을 처음 달았을 때 킷캣표지. 2년 뒤인 [[1937년]], Rowntree’s Chocolate Crisp 라는 이름은 너무 무난하고 쉽게 잊혀지는 이름이라고 판단한 라운트리는 제품의 이름을 "Kit Kat Chocolate Crisp"로 바꾼다.[* BBC 라디오에서 알려진 바로는 그 당시 회사에서 근무하던 심리학자 Nigel Balchin이 지었다고 한다.] 닉 네임의 형식으로 추가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라운트리는 '''킷캣 광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Break’ 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홍보하기 시작한다.'''[* 킷캣의 광고를 보면 항상 ‘break’라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킷캣 초콜릿이 맛깔나게 부서지는 연출이 나온다. 2016년 네슬레가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킷캣 사업을 시작하면서 광고에 내건 문구는 ‘break’ 를 현지화한 ‘ㅋㅋ’.] 킷캣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할 정도로 팔려나간다. 그러나 [[1942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라운트리는 [[우유]]와 초콜릿을 비롯한 몇몇 재료에 부족현상이 발생하자 킷캣의 레시피를 전면 수정한다. 우유는 사용하지 않았고, 초콜릿도 [[다크 초콜릿]]을 사용. 라운트리는 그 와중에 이렇게 바뀐 레시피 때문에 소비자들이 등을 돌릴 것을 우려하여 제품의 이름을 Kit-Kat으로 변경하였으며, 포장지 역시 기존의 빨간색에서 파란색으로 바꾸었다. [[파일:external/c2.staticflickr.com/7560817466_d3fca5f574.jpg]] 광고 문구는 “기존의 초콜릿 크리스프는 전쟁이 끝나기 전까진 생산하지 않습니다.” 1949년 전쟁이 종료되자 킷캣의 레시피는 기존의 것으로 돌아갔으며, 포장지 역시 빨간색으로 되돌린다. 그리고 이름은 “Kit-Kat Chocolate Crisp”. [[파일:external/www.collectingcandy.com/CC_USA-Rowntree-KitKat-Kit-Kat-10-cent-candy-bar-wrapper-1950s-1960s.jpg]] 1950년대 킷캣표지. [[1950년대]]에 들어서서 라운트리는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아일랜드]], 그리고 [[남아프리카]]로 킷캣을 수출하기 시작한다. [[1955년]]부터 킷캣은 티비로 광고를 내보내기 시작, 1957년엔 ‘Have a break, have a Kit Kat’ 이라는 슬로건을 사용하기 시작하며 '''매출을 무려 25%나 상승시키는 성공을 거둔다.''' [[1960년대]]에 들어서는 기존의 4핑거 제품 뿐만 아니라 가정용 간식을 목표로 한 2핑거 멀티팩 제품을 출시한다. 작은 초콜릿이 여러개 들어있는 오늘날 자주 볼 수 있는 제품이다. 이는 영국의 뒤늦은 [[슈퍼마켓]] 붐에 힘입어 일반 소비자층에게 어필하는데 성공한다. [[파일:external/www.collectingcandy.com/CC_USA-Rowntree-Kit-Kat-UK-produced-for-USA-distribution-10-cent-1-1_4-oz-chocolate-candy-bar-wrapper-late-1960s-to-early-1970s.jpg]] 1970년대 킷캣표지. [[1970년대]]에는 독일의 함부르크에서도 제조를 시작하면서 시장을 유럽 전체, 미국, 그리고 일본으로까지 넓힌다. 미국에서는 [[허쉬(기업)|허쉬]]가 [[라이선스]]를 얻어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일본에선 후지야 라는 회사에서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8년]], 네슬레가 라운트리를 $4,500,000,000 (45억 달러) 에 산다. 이 돈을 [[2016년]] 기준으로 환산해 보면 $9258791979.61 즉 한국 돈으로 무려 '''10조 8050억원'''… 자세한 내용은 1988년 당시 기사를 참조. [[http://www.nytimes.com/1988/06/24/business/rowntree-accepts-bid-by-nestle.html|출처]] [[1989년]]엔 후지야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일본 킷캣을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2000년]]에 네슬레가 후지야의 지분마저 사들이고… 결국 미국을 제외한 모든 시장에서 유통을 담당한다. 네슬레는 시장을 말레이시아, 인도, 그리고 중국 외 다수의 나라까지도 확대했으며 2010년대에는 브라질과 대한민국까지 사업을 확장한다. [[파일:external/www.lightstraw.co.uk/fd_kitkat_foil4_300.jpg]] 현재 영국에서 사용되는 평범한 킷캣표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