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타키투스 (문단 편집) == 생애 == 알프스 산맥 남부의 나르보넨시스 [[속주]] 출신[* 능력 위주의 사회였던 로마에서도 이탈리아 출신이냐 아니면 속주 출신이냐에 따라 미묘한 온도차가 있었는데, 그의 출신지를 생각하면 상당히 출세한 셈이었다.]으로 부유한 환경[* 선조 때부터 로마 시민권을 획득했고 숙부, 혹은 조부는 벨기카 속주에서 황제 대리인을 역임했다(Plinius Historia naturalis, 7.76.).]에서 태어나 로마로 가서 공부한[* 확실한 기록은 없지만 타키투스의 저서인 《연설가들에 대한 대화》에서 당대 [[수사학]]의 1인자였던 퀀틸리아누스의 수사학 이론을 타키투스가 잘 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타키투스는 연설과 더불어 정치적인 성공을 갈망해 정계로 진출했다. 처음에는 당대의 젊은이들이 첫 번째 공직으로 꼽는 '10인 위원회'의 멤버로 들어갔으며 20살 무렵에는 천부장을 역임했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치세 때는 원로원 의원이자 유능한 장군인 [[그나이우스 율리우스 아그리콜라|아그리콜라]]의 딸[* 그의 장인이 바로 [[그나이우스 율리우스 아그리콜라|율리우스 아그리콜라]]로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절 [[브리타니아]]를 거의 평정할 뻔한 사람이었다. 평정에 실패한 이유도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브리타니아를 거의 평정하던 참에 동방 전선에 위기가 닥치자 하릴없이 휘하의 병력을 돌린 것이다. 만일 다른 지역의 전황이 안정적이었다면 스코틀랜드 지역도 로마화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사위 타키투스가 쓴 그의 전기는 칭찬 일색이다.]을 아내로 맞고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와 [[티투스]] 황제,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기에 걸쳐 재무관, 호민관, 법무관 등 정무관 코스를 역임하여 원로원 계급에 편입되었다. 특히 법무관 시절에는 로마의 종교의식을 담당하는 중요한 집단인 '15인 사제단'에 들어갔고, 로마를 나와 군단의 고문을 맡기도 했다.[* 당시 도미티아누스와 원로원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아서 숙청당했음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93년에 타키투스는 로마로 돌아왔다. 그러나 당시 그가 몸담고 있었던 원로원은 여러 의원들을 고발해 숙청하던 [[도미티아누스]]와 대립 중이었다. 그럼에도 타키투스는 다행히 황제를 필두로 한 감찰관들의 칼날을 피할 수 있었다. 그가 제정을 내심으로는 싫어하면서도 겉으로는 티내지 않은 데다가, 어느 정도 유연하게 제정을 인정하는 비교적 온건한 세력에 속했기 때문이었다. 96년, 도미티아누스가 황후와 근위대장 등에 의해 암살당하자 원로원은 도미티아누스를 기록말살형에 처한 뒤, 새 황제로 로마 원로원 의원 중 한 명인 [[네르바]]를 지명해 잇도록 했다. 네르바 때 타키투스는 집정관에 당선되었으며, 98년 네르바의 뒤를 이은 [[트라야누스]]의 치세 때도 평온하게 잘 지냈다. 그 뒤 15년간은 사료가 부족해서 알 수 없지만 노년기인 113년에는 아시아 총독으로 부임했다. 이후로는 사실상 정치적 경력을 끝냈다. 타키투스는 원로원 의원으로 재직하는 동안 여러 관직을 역임했는데, 다른 로마 엘리트들과 달리 군사적 업적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즉, 그는 단지 '''명에로운 경력'''이라고 불리는 엘리트 코스를 거쳤지만, 장인인 아그리콜라 및 네르바 황제 등의 추천으로 경력을 쌓았기 때문에 군사적, 행정적 명성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어렸을 적부터 쌓은 다양한 경험과 재능을 토대로 부단히 노력한 신참자답게 상당히 학식이 풍부했다. 이런 까닭에 타키투스는 자신의 시각에서 갖가지 책들을 저술했다. 그중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죽음부터 네로 황제의 죽음까지를 다룬 《연대기》와 그 뒤의 역사인 《역사》가 유명하다. 그 외에도 장인인 아그리콜라의 생애와 업적 등을 다룬 《율리우스 아그리콜라의 생애에 관하여》, 《[[게르만족의 기원과 위치|게르마니아]]》등을 저술했다. 이 책들은 고대 로마를 비롯해 고대 게르만 사회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취급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