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사자 (문단 편집) === [[동오]]의 명장 === [[유표]]의 조카인 [[유반]]이 계속 공격하자 [[손책]]이 유반을 막기 위해 202년에 해혼, 건창 및 주위의 여섯 현을 나누면서 태사자는 건창도위가 되었으며, 해혼이라는 지역을 중점적으로 지켜 태사자는 이 지역에서 유반을 상대해 다시는 침범하지 못하게 했다. 태사자가 손책을 따라 마보(麻保)의 도적을 토벌하러 갔을 때, 둔영 안의 어떤 도적이 망루 위에서 욕을 했는데 손으로 망루의 기둥을 잡고 있었다. 태사자가 활로 그를 쏘았는데 화살이 손을 관통하여 기둥에 박히니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그의 활솜씨를 칭찬했다. [[조조]]도 그의 명성을 듣고 '''[[당귀]]'''(當歸)[* 한자를 해석하면 고향인 북쪽으로 돌아와 자신에게 귀부할 것을 권유한 것이다. 아내가 남편에게 보내는 약재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이 당귀를 보낸 것은 [[강유]]의 어머니가 강유를 권유할 때도 있었다.]를 보냈다.[* 이 당귀가 '당시 중국에서는 귀하기로 소문난 [[고구려]]산'이라는 출처 불명의 정보가 인터넷에 퍼져 있으나 인터넷에서 이 항목의 엔하위키 시절 r1판의 내용보다 그 정보를 일찍 실은 글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당연히 [[https://kin.naver.com/qna/detail.naver?d1id=2&dirId=20203&docId=322659866&qb=6rOg6rWs66CkIOuLueq3gCDtg5zsgqzsnpA=&enc=utf8§ion=kin.ext&rank=1&search_sort=0&spq=0|역사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역사 왜곡]]'''이다.] 이에 대해 태사자는 [[공융]]과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완곡하게 거절하고 다음을 기약했는데 이후 공융이 망하고 난 뒤 [[유요]]의 휘하로 들어갔다가 최종적으로는 [[손책]]의 장수가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