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조(고려) (문단 편집) == 묘호 및 시호 == 공식 [[묘호]]는 '''태조(太祖)'''[* 넷째인 [[광종(고려)|광종]]이 올림.]이며 존경의 의미로 '[[성조]]'(聖祖), '[[열조]]'(烈祖)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조선에서도 건국 군주인 [[이성계]]를 '성조'라고 칭한 바 있다.] 이외에도 고종 재위 42년에 몽골을 막아달라고 신령들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태조 왕건을 '용조'(龍祖)라 칭했으며 공민왕 재위 20년에 성균관의 학도들이 송가를 바쳤는데 여기선 태조를 '황조'(皇祖)라 했다. [[시호]]는: * '''《고려사》 <태조 세가> -총서-''': * 응운원명광렬대정예덕장효위목신성대왕(應運元明光烈大定睿德章孝威穆神聖大王) : <태조 세가> -총서-는 시호를 추가로 올린 것이 누구인지는 안 나와 있다. * '''《고려사》 <태조 세가> 마지막 조''': * 용열인용장효대정광열원명신성대왕(勇烈仁勇章孝大定光烈元明神聖大王) : 《고려사》 <태조 세가> 마지막 조엔 [[태자]](정윤) [[혜종(고려)|혜종]]이 '신성'(神聖)을, 증손자 [[목종(고려)|목종]]이 '원명'(元明)을, 손자 [[현종(고려)|현종]]이 '광렬'(光烈), '대정'(大定)을, 증손자 [[문종(고려)|문종]]이 '장효'(章孝)를, 6대손 [[인종(고려)|인종]]이 '인용'(仁勇)을, 8대손 [[고종(고려)|고종]]이 '용렬'(勇烈)을 올렸다고 한다. 보다시피 《고려사》 <태조 세가> -총서-와 마지막 조에 차이가 있다. 고려 역대 군주들은 시호의 기록이 <세가> -총서-와 <세가> 마지막 조가 조금씩 다르다. 단 시호에서 가장 중요한 건 후계자가 처음 올릴 때 쓴 두 글자라서 나중에 추가된 뒤 글자들이 조금씩 달라도 큰 영향은 없다. 그래서 묘호와 시호를 같이 부를 땐 '''태조 신성대왕'''(太祖 神聖大王), 줄여서 '''태조 신성왕'''(太祖 神聖王)이라 부른다. 《고려사》가 인용한 《편년통록》은 승려 도선이 태어나기 전 태조를 '성자'(聖子)라고 부르고 '미래통합삼한지주 대원군자(未來統合三韓之主 大原君子) [[족하]](足下)'라 칭했다. 태조는 [[천자]]를 자처하여 연호를 '천수'(天授: '하늘에게서 천명을 받다'란 뜻.)라 했으며 고려시대 저서인 《보한집》 <권상>에는 경순왕이 태조 왕건을 '천자'(天子)로 표현하고 있다. 태조의 자는 '약천'(若天)으로 '하늘과 같다.'란 뜻이며 그가 [[태자]](정윤) [[왕무]]에게 지어준 자도 '승건'(承乾), 즉 '하늘을 잇다.'란 뜻이다. 태조가 지은 [[만월대]]의 정전 이름도 '하늘의 덕'이란 뜻의 '천덕전'(天德殿)이다. 발굴된 태조의 청동상도 천자가 쓰는 금색 통천관(通天冠)을 쓰고 있다.[* 도금된 흔적이 있다.] 태조가 [[일리천 전투]]에서 조직한 부대 이름 또한 지천군(支天軍), 천무군(天武軍), 우천군(佑天軍), 간천군(杆天軍), 보천군(補天軍)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