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태종(조선) (문단 편집) == 묘호와 시호 == >"고애자(孤哀子) [[충녕대군|사왕(嗣王) 신(臣)]] 【휘(諱).】[* 세종이 승하한 부왕(태종)에게 올리는 글이므로, 여기에 들어갈 휘는 [[세종(조선)|세종]]의 본명인 '이도(李祹)'가 된다. 그러므로 비록 [[조선왕조실록]] 사이트에는 뒤에 오는 조사가 '은'으로 쓰여 있지만, '이도'를 적용하면 뒤에 오는 조사는 '는'이 맞는다.]는 삼가 재배(再拜) 돈수(頓首)하고 상언(上言)합니다. 삼가 큰 덕(德)과 높은 공(功)은 전고(前古)에 뛰어나니 큰 이름을 시책(謚冊)에 나타내어 후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 마땅합니다. > >삼가 떳떳한 전장(典章)에 따라 휘호(徽號)를 올립니다. 공손(恭遜)히 생각하건대, 황고(皇考) [[태조(조선)|성덕 신공 태상왕(聖德神功太上王)]]께서는 총명(聰明)하고 신성(神聖)하며 용감하고 지혜로우며 너그럽고 어질어서 [[고려]]의 국운(國運)이 이미 다한 때를 당하여 천심(天心)의 돌아가는 바를 알고 [[태조(조선)|태조]](太祖)를 도와서 [[조선왕조|만세의 터전]]을 비로소 개척(開拓)하였습니다. > >[[명나라|중국]]에 들어가 [[주원장|고황제]](高皇帝) 를 뵈올 때 세 번이나 접견(接見)하는 총영(寵榮)을 받았습니다. 일이 기미(幾微)[* 낌새]가 아직 나타나지 않을 적에 환하게 알아서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을 길이 평안(平安)하게 하였습니다. 천부(天賦)의 사랑이 오직 어버이에게 깊어 승안(承顔)[* 즐거운 얼굴로 부모를 뵘.]의 효(孝)에 지극히 독실(篤實)하였고,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우애(優愛)하여 이에 양덕(讓德) 의 빛을 내려 주었습니다. > >무위(武威)는 바람과 우레보다 엄숙(嚴肅)하고 문치(文治)는 해와 달보다 밝았습니다. 교린(交隣)하는 데 도(道)가 있고 사대(事大)하는 데 정성(精誠)으로 하니, 덕화(德化)가 먼 데나 가까운 데나 흡족하여 은혜가 동물이나 식물에까지 미쳤습니다. 외람되게 [[조선/왕사|큰 왕통]](大王統)을 이어받은 것을 생각하여 나이가 오래되시도록 영화롭게 봉양(奉量)하리라 기약하였더니, 어찌 갑자기 [[죽음|승하]](昇遐)하여 이에 말명(末命)[* 마지막 [[유언]].]을 남기십니까? > >울부짖고 통곡하는 마음을 견디기가 어려워 이에 현양(顯揚, 이름과 지위를 세상 높이 드높이는 일)의 의식을 거행합니다. 삼가 옥책(玉冊)을 받들어 존시(尊謚)를 ‘성덕 신공 문무 광효 대왕(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이라 올리고, [[묘호]](廟號)를 ‘태종(太宗)’이라 하옵니다. > >엎드려 바라건대, 밝으신 령(靈)이 충감(沖鑑)을 굽어 내리어, 길이 다복(多福)을 주시어 [[조선/왕사|자손]](子孫)을 무궁한 앞날에 보호하시고, 국가의 계책(計策)을 그윽이 도와주어 하늘과 땅과 더불어 구원(久遠)하게 하소서. 삼가 말씀드리옵니다." >---- >- '''《[[태종실록]]》 36권, 태종 18년([[1418년]], 명 영락(永樂) 16년) 11월 8일 (갑인) 4번째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kca_11811008_004|#]].] ---- >我馬帶矢 于廐猝來 願陪聖宗 九泉同歸 >말이 화살을 맞아 마구에 들어오거늘, '''성종'''[* 聖宗, 이방원을 지칭함]을 모셔 구천에 가려 하시니. >---- >- 《[[용비어천가]]》 10권, 제109장 中.[*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8134&cid=50293&categoryId=50293|#]].] * [[묘호]] : '''[[태종]](太宗)''' * [[시호]] : '''성덕신공문무광효대왕(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 '''[[태종]]'''(太宗)이란 [[묘호]] 자체가 [[조선]]을 [[건국]]한 [[태조(조선)|태조]]의 공에 버금갈 [[조선/왕사|임금]]에게 바치는 최고 영예의 [[묘호]]이다. 사후에 업적을 인정받아 [[묘호]]가 [[태종]]으로 정해졌고 신하들의 절대적 찬사를 받는 영광을 누렸다.[* 또한, [[종묘]]에 '''불천위(不遷位)'''(옮겨지지 않는 위패. 세실은 [[종묘]]에 대대로 모셔도 5대의 대수에 포함되지 않는 큰 공덕을 쌓고 평가받은 왕에 한하여 종묘 정전(宗廟 正殿)에 계속 모시는 것을 말한다)로 지정, 존재되어 [[종묘]]에서 신주를 별전인 영녕전(英寧殿)으로 내보내더라도 세실로 정함으로써 아버지 [[태조(조선)|태조]]와 함께 영원히 종묘 정전에 모시는 정말 크나큰 혜택을 누리게 된다.] 또한 [[용비어천가]]에서는 [[태종]]을 달리 불러 '''[[성종]](聖宗)'''[* [[조선]] 제9대 왕인 [[성종(조선)|성종]](成宗)의 [[묘호]]와는 음만 같을 뿐, 한자 뜻이 아예 결이 다르다.]이라 칭하였다. 일종의 '별호'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아버지인 [[태조(조선)|태조 이성계]]의 별호는 '[[성조]](聖祖)'였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