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테러 (문단 편집) ==== '테러리스트'라는 표현에 대한 오해 ==== >나는 북간도에서부터 동경하던 바와는 달리 민족 진영에 대한 실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조국 광복이라는 대전제 밑에 모여든 인사들인 만큼 항일 의식은 욱일승천의 세를 이루고 있었으나 행동은 제각기였고 이율배반적인 모순들을 안고 있었다. > 이 점에 대해서는 내가 경애하던 김좌진 장군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사람을 선택하는 면에 있어서 부족한 점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모름지기 적을 없애는 데는 용기와 예지, 기술 모두 필요하지만 특별히 없어서는 안될 것이 참된 휴머니즘이다. 참된 테러리스트는 최고의 휴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 > 이백호라는, 총을 잘 쏘는 자가 있었다. 그는 어떤 인연에서인지는 몰라도 신민부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지방 출장까지 가게 되었다. 그런데 동빈 지방에 가서 거류 동포들이 말을 잘 안 듣는다고 총을 난사하여 여러 사람을 사살한 일이 있었다. 이 때문에 최고 책임자인 김좌진 장군에게 갖은 악평이 퍼부어졌고 크게는 신민부 해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 > 나중에는 김좌진 장군의 족제 되는 시야 김종진과 이준근 및 김야운 등도 이백호 무리에게 학살을 당해 민족적 손실을 보게 되었다. 그 밖에 이백호는 경박호에 살던 김만산이라는 중국 통역도 살해해 그가 입었던 옷까지 입고 다니는 행패를 부렸는데 결국 누군가의 손에 의해서 타살되었다.[* 이강훈, 『민족해방운동과 나』, 서울:제삼기획, 1994, 97~98쪽] [[김좌진/비판/지역주민에 대한 폭력]]문서에서 인용된 글인데, 해당 증언을 한 사람은 [[이강훈(독립운동가)|이강훈]]이란 독립운동가이다. 글을 보면 나와있지만 "참된 테러리스트는 최고의 휴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테러리스트"란 단어 자체를 현대인들은 '의사, 지사, 투사'란 다른 단어로 쓸법한, 긍정적인 단어로 쓰고 있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테러리스트'가 단어 자체로 지금처럼 악마화된 개념이 아니었고, 독립운동가들 스스로 당당하게 '테러리스트'를 자처했다는걸 방증한다. 테러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현대 국제기구의 대부분의 정의에서는 '''정치적 목적이 있을 것, 의도성이 있을 것, 민간인을 표적으로 할 것, 국가 혹은 대중의 행동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할 것, 폭력이 사용되었을 것'''을 요건으로 한다. 하지만 이는 정치적 올바름 운동의 영향을 받은 일부 서방 국가에서만 현대에 제칭한 것으로 대한민국에서는 이러한 정의가 항상 부합하는 것은 아닌데, 대표적인 예시로는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 등이 있다. 무장독립운동가의 활동은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등의 경우를 보더라도 목표는 정부의 요인, 일본 황실의 인물 등을 대상으로 하였지만 단지 해당 정부 요인을 죽이는 것으로 전쟁을 이기겠다는 목표로 하지 않았고, 좀 더 넓은 스케일에서 일본 제국의 행동과 일본 사람들과 국제적의 인식에 영향을 줄 목적을 가졌고 이는 성공하기에 이른다. 이외에도 [[김상옥]]의 종로경찰서 폭탄투척 사건와 같은 의거들도 현대적 의미의 테러에 부합하다. 테러는 [[전쟁]]와 같이 무고한 사람을 해할 수 있다는 부정적인 면이 존재한다. 그리하여 무장독립운동가는 묻지마 테러를 일으키는 [[테러리스트]]라는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 이런 오해들에서 벗어나서 테러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이유를 생각하며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어떠한 노력을 하였는지를 생각하는 태도가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