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통도사/중로전 (문단 편집) =====# 앞면 #===== >사바교주(娑婆敎主) 석가여래(釋迦如來) 영골사리부도비(靈骨舍利浮圖碑)와 서(序) >선교랑(宣敎郎) 수사간원정언(守司諫院正言) 지제교(知製敎) 채팽윤(蔡彭胤) 지음 >가의대부(嘉義大夫) 행승정원도승지(行承政院都承旨) 겸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 춘추관수찬관(春秋館修撰官) 예문관직제학(藝文館直提學) 상서원정(尙瑞院正) 이진휴(李震休) 씀 >가선대부(嘉善大夫)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 권규(權珪) 전액을 씀 > >불교가 천하에 행해진 지 오래되었다. 항상 나타난다고 하기도 하고 또 항상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기도 하는데, 더욱 신령한 것은 항상 나타나면서 항상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영남의 양주(梁州, 경상남도 양산시) 통도사(通度寺) 에 예부터 금강계단(金剛戒壇)이 있어 석가세존(釋迦世尊)의 영골사리(靈骨舍利) 부도(浮圖)를 봉안해 왔다. 우리 임금 30년 갑신년(숙종 30, 1704년)에 성능(性能) 대사가 대중에게 의논하기를 “부처님은 계신데 부처님 보물은 없습니다. 돌아보니 지금 석종이 갈라지고 석단에 틈이 생겨 드러난 새김이 없으니 이는 존숭하는 바가 아닙니다. 어느날 저의 벗인 진희(眞凞)대사 운(雲)이 전각을 먼저 지어 나를 이끌었습니다.” 하였다. 모두 말하기를 ”대사께서는 우리 스승의 문하에서 공덕이 많으십니다. 일찍이 대화엄경을 판각하셨고 또 방장산(方丈山, 지리산)의 장륙전(丈六殿, 구례 화엄사의 각황전)을 중수하셨습니다. 오늘의 일도 오직 대사께서 하실 일입니다.“ 하였다. 이에 새벽부터 밤중까지 일을 도모하여 갈라진 것을 바꾸고 이지러진 것을 고쳤다. >또 비를 세우는 일을 내게 부탁하기에 아주 완강하게 사양하였더니 말하기를, ”세존을 사라쌍수에서 다비하고 사리 여덟 섬 너 말을 얻었는데 그때 군대를 일으켜 이를 다툰 것이 팔만 사천 나라였습니다. 지금 해동에 자리하여 세존 이후 삼천년이 되며 인도로부터 이천 유순(由旬, 왕이 하루 행군하는 거리. 30리 혹은 40리라 함)이나 떨어져 있는데 군대를 일으킨 노고도 없이 그 영골과 함께 머물게 하니 혹은 이른바 바다 가운데 한번 머문다고 한 것이 이것입니다. 일찍이 들으니 사부대중(四部大衆, 남녀 승려인 비구 비구니와 남녀 신도인 우바새 우바이, 곧 불교를 이루는 모든 사람들)이 첨례(瞻禮)하는 이가 이르면 그때마다 기이한 향기로 응하니 그 변화를 보임이 혹은 보이고 혹은 숨고, 혹은 크고 혹은 작으며, 혹은 금이 되고 혹은 옥이 되고 혹은 금과 옥이 섞이고, 흩어지면 모래가 되고 쌓이면 알갱이가 되어 전체로는 넷인데 나뉘면 천이 되고 백이 된다고 합니다. 응달지고 갬이 서로 바뀌고 천둥과 비바람이 갑자기 이르며 방광을 하면 구불구불하여 오색 빛깔이 일정하지 않은데 천지가 밝아지고 산과 골짜기가 서로 흔들려 지혜가 불꽃처럼 타올라 떨쳐 날아 분분하고 어지럽고 무지개 깃발이 윤기를 겨루고 앞뒤로 왕래합니다.“ 하였다. 대개 생하지도 멸하지도 않는 것이 있어 이미 그 단초가 시작되었으니 왼손에는 든 것은 통도사의 고적이요 오른손에는 든 것은 청허(淸虛)대사 휴정(休靜, 1520~1604년. 조선 후기 불교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고승) 의 글이었다. >살펴 보고 말하기를, ”당나라 정관(貞觀) 10년(신라 선덕왕 5, 636년)에 신라 율사(律師) 자장(慈藏)이 중국에 불법을 구하러 가서 오대산(五臺山) 북대(北臺)에서 문수보살상(文殊菩薩像)을 친견하고 한번 좌정하여 10일 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자장이 꿈에 게송을 받았는데 다음날 아침에 화신(化身)이 와서 부처의 머리뼈와 손가락 마디 사리를 주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세존(世尊)의 믿음의 표시인데 지금 그대에게 전한다. 신라의 남쪽에 취서산(鷲栖山)이 있는데 그 아래에 신령한 못이 있어 독룡(毒龍)이 살고 있다. 그대는 돌아가서 단을 만들어 이것들을 봉안하라’ 하니 이것이 통도사(通度寺)이다. 고려 충선왕(忠宣王) 15년(고려 충숙왕 15, 1328년)에 지공(指空)대사가 바다를 건너 와서 단에 올라 법을 설하나 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귀신이 설하는 것을 듣는 듯하였다. 명나라 홍무(洪武) 10년 정사년(고려 우왕 3, 1377년)에 왜구가 양주에 침입하여 사리를 가져가려 하였는데 월송(月松)대사가 구덩이를 파고 찾아내 가지고 도망쳤다. (왜군의) 추격이 급해지자 하늘이 검게 되고 비가 내려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하였다. 이 이야기들은 목은(牧隱) 이색(李穡) 선생의 기록 중에 실려 있다. 다시 만력(萬曆) 20년 우리 선조(宣祖) 임진년(1592년)에 왜적이 대거 침입하여 영남 지방은 먼저 군대의 침공을 받아 죽이고 불태움을 당하게 되었는데 계단(戒壇)도 이를 면할 수 없었다. 마침 사명(四溟)대사 유정(惟政, 1544~1619년) 이 의승장(義僧將)으로서 힘을 다해 사리를 완전하게 하고 뒤에 다시 손상될까 염려하여 크고 작은 두 개의 함에 잘 싸서 금강산에 있던 휴정(休靜)대사에게 보냈다. 휴정이 생각하여 말하기를 ‘어찌 남녁만 왜적에게 당하였겠느냐. 이 산은 동쪽으로 바다와 나란히 있어 만전(萬全)을 기할 곳이 못된다. 저 취서산의 좋은 자리는 문수보살의 명을 받은 자리이다. 불행하게도 계율을 지키지 않는 이들은 그 뜻을 겉으로만 본다. 얻고자 하는 것은 금주(金珠)이지 신보(信寶)가 아니다. 예전처럼 계단에 봉안하고 중수하도록 하라.’ 하며 마침내 한 함을 유정에게 돌려보내니 유정은 ‘태백산(太白山) 갈반사(葛蟠寺, 정암사를 말함)는 신령함이 밝게 드러난 곳이니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하고는 두 문인에게 명하여 한 함을 받들어 서쪽으로 가게 하고 글을 지어 이 사실을 새겼다. 이로 인해 서쪽과 남쪽의 두 개의 사리탑이 있게 되었다. >내가 생각해보니 신라와 고려 때에 절과 탑을 많이 세워 이제 그만 두었으면 하고 한탄하였다. 일천년의 국조(國祚)와 삼국통일의 위업에 이르러 이를 부처의 도움으로 돌리는데, 전해 오는 신령한 성령과 위엄있는 신성한 일은 저절로 빛난다. 위아래로 천 백년 동안에 퇴락하고 부흥하며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이는 오직 한(漢)나라의 금인(金人)이 한 것이 아니라 노(魯)나라의 보옥(寶玉)이 한 것이니 그 무리가 크게 한 것에 다름이 없다. 크게 한 것은 이렇게 존재하도록 한 것이고, 존재하도록 함이 없다는 것은 존재하게 한 것인가 아니면 존재하지 않게 한 것인가. >마침내 이렇게 썼다. “주(周)나라 소왕(昭王) 24년(서기전 1027년)에 부처가 도솔천(兜率天)에서 내려와 정반왕궁(淨飯王宮)에서 탄생하여 출가한지 49년만인 목왕(穆王) 53년(서기전 949년)에 열반에 들었다. 계단은 세로가 백무(百畝, 1무는 100보이니 100무는 10000보)이고 가로도 같다. 다섯 단으로 나누어 하나로 하였다. 높은 것은 2층 전각인데 5칸이고 구리와 철로 만든 기와를 얹었다. 절에는 또 세존의 비라금점가사(毘羅金點袈裟)와 보리수(菩提樹) 잎으로 만든 염주와 경전이 있는데 이 또한 문수보살이 자장에게 준 것이라고 한다.” 명에 이른다. > >부처가 말한 바 있으니 우담바라꽃이라 >삼천년만에 한번 피어 우리 부처가 세상에 나심과 같네 >그 수가 이와 같으니 앞도 없고 뒤도 없어 >낳음과 낳지 않음은 멀고먼 예전부터 이어졌네 >한량 없는 몸은 멸하나 멸함이 없네 >세 법계를 거쳐 상주하는 신은 >그 신은 무엇인가 향기만 자욱하네 >빛나는 광채는 황홀하게 이어져 굽이치고 >있는지 없는지 응달도 싣고 햇볕도 싣네 >양주의 북쪽에 취서산이 있어 >못에 용이 살아 계단을 쌓아 높였네 >그 위의 사리탑은 자장율사의 힘이네 >자장의 힘이 아니라 문수보살의 명이네 >신령한 거북이 먹으니 문수보살이 아득하네 >그 믿음의 도구를 받아 저 가섭에게 전해 >신묘하게 들어맞기를 가만히 구해 이에 그 사람을 얻었네 >만세토록 아침 저녁으로 동방으로 돌아가라 말했네 >서쪽에서 흰 바다를 건너니 그 누가 막으리 >용은 간직해온 보배를 바쳐 이에 와서 법을 지키네 >하루에 세 차례나 내탕금이 내려오고 >세도가들 실어 날라 멀리서 분주히 오가네 >서쪽에서 와서 참배하나 남쪽 왜구를 막질 못했네 >밝도다 그 신령함이여 오직 청허와 사명이로다 >뜻을 합쳐 공을 나란히 해 대를 이어 법을 잇고 >동운 대사의 뒤에는 성능 대사가 이를 도와 >그 계승을 키우지 않으니 아름답도다 우리 성능 대사여 >마음의 검은 자취를 좇아 뛰어난 선문을 모아 >이에 계단을 증축하고 범종을 새로 조성했네 >크고 큰 말씀이여 대사께서 대중에게 이르셨네 >너의 거울과 너의 마음은 부정함이 있지 않다 >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라 고요히 없어지는 것이다 >가서 느낌이 울림 같아 저 큰 구름에 의지하여 >옛도 아니고 지금도 아닌데 삼천대천세계를 뒤덮었네 >대사가 일어나 합장하여 우리 나라를 진호하셨네 >성인의 나라 만년토록 이어지기를! > - 해석자 정병삼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