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라야누스 (문단 편집) === 전통적 평가: 이상적인 황제 === '''Optimus Princeps'''라는 칭호가 '''지고의 황제'''라고 번역되었는데 'Optimus'라는 단어는 '완벽한'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트라야누스를 이미 동시대의 사람들은 완벽한 황제라고 여겼다. 이는 고대 사가들의 모든 기록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인데, 트라야누스에 관한 로마인들의 찬사는 황제나 한 인간으로 모두 존경받았다. 따라서 로마 제국이 3세기 이후 쇠락기를 거치는 과정에서도, 후기 로마제국 시대의 로마인들에게 트라야누스는 [[아우구스투스]]와 함께 원수정 시대의 수많은 임페라토르 중 '''유이하게 제국의 질서를 유지한 명군'''으로 찬사받았다. 당대 로마인이자 원로원 의원 소 플리니우스, 후대 사가로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와 세베루스 왕조 시대에 살았던 원로원 의원이자 사가 [[디오 카시우스]]에게 황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최고의 찬가를 받은 거의 유일무이한 로마황제였다. 소 플리니우스는 트라야누스를 "현명하고 공정한 황제이자 도덕적인 인간"이라고 칭송했고, 디오 카시우스는 그가 "항상 고귀하고 공정했다"고 말했다. 3세기 [[군인황제시대]]의 로마황제 [[데키우스]]는 원로원에게 트라야누스라는 이름을 받은 뒤, 아예 자신과 아들들의 새로운 성씨로 트라야누스를 삼을 정도로 그를 위대한 황제로 여겼으며, 3세기 이후에는 로마 황제가 새로 즉위하면 즉위식에 참석한 군중들이 Felicior Augusto, Melior Traiano! ([[아우구스투스]]보다 운이 좋고 트라야누스보다 나은 통치를 빕니다!)라고 외치며 황제를 축복하는 관습이 생겼다. 아울러 기독교도들에게도 그는 여느 황제들과 달리 가장 이상적이고 선한 이교도로 기록될 정도로 그 평이 훌륭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신곡》의 시인 [[단테]]의 작품에도 트라야누스가 [[림보]]도 [[연옥]]도 아니고 '''천국'''에 있는 것으로 등장한다. 트라야누스 때 로마의 경제는 풍요로웠고, 군사적으로도 적대국을 모두 격파한 데다 성격까지 모나지 않아 원로원과의 사이도 좋았다.[* 트라야누스는 황제가 되어 로마에 입성했을 때 성문에서 하마해 원로원 의원과 함께 걸어갔다. 또한 지고의 황제라는 칭호도 일찌감치 받았으나 그는 이 칭호를 받는 것을 거부하고 파르티아를 격파하고 나서야 받기로 했으니 이러한 태도들은 원로원 의원들이 트라야누스에게 호감을 갖도록 했다.] 또한 생활에서 구설수에 오른 적도 없으니 당대 사람들이 보기에는 정말로 완벽한 황제라 불릴 만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