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라야누스 (문단 편집) == 출신 관련 오해와 진실 == 트라야누스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는 평범한 속주민이 황제 자리에까지 올랐다는 것인데, 이전의 내용에도 모계가 속주민 출신이라 되어 있을 뿐 트라야누스가 정확히 어떤 혈통의 가정환경과 가계를 가졌는지 명확히 설명되어 있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트라야누스는 로마 역사상 최초의 속주 출신 황제가 맞다. 다만, 3세기 군인황제들과 비슷한 속주민도 아니었고, 평범한 신분도 아닌 좋은 가문 출신의 로마황제였다. 트라야누스 가문은 베스파시아누스로부터 귀족 칭호를 부여받았던 가문이었다. 결론적으로 트라야누스의 출신 성분이 일개 평민이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공화정 시대의 그 귀족과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지만... 일종의 "신흥귀족으로 받아들였다"라는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사실 제정으로 이행된 뒤 공화정 시대부터 이어져 온 오래된 귀족 가문은 계속 줄어들어서 이 당시에 이미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흥미롭게도 로마는 '귀족' 신분도 능력에 의해 얻을 수 있는 사회였다. 베스파시아누스 시대에 귀족 칭호를 부여받은 가문들 중에는 트라야누스가 속한 '''울피우스 씨족''' 이외에 '''갈리아전쟁 때 카이사르에게 율리우스라는 씨족 이름을 부여받은 갈리아의 부족장 가문'''도 상당수였다고 한다. 대표적 인물이 바로 '''율리우스 아그리콜라'''였다.] 후술하지만, 트라야누스가 태어나고 자란 이탈리'''카'''는 BC 2세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건설한 식민도시였고, 이 도시는 히스파니아 최초의 로마인 식민도시였다. 당연한 말인데, 트라야누스 가족은 이탈리카가 건설되기 전부터 이탈리아 태생의 로마 시민권자였고, 대대로 로마시민권을 보유한 일반적인 속주 출신들이 아니었다. 모계 역시 마찬가지인데, 외가 역시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로마시민권자로, 트라야누스의 어머니도 낮은 계급은 아니었고 이탈리아와 속주 내 로마시민권을 가진 평민 중에 명문가 출신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트라야누스의 이모 마르키아 푸르니라는 [[티투스]] 황제의 두 번째 아내였고 트라야누스의 외사촌 푸블리우스 아일리우스 하드리아누스 아페르[*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아버지] 역시 원로원 의원이었다. 다시 말하면, 고향과 가문의 근거지가 속주일 뿐인 전형적인 1~2세기의 로마 상류층이었다. 그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트라야누스의 아버지와 친가가 [[네 황제의 해]]에서 [[베스파시아누스]]의 플라비우스 왕조 시대부터 원로원 의석을 얻고 귀족 가문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반만 맞는 이야긴데, 트라야누스의 집안은 트라야누스 아버지 생전에 [[클라우디우스 1세]]때 원로원 의원을 배출했고, [[유대-로마 전쟁|1차 유대 전쟁]]에서는 군단장으로 재임해 있었던 상태였다. 따라서 트라야누스는 태어날 당시부터, 그 출신이 이전의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 [[비텔리우스]]와 마찬가지로 로마의 상층부에 들어가 있었던 셈이다.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인 평민으로 제위에 올랐다는 말은 어떻게 보면 사실이긴 하지만 로마에서는 '평민(Plebs)'도 상당히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여유가 있을 수 있는 계층이었다. 애초에 로마의 황제는 특권을 가진 시민이었으며, 그 특권을 전 황제에게 정당하게 상속받고, 원로원에서 크게 태클 걸지 않는 이상, 이론상 모든 로마 시민은 황제가 될 수 있었다. 다만 이전까지의 황제는 로마의 명문 귀족, 적어도 최소한 이탈리아 출신들이 독점해 왔다는 점에서, 트라야누스의 즉위는 그 의미가 달랐고 상당한 파격이었다. 속주 출신인 로마인은 출세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트라야누스가 황제 자리에 오른 것은 '''로마 시민권 소유자들은 출신지역과 상관없이 권리를 향유한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의의가 있다.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시절 활약한 뛰어난 인물들은 대부분 속주 출신 로마 시민권자들이었다. 속주 출신에 대한 차별이 사라지면서 이들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이 커졌고, 로마 제국의 전성기는 이들의 것이었다. 속주 출신의 평범한 시민이 입신양명해 황제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는 '성공 신화'는 이후에도 계속된다. 물론 모든 제도엔 명암이 있기에, [[군인 황제 시대]]에는 과거라면 황제 자리는 아예 꿈도 못 꿨을 속주 출신 장병들이 너도나도 황제를 노리게 되지만, 그건 이 항목에서 다룰 문제는 아니니 생략한다.[* 로마 시민권 소유자가 적당히 늘어났던 제정 중기에는 제국 전체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능력에 의해 출세해 황제 자리에까지 올랐다. 차별받는 계층의 인력 낭비를 생각하면 로마는 인재를 가장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활용할 수 있는 구조를 이루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