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라야누스 (문단 편집) ==== 원로원과의 관계 ==== 99년 늦여름, 로마로 귀환한 트라야누스는 원로원에게 신임 황제로 승인받았다. 이에 대해 [[소 플리니우스]]는 <찬사>라는 작품을 통해, 집정관에 취임한 저자 본인이 트라야누스에 대한 감사 결의를 발의한 일을 기록하면서, 자신과 원로원이 트라야누스의 겸손하고 절제된 인품을 찬사했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원로원 안에서 암송된 것을 대략 계산하면 약 6시간 정도가 된다고 한다(.....). 따라서 플리니우스의 기록, 주장과 달리, 칭찬이 너무 지나친 나머지 황제 본인이나 로마인들까지 "끝도 없는 최고의 찬사로 신물이 날 지경"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길었던 찬사 일색이었다고 평가받는다. 어쨌든, 원로원은 공허한 절차를 일일이 지키면서도 간결하고 단호함으로 문제를 해결한 트라야누스에게 진심을 담아 찬양했는데, 황제는 좋거나 싫다는 내색도 안 했다. 많은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트라야누스는 자신에게 귀찮을 정도로 온갖 행정문제를 묻고 자문까지 요구한 플리니우스에게 꼼꼼하면서도 간략하게 모두 답변을 해줬다. 그는 원로원과 사이가 좋았지만, 재위 기간 내내 꽤 위엄과 절제 있는 강력한 황제로서 원로원을 다뤘다. 그 예로 그는 [[도미티아누스]]처럼 지나치게 전제적인 태도로 행동하지 않았음에도, 꽤 권위를 추구했으며 원로원은 이런 그를 경건하면서 엄격하게 느꼈다. 그렇지만 트라야누스는 이전 황제들처럼 실권은 황제가 행사하고 공허한 예의범절이나 규칙은 철저히 지켰다고 한다. 또 트라야누스는 자신이 집정관 등 선출직 관직과 고위관료 등을 선정하면서도, 원로원을 대할 땐 자진해서 법을 지키겠다는 오래된 관행적 맹세를 했다. 이런 황제의 태도는 지루하고 형식적인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었는데, 과거 티베리우스, 갈바 등과 달리 그런 느낌은 없었다. 왜냐하면, 트라야누스는 집정관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조차 예의를 갖춰, 황제 본인이 집정관 자리에 오른 이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늘 원로원의 한 일원인 것으로 행동하면서 끝까지 상대를 배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로원은 자신들이 황제에게 존중받는다고 느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