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티베리우스 (문단 편집) === 프라이토리아니 활용 === 티베리우스는 황제의 근위대인 '''[[프라이토리아니]]가 정치와 황실에 개입하는 것'''의 선례를 만든 첫 번째 황제였다. 티베리우스는 수도 로마와 이탈리아 전역에 흩어져 주둔하고 있던 근위대를 한데 모아 수도 로마를 억압하는 강대한 군대로 재편성했다. 전임자인 [[아우구스투스]]는 근위대를 수도 로마에 은근한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카드로만 활용했을 뿐이지만, 티베리우스는 실제로 근위대를 이용한 정치를 했다.[* 칼을 칼집에 꽂아두고 은근한 협박을 가하는 것과 이것을 실제로 휘두르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이야기이다.] 이는 근위대를 이용해 반대파를 탄압하고 쉽게 정국을 장악할 수 있다는 유혹에 굴복한 것으로,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과 마찬가지였다.[* [[베스파시아누스]] 때 근위대를 해체하고 무력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한번 찾아왔는데, 그 역시 정권 강화를 위해 근위대를 유지해야 한다는 유혹에 굴복했다.] 근위대장인 세야누스는 반대파 숙청과 황실의 위험분자 숙청[* 특히 대 [[대 아그리피나|아그리피나]]와 관련된 일파들]을 주도했으며, 심지어는 근위대를 이용한 쿠데타까지 기도하기도 했다.[* 물론 낌새를 눈치챈 티베리우스가 재빨리 세야누스를 숙청해버리지만.] 물론 티베리우스는 지극히 유능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근위대를 제어하고 통제할 수 있었다. 그는 지극히 노련하게 세야누스의 반란을 사전에 뿌리뽑았고, [[근위대]]가 제국의 일상적인 통치에까지 손을 대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다른 모두가 티베리우스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티베리우스 본인이 잘 해낸것과 별개로 후대 황제들에게 여러 가지로 나쁜 선례를 남긴 것이다.[* 사실 이렇게 된 것은 황제의 지위를 애매모호한 상태로 만든 [[아우구스투스]]의 책임도 있다. 아우구스투스 본인이야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하며 굉장히 독특한 상태의 지위에서도 별문제 없이 제국을 통치했지만, 그만한 정치력을 갖고 있는 사람은 세계 역사를 모두 뒤져도 흔치 않다. 이는 아우구스투스가 아니라면 그 누구라도 정치 형태에 변화를 줄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티베리우스는 제국 운영에 대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을 택한 것이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그것대로 큰 문제이다. 아우구스투스가 그랬던 것처럼 제국 운영에 전권을 제대로 쓸 수 있는 것이 오직 티베리우스 그 자신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까딱하면 주위를 다 파괴시킬 폭탄을 만들어 놓은 것과 같고, 제국의 역사가 증명하듯 그처럼 다루기 힘든 정치 폭탄은 제국이 이어지는 내내 문제가 된다.] 티베리우스가 근위대를 정치제도 안에 끌어들인 대가는 [[군인 황제 시대]]라는 커다란 재앙으로써 혹독하게 치르게 된다. 3세기, 로마제국이 대내외적으로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끊임없이 정국 불안을 초래하던 프라이토리아니는 결국 4세기에 들어서야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해체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