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나소닉 (문단 편집) === 창업 ~ 2007년 === [[파일:구내쇼날로고.png|width=200]] 초창기 파나소닉의 전 이름인 나쇼날의 로고. 아래 로고와 혼용해서 쓰기도 했다. [[파일:나쇼날 로고.svg|width=200]] 1918년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1894~1989)[* [[이원복(만화가)|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을 본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일명 '[[잇쇼켄메이]](一生懸命)' 정신으로 일본의 회사/사업문화를 뒤바꾼 사람이다.]가 전기소켓을 만드는 오사카 전등이라는 회사에서 독립하여 마쓰시타 전기기구 제작소를 만든 것이 효시. 마쓰시타는 포탄형의 [[자전거]] 램프를 고안해 '내쇼날 램프'라고 만들어 히트를 친다.[* 이 National은 "국민(囯民)"이라는 뜻으로 사용했으며, 여기서 국민은 이른바 [[국민PC]], [[폭스바겐#s-2|국민차]], ~~국민라면~~, 같은 것 말할 때의 국민, 즉 비싼 물건이라서 아무나 못 사는 것을 저렴하게 만들어 모든 국민들이 다 살 수 있다는 의미의 국민이다. 저 시절, 자전거 램프 말고 가정용 전구 소켓을 만들면서 이른바 '국민 소켓(国民ソケット)'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했으며, 이는 100년이 지난 [[https://store.shopping.yahoo.co.jp/dendenichiba/0007000064803.html|지금까지도 당시 디자인대로 판매되는]] 제품이다.] 1932년 마쓰시타전기산업주식회사(松下電器産業株式会社)[* 2008년에 나쇼날이 파나소닉주식회사로 변경할 때까지 쓰인 유구한 회사명이었다.]으로 개명. 잘나가던 시절에는 마쓰시타 전공, 마쓰시타 통신공업 등 마쓰시타라는 이름이 붙은 14개의 대기업군을 가지고 있었으며 세계 40개국에 진출해서 나쇼날(National), 파나소닉(Panasonic), 테크닉스(Technics) 등의 이름으로 다양한 제품을 팔았다. 그룹의 규모가 이리 크다 보니 일본 내 가전제품 시장을 쥐고 흔들 수 있는 기업으로 손꼽혔다. [[비디오테이프]] 규격을 놓고 [[VHS]]와 [[베타맥스]]가 격돌할 때 다들 마쓰시타가 어떻게 나서느냐에 따라서 판정이 날 거라고 예측했을 정도. 마쓰시타는 VHS를 선택했고 반드시 그 이유만은 아니었지만 그게 표준이 되었다. 1980년대에 [[제너럴 일렉트릭]]과 더불어 세계 최대의 가전업체 중 하나로 [[https://www.economist.com/schumpeter/2014/07/10/the-giants-in-japanese-electronics?zid=291&ah=906e69ad01d2ee51960100b7fa502595|그 명성을 떨쳤다.]] 1990년대까지 [[시가총액]] 기준으로 [[일본]] 최대의 가전업체로 군림하였다. 한때 [[유니버설 픽처스]]의 모회사인 [[https://www.google.com/amp/s/www.latimes.com/archives/la-xpm-1990-11-26-mn-3972-story,amp.html|MCA를 인수하여]] 할리우드까지 진출하기도 하였으나 적자를 봐서 매각했다. 1970~90년대의 일본 가전업체 광고를 보면 1970~80년대까지는 내수에서 나쇼날 브랜드를 사용했으며 파나소닉 브랜드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으나[* 다만 그때도 파나칼라처럼 접두사를 붙이는 경우는 있긴 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 A/V 기기를 중심으로 점점 파나소닉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언젠가부터 하나 둘씩 파나소닉 브랜드로 갈아타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이전에는 나쇼날 브랜드가 널리 알려졌고 1990년대 이후에는 파나소닉 브랜드가 더 많이 알려졌다.[* National은 한글로는 '내셔널'로 읽는 것이 맞지만 일본에서 ナショナル(나쇼나루)로 홍보한 관계로 한국에서도 나쇼날로 알려져 있다. 주로 일본 내수제품에 이 상표를 붙였는데 1980년대 정식 한국 수입업체도 없었던 시절 보따리장수 등을 통해 유통된 제품이 나쇼날 상표를 붙이고 있던 터라 이게 더 많이 알려졌다. 게다가 1970~90년대 [[아남전자]]가 이 회사와 기술제휴로 TV를 생산할 무렵 '''아남나쇼날'''(Anam National)로 홍보했기 때문에 나쇼날이 더 친숙하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마쓰시타 제품 정식 수입업체들이 생기면서 마쓰시타의 해외 수출용 브랜드인 파나소닉 브랜드를 붙인 제품이 수입되어 파나소닉의 인지도가 더 올라가게 된다.] 2000년대 초까지 일본 국내에서는 주로 '나쇼날' 브랜드로 판매하고, 국내용 오디오 일부 제품과 해외 수출용 제품은 '파나소닉', 오디오 한정으로 '테크닉스(Technics)' 브랜드를 사용했다.[* 마쓰시타가 미국에 진출할 당시 유사상표가 있어 내쇼날이 아닌 다른 상표를 달고 팔았다고 한다. 게다가 National이라는 상표는 내셔널 세미컨덕터(National Semiconductor) 등 미국에서 흔했으며, 굳이 그게 없다라도 National이라는 단어는 [[NTSC]] 등 전자 분야에서 보통명사로 워낙 많이 사용하여 혼란을 불러 일으킬 수 있었다.] [[파일:external/ecx.images-amazon.com/51379FZRSEL._SL500_AA300_.jpg]] SL-SX390 CD 플레이어 가전이 아닌 워크맨, CD플레이어, 찍찍이, [[파나소닉/라디오|일반/단파 라디오]] 등 소형 음향기기 시장에서는 [[소니]] 다음을 달리는 [[콩라인]] 회사[* 사실 소형 음향기기 시장에서 소니 다음을 달리는 회사는 [[아이와]](AIWA)였으나 아이와는 소니에서 워크맨을 발매하기 10년이나 더 전인 1969년부터 소니의 자회사였으므로 소니 다음 콩라인 회사를 파나소닉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였으나 주로 참신함보다는 견실함을 내세우는 점때문에 내구성 측면에서 소니 제품보다는 이쪽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었다.[* 지금도 이러한 경향이 남아있기는 한데, 파나소닉 저가형 소형라디오인 RF-P50의 안테나 연결부위가 라이벌 기종인 소니 라디오 ICF-S10MK2보다 더 견고하게 설계되어있다.] 또한 바이브레이션 기능의 이어폰이라든가 특징 있는 상품도 있었기에 일부 사용자에게는 기능 측면에서 선호받기도 하였다. 이 시장에서 파나소닉은 소니의 [[카피캣]] 이미지가 있었다. 소니가 개발한 신상품을 재빠르게 연구하여 유사상품을 내놓는 식. 이를 두고 소니는 '마쓰시타의 연구소/실험실/모르모트'라는 별칭을 얻었었다고. [[소니]]처럼 [[탁상시계]] 겸 라디오(드림 머신)를 만든 적이 있는데, 특이하게 플립식 시계를 장착한 기종이 몇 있었다. 파나소닉 본체의 전신인 마쓰시타 전기산업 이외의 주력 계열사로는 마쓰시타 전공(현재는 본사에 합병)과 마쓰시타 통신공업(현 파나소닉 모바일커뮤니케이션즈)이 있었다. 마쓰시타 통신공업은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앞으로 가전용이 아닌 [[B2B|산업, 업무용 전자제품]]의 수요가 증대할 것이라는 예견에 따라 1958년에 설립되었다. 설립 후 자산내용, 수익 등에 있어서 줄곳 마쓰시타 그룹의 우등생으로 군림. 간사이(關西) 지방에 본부를 둔 그룹의 약점을 보강하기 위하여 도쿄권인 요코하마에 본사를 둔 마쓰시타 통신공업은 ‘이용자를 위한 하이테크형 효율기업’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주로 통신기기, 정보기기를 생산하여 2000년 초반에는 일본 국내 이동통신 단말기 부문에서 [[NEC]]와 쌍벽을 이루기도 했다. 다만 NEC와 마찬가지로 스마트폰 사업에 적응이 늦어져 현재는 산업용 단말기만 취급하는 상황. 파나소닉은 전자산업 초창기부터 전자 소비재들,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개발도상국]]의 중소기업이나 만들법한 물건까지 나쇼날(파나소닉) 브랜드로 만들어 팔았다. 가령 소니는 백색가전 제품을 만들지 않으며 다른 종합전자회사[* 현재 일본에서는 '전자기기 8사'(電機8社)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대형 전자회사 8개(파나소닉은 물론 보통 IT 전문기업으로 인식되는 [[후지쯔]]와 [[NEC]]까지 포함된다)를 묶어 언급하며 과거에는 산요전기도 이 부류에 들었다. 이들 대기업들은 전기가 흐르는 것이라면 전구부터 PC, 반도체까지 모두 내부에서 제조하는 종합화를 추구했다.]도 뭔가 몇 가지는 빠지거나 미약한 부문이 있었는데, 파나소닉은 TV, VCR, 오디오 등의 영상/음향가전, 냉장고, 세탁기 등의 백색가전은 물론 커피포트, 헤어드라이어, 전기밥통, 탁상시계[* 영화 백 투더 퓨쳐에서 마티 방에 놓여있는 탁상시계가 파나소닉제.], 안마의자, 전기 다리미, 전기면도기, 정수기, 건전지, 오디오/비디오 테이프, 가정용 전화기, 복사기, 팩시밀리, 워드프로세서, [[MSX]] PC 등 정말 소비재 전자분야의 거의 모든 것을 만들었다.[* 지금은 그 중 상당수는 단종되었거나 개발도상국 중소기업의 ODM으로 만든다. 파나소닉 브랜드를 붙인 채로.] 심지어 일본 내수용은 [[엘리베이터]][* [[오티스 엘리베이터]]가 일본에서 사업을 할때 파나소닉과 합작으로 '''National·OTIS'''를 세워서 [[https://youtu.be/DrEcvA4PqEQ|함께 승강기를 생산한 적이 있다.]] 한국의 [[LG산전엘리베이터|LG산전]]-[[오티스엘리베이터|오티스]]의 관계와 비슷하며 한국처럼 여기서도 파나소닉의 승강기사업부를 오티스가 통째로 꿀꺽해서 사업을 계속 하고 있다. 한국에 설치된 오티스엘리베이터의 해외 직수입 제품 중 미쓰비시 차임벨과 비슷한 홀랜턴 차임벨이 울리거나 차가 움직일때 진행방향 화살표가 점멸하는 제품이 있다면 그게 바로 파나소닉과 오티스의 합작 제어반을 쓴 제품이다. ]에다가 심지어 바지에 자동으로 줄 잡는 기계 등 정말 황당한 것까지 제조했을 정도인데 이정도로 전자분야에서 제품군이 문어발인 것은 파나소닉이 유일하다.[* 유튜브에 1980년대 일본 전자기업의 광고를 제품 분야별로 쪼개서 20개 이상의 영상으로 만든 것이 돌아다닌다. 그 영상을 보면 오직 나쇼날/파나소닉만이 모든 영상에(즉 모든 분야의 제품에) 광고를 내고 있다.] 또한 유통망 또한 전국에 수만개의 대리점(나쇼날 샵) 네트워크를 유지했다. 그러다보니 일본 국내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전자기업으로 인정받는다. 이런 광활한 제품군을 대부분 자사의 기술력으로 직접 생산했기 때문에[* [[OEM]] 생산이 많은 소니와 다르게 대부분 직영공장에서 생산한다. 라디오를 예로 들자면, 소니의 경우 대부분 일본계 협력업체 '도와다오디오'의 중국 공장(광둥성 둥관시)에서 OEM 생산되지만, 파나소닉의 경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에 있는 현지 직영공장에서 생산된다. 또한 파나소닉은 직영공장서 건전지를 생산하지만 소니는 언제부터인가 자사 브랜드 소니 스태미나를 중국을 거쳐 인도네시아 OEM으로 돌렸다. 파나소닉[* 구 산요전기]과 후지쯔의 건전지 생산부문이 분사된 FDK라는 일본계 협력업체 소관이긴 하지만.] 전자부품 쪽으로도 강자였으며, 이는 나중에 파나소닉이 [[B2B]] 사업위주로 과감히 나갈 수 있게끔 해준 원천이 되었다.[* 지금은 중국에서도 중소기업이나 만드는 헤어 드라이어를 생각해 보자. 간단해 보이지만 단순히 열선 깔고 팬 달면 끝이 아니다. 과열 방지 센서 등 안전관련 부품들이 꽤 필요한데 이들 정밀센서까지 개발 및 생산했고 지금과는 달리 20~30년전만 해도 그런 센서류 들은 최첨단 제품이여서 개발도상국의 중소기업이 헤어드라이어를 만들었어도 그런 부품들은 파나소닉에서 들여와 장착했다. 전자부품의 강자가 될 수밖에. PC 메인보드나 파워에 들어가는 캐패시터도 파나소닉(산요)제가 최상급으로 쳐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