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르티아 (문단 편집) == 개요 == ||||||<:><#dcdcdc,#191922> 언어별 명칭 || || 고대 페르시아어 || 𐎱𐎼𐎰𐎺 (''Parthava'') || || 파르티아어 || 𐭐𐭓𐭕𐭅 (''Parthaw'') || || 중세 페르시아어 || 𐭯𐭫𐭮𐭥𐭡𐭥 (''Pahlaw'') || || [[그리스어]] || Παρθία (''Parthía'') || || [[페르시아어]] || پارت (''Pârt'')[* 이상의 단어들은 모두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 파르타바 속주를 기준으로 한 지명으로서의 파르티아를 가리키는 것이다. 파르티아 제국이 당대에 쓴 공식 국호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그게 뭐였는지는 사료 부족으로 알 수 없다.][br]اشکانیان (''Ashkâniân'')[* 아슈크(파르티아어 아르샤크, 그리스어 아르사케스의 페르시아어 표기) 왕조라는 뜻. 오늘날 파르티아 제국을 가리킬 땐 보통 이쪽을 쓴다.] || || [[영어]] || Parthian Empire[* 앞뒤의 아케메네스 제국, 사산 제국에 맞춰서 아르사케스 제국(Arsacid Empire)이라고 쓰기도 한다. Empire가 아니라 Arsacid Dynasty라고 쓸 경우 아르메니아, 이베리아 등의 아르사케스 왕조 분가들과 혼동할 수 있다.] || || [[한자]] || 安息國(안식국) || 기원전 247년부터 기원후 226년까지 서아시아 일대를 지배한 왕조. 전성기의 영토는 서로는 시리아, 동으로는 인도 북부에 달했다. 이란 북부의 유목민 부족들이 주도 세력이었지만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후예를 자칭했다. 초창기의 중심지는 현대의 [[이란]] 북부와 [[투르크메니스탄]] 남부 지역이었으며, 영토가 남서쪽으로 확장됨에 따라 그 중심지도 계속 이동했다. 최종적으로는 현대의 [[이라크]] 일대와 [[이란]] 서부가 중심지가 되었다. 2세기 말부터 강성해지기 시작해 서방의 [[로마 제국]]과 대립했다. 전성기 로마의 주변국 중에서 가장 로마에 버금가는 강대국이었다. 한편 로마와 동양 사이에 위치한 입지를 활용하여 [[비단길]]의 중개무역으로 번영을 누렸지만, 로마와의 전쟁에서 연패하여 국력이 점차 쇠잔하던 와중에 [[파르스]]에서 반란을 일으켜 [[사산 왕조]]를 세운 [[아르다시르 1세]]에게 멸망당했다. 동아시아와 서구가 최초로 서로를 인식하게 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로마는 파르티아에서 동아시아의 비단을 수입했고, 동아시아인들도 마찬가지로 파르티아에서 로마의 포도주와 금•은세공품을 접할 수 있었다. 중국인들은 파르티아를 "안식국"(安息國)이라 칭했는데[* [[장건]](張騫)의 기록에 처음 등장하며, 《[[사기]]》에 인용된다.], 이는 "아르사케스"의 중국식 음차다. 로마와 중국의 상인들은 중개무역이 아니라 직접무역을 하고 싶어해 몇 번 시도를 했으나 파르티아는 무역을 독점하기 위하여 양쪽 상인들의 진출을 방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