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팔전 (문단 편집) === 위만조선과 발해 === 찬탈자인 [[위만]]은 조선 왕조 당시에 제사도 지내지 않을 만큼 평가가 박했기 때문에[* 유교 왕조에서 왕위를 찬탈한 신하를 좋게 평가할 리가 없다. 게다가 조선은 [[고조선]]을 이었다고 해서 국호도 그대로 했는데 위만은 그 조선을 찬탈한 신하였으니.] 배향한 사당이 없다. 조선은 [[발해]] 계승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고려 때 발해를 계승 혹은 발해와 고려를 동일 시 하는 관념은 고려 후기까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잊혀지다 발해를 본격적으로 한국사의 일부로 보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 [[실학]]이 연구되면서부터였다. 국왕들 중에서는 그나마 개혁군주였던 [[정조(조선)]]가 관심을 보였던 기록이 있다. 물론 아예 남으로 본 건 아니고 [[태조(고려)]] 왕건의 경우처럼 친척 국가로 여겼던 정도의 인식은 있어왔지만 그렇다고 계승의식은 없었다. 한국에서 정식으로 발해사를 한국사의 일부로 보기 시작한 건 20세기부터다.] [[대조영]]을 배향한 사당이 없다. 게다가 시조라 해서 무조건 사당을 지어줬던 게 아니라 당대의 국력이나 한국사에 미친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지어줬던 것이기 때문에 비교적 한반도 본토에 대한 영향이 적었던 발해 왕가를 모신 사당이 생겼을 가능성은 낮다. 당장 훨씬 옛날부터 한국사의 일부로 취급되었던 주요 국가들이자 왕계가 어느 정도 전해진 [[부여]]나 [[마한]]의 경우에도 사당이 생기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