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팜파스 (문단 편집) == 인문 환경 == [[온대기후]]로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에 유럽에서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로 이주해 온 유럽계 이민자들이 정착하기 적합한 환경을 제공했으며 이러한 연유로 해당 지역은 [[라틴 아메리카]] 다른 지역과 다르게 유럽계 백인 인구 비중이 높은 편이다. 대개 [[이탈리아]], [[독일]], [[폴란드]] 등에서 유럽인들이 건너왔으며 특히 이탈리아계가 아르헨티나 팜파스 지역에 대거 유입되었다. 아르헨티나인 성씨 중에 괜히 [[이탈리아어]] 성씨가 많은게 아니다. 이탈리아계는 아르헨티나에서 스페인계보다 더 많을 정도다.[* [[리오넬 메시]]와 [[디에고 마라도나]]의 부계가 [[이탈리아인]] 혈통이다.] 의외로 19세기 이전 아직 라틴아메리카가 스페인/포르투갈 식민지이던 시절에는 별다른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던 지역이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입장에서는 유럽에서 비싸게 팔 수 있는 [[설탕]], [[커피]], [[담배]], [[카카오]] 같은 특산물이 중요했고, 아직 증기선이 개발되기 이전에는 밀이나 쇠고기는 수송단가 문제로 유럽에서 수입하기에는 시장성에 맞지 않았다. 식민종주국들 입장에서는 멕시코나 콜롬비아 같은 [[저위도]] 지방에서 생산되지만 유럽에서는 잘 생산되지 않는 생산품이 필요했고, 그 결과 이 지역들은 비옥한 토양에도 불구하고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고 방치되었다. 19세기가 되면서 냉동 기술이나 [[통조림]], 우유를 분유로 가공하는 공법 등이 발달하고 영국 등 서구 열강이 이 지역의 농업 인프라에 이런저런 투자를 하면서 팜파스의 농업도 본격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 상술한 이유로 이 지역에는 스페인계 유목민 집단 [[가우초]]들의 생활 터전으로도 유명했다. 인력은 부족한데 토지는 광활한 상황에서 스페인인들은 연약한 양 대신에 건강하게 잘 자라는 소들을 반야생 상태로 방목하였고, 이렇게 키운 소들한테 가죽을 벗겨내고 스페인 본토로 납품하였다. 상술한 것처럼 통조림 제작 기술이 팜파스에 보급되면서 그동안 남아서 버리던 소고기를 통조림으로 만드는 방법이 도입되었고, 이후 영국 자본이 투자되고 철도와 냉동 창고가 건설되면서 과거 가우초들이 반야생상태로 소를 방목하던 평원은 울타리가 쳐진 목장으로 변화하였다. 오늘날 아르헨티나인들과 우루과이인들 그리고 브라질 남부의 [[스페인계 브라질인]]들은 이 가우초의 혈통을 물려받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우초 후손들인 스페인계 아르헨티나인들이 새로 이민 온 이탈리아계와 통혼하는 경우도 잦아졌고 오늘날 가우초의 후손들도 대개 백인 형질이 뚜렷한 편이다. [[분류:지리학]][[분류:평야]][[분류:남아메리카의 지리]][[분류:아르헨티나의 지리]][[분류:브라질의 지리]][[분류:우루과이의 지리]][[분류:브라질-우루과이 관계]][[분류:브라질-아르헨티나 관계]][[분류:아르헨티나-우루과이 관계]][[분류:화폐의 도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