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포도청 (문단 편집) === 역사 === [[1469년]]([[성종(조선)|성종]] 즉위년)에 박중선을 포도주장(捕盜主將)으로 삼아 [[전라도]]에 보낸 기록이 있다. 훗날 [[중종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을 폐위시킨 무신 [[박원종]]의 아버지이다. 이후 각지에 일어나는 [[도둑]]들을 잡기 위해 포도장을 임명하여 각지에 보낸 기록이 성종조에만 29번 나타난다. 초기의 포도대장들은 중앙에서 지방으로 파견되는 임시직 형식이었다. 그리고 [[성종(조선)|성종]] 5년에는 이양생이 포도장으로 권력을 남용하므로 포도장의 상설화가 폐지되었다가, 같은 해 [[3월]] 포도장을 다시 신설한다. 이후 [[1481년]]([[성종(조선)|성종]] 12년)에 좌변(左邊)·우변(右邊)으로 나누어, [[서울]]의 동부·남부·중부와 경기좌도는 좌변[* 청사 위치는 현 단성골드주얼리센터 일대이다.]이 맡고, [[서울]]의 서부·북부와 경기우도는 우변이 맡았다. [[중종(조선)|중종]] 35년인 [[1540년]], [[중종실록]]에 포도청(捕盜廳)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 [[1894년]]([[고종(대한제국)|고종]] 31년) 좌 / 우 포도청을 통폐합해 [[경무청]](警務廳)을 신설하면서 없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