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포켓몬스터 (문단 편집) === 탄생 과정 === * [[https://m.ruliweb.com/hobby/board/300005/read/246118|사장이 묻는다 포켓몬스터 하트골드·소울실버]][* 하트골드 소울실버의 개발 스토리이지만 포켓몬의 탄생 과정도 포함하고 있다.] * [[https://blog.naver.com/hanee218/40122169560|포켓몬스터의 초기설정 캡슐몬스터]] * [[https://blog.naver.com/hanee218/221470315296|캡슐몬스터의 다른 로고와 포켓몬스터 로고 프로토 타입]] 포켓몬스터는 개발사인 [[게임 프리크]]의 사장인 [[타지리 사토시]]가 6년간의 고생 끝에 낳은 결실인데, 게임 출시에 6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걸린 데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포켓몬스터는 원래 [[닌텐도]] 산하의 APE[* 당시 닌텐도의 회장인 [[야마우치 히로시]]의 지시로 설립한 자회사로, 닌텐도 내부의 게임 아이디어가 고갈될 수 있음을 우려하여 외부의 전문가들을 영입하여 독창적이고 새로운 게임 아이디어를 연구하고자 설립한 일종의 [[싱크탱크]] 성격의 조직이다. [[마더 시리즈]]의 제작사로 유명하다.]에서 개발금을 투자받아 1991년에 완성하여 납품하기로 약속하였는데, [[타지리 사토시]]의 개발 욕심에 의하여 당초 기획보다 더 많은 아이디어를 계속 추가하면서 개발 기간이 길어졌고, 개발자들 간의 트러블에 의하여 몇몇 개발자는 퇴사까지 했으며 거기에 더해 [[벤처기업]]이다보니 게임 개발 경험도 다들 없는데다 재정적으로도 어려움을 겪으며 [[개발지옥]]에 빠진 상태였다. 그래서 APE 소속 프로듀서인 [[이시하라 츠네카즈]]는 개발이 시작된지 반년만에 포켓몬스터 개발을 잠시 중단한 후 그동안 하청을 받아가면서 개발비를 벌고 스태프들도 게임 제작 경험을 쌓은 뒤 포켓몬스터를 다시 개발하자고 제안을 하게 된다. 그래서 닌텐도에게 게임을 하청받아 제작하게 되는데, 당시 하청을 맡아 제작한 게임은 '''[[요시의 알]](GB)'''과 '''마리오와 와리오(SFC)'''다. 이후 마리오와 와리오 발매 이후 포켓몬스터의 개발이 3년 동안 재개되었다. 이 때도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는데, 특히 개발 막바지인 1995년에는 마지막까지 개발에 참여한 인원은 단 9명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며[* 초기작은 스태프롤에 있는 인원들이 프로듀서인 [[미야모토 시게루]], [[이시하라 츠네카즈]] 등까지 전부 채워도 20명도 되지 않으며, 개발 도중에 다른 분야 겸업을 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타지리 사토시]]는 회사 경영에도 신경쓰고 포켓몬스터 개발에도 신경쓰느라 너무 힘들어서 이시하라가 창립할 예정인 크리쳐스와 병합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타지리 사토시가 본인의 정체성과도 같은 [[게임 프리크]]를 쉽게 포기할 수 없었기에, 결국 어려움을 견뎌내고 게임 프리크 단독으로 게임을 개발해내기에 이른다. 타지리 사토시는 당시 게임 업계가 고성능, 뛰어난 3D 그래픽에 집중하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구상을 전개해 나갔다. 그의 목표는 혼자서 몰두하는 게임이 아닌,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기본 바탕으로 하는 육성게임을 만드는 것이었다. 2010년대 이후 인터넷의 발전으로 게임계의 헤게모니 자체가 완전히 온라인으로 넘어오고, 스마트폰의 확산으로 인해 SNS 기반의 게임들이 대세로 자리잡은 것을 보면 이 전략이 얼마나 대단한 선견지명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당시 멀티플레이를 하려면 2 플레이어 모드로 친구랑만 게임 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는 소형 게임기가 적격이었는데, 마침 [[게임보이]]에는 대전용 통신 케이블 기능이 탑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주 중대한 문제가 남아있었는데, 그것은 캐릭터가 서로 교환하고 싶을 정도로 '''"다양"'''하고 '''"귀여워야"''' 한다는 점이었다. 지금의 포켓몬스터의 디자인이 나오기까지 디자인을 담당하는 [[스기모리 켄]]이 약 300여가지의 스케치를 그렸다. 그 후 사내 인기투표까지 하면서 다시 그려낸 150여마리의 포켓몬을 엄선하게 되었다.[* 본래 250여마리를 넣으려고 했으나 당시 게임보이 용량의 한계로 150마리만 선택했다. 심지어 151번인 뮤는 정말 더 넣을 것 없는 공간에 억지로 집어넣은 포켓몬이다. 게임내부에 등장시킬 예정조차 없었으나 버그로 인해 알려진 포켓몬이다.] 포켓몬의 수는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100마리, 135마리, 107마리, 156마리, 72마리, 86마리, 2마리[* [[포켓몬고]]와 [[레츠고 시리즈]]에 추가된 [[멜탄]] 게열], 82마리+7마리[* [[포켓몬스터소드·실드/익스팬션 패스|익스팬션 패스]]로 추가된 [[치고마]] 계열, [[레지에레키]], [[레지드래고]], [[버드렉스]], [[레이스포스]], [[블리자포스]]], 7마리[* [[포켓몬 레전드 아르세우스]]의 [[히스이지방]] 포켓몬.],103마리가 추가되어 9세대까지 총 1008마리가 되었다.[*29 도감번호 1000번의 주인공은 [[모으령]]의 진화형인 [[타부자고]].] 1996년 2월에 처음 발매를 시작한 [[포켓몬스터 레드·그린]]은 당시에는 주간 판매 랭킹을 봐도 베스트 텐에 아슬아슬하게 들어갈 수 있을까 없을까 하는 정말로 조용한 스타트였다. 프로듀서인 [[이시하라 츠네카즈]]는 ''''막차에 간신히 탄 것인가'''' 하는 느낌이었다고. 하지만 게임이 재밌다는 입소문과 초등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게임 잡지 [[코로코로 코믹스]]에서 꾸준하게 홍보를 한 덕분에, 그리고 그 홍보의 일환으로 코로코로 코믹스가 실시한 [[뮤(포켓몬스터)|뮤]] 선착순 배포[* 원래 뮤는 디렉터 [[모리모토 시게키]]가 직접 디자인하여 아주 조금 남아 있던 게임 데이터 공간에 장난으로 집어넣어둔, 포켓몬이라기보다 차라리 더미 데이터격의 존재였다. 그런데, 일찍이 게임을 즐긴 사람들 사이에서 "150마리 이외에 또 한 마리가 존재한다"는 설이 도시전설 수준으로 퍼져 있었고, 그것은 버그를 일으켜 151번째 포켓몬 뮤를 게임에 등장시키는 경우가 나타나면서 사실로 밝혀졌다. 이에 제작진 측에서 이렇게 뮤가 세상에 공개된 이상 게임 홍보도 할 겸 아예 게임잡지 주관으로 뮤를 배포하는 이벤트를 벌이자고 결심한 것이다.] 이후로 초등학교 아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관심을 끌었다. 8비트 게임보이의 단순한 흑백 게임이었음에도 당시 화려한 사양으로 발매되던 게임의 인기를 가볍게 상회할 정도로 그 인기는 엄청났다.[* 닌텐도의 홍보실 기획 부장이자 포켓몬스터 레드/그린의 공동 프로듀서였던 카와구치 타카시는 이러한 히트는 '''100년'''에 한 번 있는 일이라며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했을 당시가 2000년인데, 이 때가 2세대 때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96년은 벌써 [[게임보이]]가 나온지 7년이나 되었던 해였다. 게임보이보다 1년 늦게 나온 [[슈퍼패미컴]]도 [[닌텐도64]]와의 세대 교체를 기다리고 있었고, 게임보이 역시 인기가 떨어져 가고 있던 때라 슬슬 닌텐도 측에서 게임보이의 후속작을 기획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포켓몬스터의 엄청난 성공으로 인해 [[게임보이 컬러]]도 자연스럽게 제작이 늦어졌다. 당초 계획은 1996년도나 1997년도에 제작 예정이었으나 1998년도에 제작을 했다. 또한 후속작인 [[포켓몬스터 금·은]]도 레드·그린 발매 직후 1998년 초 발매를 목표로 개발에 착수했으나 레드·그린이 예상보다 인기를 엄청 끌게되자 블루 버전과 피카츄 버전을 중간에 발매하게 되고, 금·은은 연기되고 1999년 말에 발매된다. 그리고 포켓몬스터는 탄생부터 [[미디어 믹스]]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포켓몬이 기획된 대전제가 [[이시하라 츠네카즈]]가 APE에 입사하기 이전 [[후지 테레비]] 산하의 영상 프로덕션에 근무하고 있을 때부터 '게임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에 대해 고민한 것이였고, 그 게임을 만들 사람으로 [[타지리 사토시]]를 눈독 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레드/그린이 첫 기대치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이시하라는 레드/그린을 실험작이라 생각하고 후속작에서 미디어 믹스를 완성시키겠다는 계획으로 게임이 나온 직후 바로 미디어 믹스 상품을 기획하게 된 것이다.[* 보통 게임 원작 미디어 믹스가 나오기 위해서는 포켓몬스터처럼 처음부터 미디어 믹스로 기획되는 것이 아닌 이상 게임이 대박을 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레드/그린이 시간이 지날수록 인기를 끌게 되었고, 후속작을 내다보고 기획한 미디어 믹스 상품은 레드/그린의 인기와 제대로 맞물려서 1990년대 말 포켓몬스터 붐을 일으키게 된다. 초기 설정에서는 '캡슐몬스터'라는 지금보다 더 직설적인 이름으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또한 [[관동지방]]의 [[무지개시티]] 밑에 C라는 지역이 존재하는 등,[* 그 어떤 도로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걸 봐서 특별한 장소로 기획되었을 것이다. 자세한 것은 [[http://m.dcinside.com/view.php?id=pokemon&no=3781283|링크 참조]].] 당시 기획되었던 맵은 지금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